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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서 푹 쉬자고 해놓고 전력 질주…왜 이러는 걸까

기자
한순 사진 한순

[더,오래] 한순의 시골 반 도시 반 (13) 

 
시골집 한밤중에 떨어지는 한기는 견고한 바늘처럼 이불을 뚫고 침투한다. 내 몸은 어느 사이 훈훈하고 알맞게 따뜻한 아파트에 잘 길들어 있다. [사진 pixabay]

시골집 한밤중에 떨어지는 한기는 견고한 바늘처럼 이불을 뚫고 침투한다. 내 몸은 어느 사이 훈훈하고 알맞게 따뜻한 아파트에 잘 길들어 있다. [사진 pixabay]

 
시골 반 도시 반 생활이 만 6년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추운 날이면 시골행이 약간 망설여지기도 하고 꾀가 나기도 한다. 며칠 비워놓았던 시골집에 한밤중에 떨어지는 한기는 견고한 바늘처럼 이불을 뚫고 침투한다. 내 몸은 어느 사이 훈훈하고 알맞게 따뜻한 아파트에 잘 길들어 있다. 이불을 뒤척여 돔같이 만들기도 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수시로 잠이 깨다가 새벽녘이 되면 한기가 좀 물러서며 잠이 든다. 그렇게 몇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맞는 아침은 지난밤의 뒤척임을 싹 잊게 한다. 
환하고 정갈한 햇빛이 겨울나무 위로 쏟아지는 아침은 시골 생활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모든 계절이 겨울을 위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존 필드의 녹턴 10번을 올리고 바라보는 겨울나무는 견고하고 쓸쓸하고 아름답다.
 
지난여름 남편과 나는 경주로 늦은 여름 휴가를 떠났다. 휴가를 떠나기 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천천히 오래된 도시를 걷고, 충분한 휴식을 하고 오자고 다짐했다. 숙소도 우리 수준에서는 좀 과하게 편한 곳을 잡았다. 첫날 도착해 짐을 풀고는 맥없이 있기보다는 그 유명한 경주 야경이라도 보자며 야경 투어에 나섰다. 안내하는 분이 얼마나 감칠맛 나게 설명을 잘하시는지 야경과 그분의 안내에 빠져 경주의 첫 밤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생각하니 가이드 하시는 분께 경주 일정을 좀 짜달라고 하면 알찬 일정이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카톡으로 도움을 청하자 정말 프로답게 알뜰한 일정이 도착했다.
 
경주 시내 주요 유적지는 은은한 조명을 갖춰 밤이 되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안압지의 야경. [중앙포토]

경주 시내 주요 유적지는 은은한 조명을 갖춰 밤이 되면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다. 안압지의 야경. [중앙포토]

 
다음 날부터 우리는 일정대로 맛집 식당까지 찾아다니며 일정을 소화했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서울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서로 모자란 부분을 척척 보완하며 다녔다. 경보계는 하루 1만보 이상을 찍었고 더 이상 카운트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4박 5일의 일정을 마치고 신경주 역 커피숍에 앉으니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휴가를 온 것인데, 어느 순간 서울에서 살 듯 아낌없이 서로를 소진하며 여행 목표를 달성하고 있었다. 새끼발가락은 물집이 생겨서 밴드를 붙였고, 렌트한 차는 기름 소비량이 많아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며칠 몸살을 앓아야 했다. 지난 6년 시골 생활을 가만히 회상해 보니 그건 일종의 전쟁이었는데, 일테면 속도의 전쟁 같은 것이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시골 생활을 하는 듯이 보였지만, 도시의 습관과 관성은 시도 때도 없이 작동해 시간의 흐름을 방해했다. 시골에서 오전에 좀 한가한 시간이라도 보냈다면 오후에는 어김없이 일들을 처리했다. 회사 업무를 보거나, 풀을 뽑고, 전지하고 마당을 쓸고 닦고 낙엽을 치우고! 남편은 차와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서울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몸과 마음은 일정 속도에 길들어 있었다. 그 속도와 강도가 힘에 겨워 시골행을 택했음에도 그 진한 습관과 관성은 빨리 바뀌지 않았다. 형태와 대상만 바뀌었을 뿐, 한 템포 늦추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이었다. 무엇이 이렇게도 우리를 성실하게 만들었는가? 일을 뺀 나는 누구인가?
 
올해 둘째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빈 둥지 증후군을 심하게 앓았다. 첫째와는 5년 터울이 져서 더 귀엽고 애잔했다. 그 아이가 결혼하고 나니, 우리 부부는 세월에 마모된 덜컹거리는 수레처럼 향방을 못 잡고 헤맸다. 열심히 산다는 생각도 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꾸역꾸역 열심히 산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유독 겨울이면 새가 잘 보인다. 무성하고 넘칠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비움과 거세의 세월을 보내는 겨울에는 더욱 선명하게 잘 보인다. [사진 pixabay]

유독 겨울이면 새가 잘 보인다. 무성하고 넘칠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비움과 거세의 세월을 보내는 겨울에는 더욱 선명하게 잘 보인다. [사진 pixabay]

 
시골에 들어온 첫해에 맞은 겨울, 나는 새의 침묵을 보았다. 마치 저 새와 내가 침묵을 겨루듯 서로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새 날아간 자리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같이 시골에 들어온 이웃들도 나와 같은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다. 봄이면 앞다투어 꽃을 사 날랐고, 이 집 꽃이 이쁘면 저 집에서도 사고, 경쟁하듯 꽃을 사나르기도 했다. 겨울이면 배롱나무에 볏짚을 멋지게 싸주기도 하며 서로의 정원을 꾸몄다. 6년의 세월이 흐르자 배롱나무에는 보일러를 싸주는 보온캡이 입혀졌다. 시골 첫사랑의 설렘이 흐르며 무던하고 안전한 보살핌으로 바뀌고 있다. 봄에도 여름에도 지저귀며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었는데, 유독 겨울이면 새가 잘 보인다. 무성하고 넘칠 때는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비움과 거세의 세월을 보내는 겨울에는 더욱 선명하게 잘 보인다.
 
길냥이 밥에 날아와 먹이를 하나만 물고 날아가는 콩새도 보이고, 부리 안에 두세 개를 더 물고 자식들이 있는 곳으로 바삐 날아가는 새도 보인다. 새가 보인다.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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