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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돈 떼어 먹고 명의 바꿔 버젓이 영업…방법 없나요?

기자
김용우 사진 김용우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18)

물건을 팔든 돈을 빌려주었든 빌려준 사람에게서만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돈 줄 사람이 돈을 다 써버리고 다른 재산도 없다면 민사소송을 하든 형사고소를 하든 회수할 뾰족한 수가 없겠지요. 물론 배우자, 부모, 형제가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강제할 수 없습니다. 돈을 갚아야 할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형편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면서 가족들 명의의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호가호위하고 있다면 채권자 입장에선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그렇다 해서 채무자 가족 명의의 재산이 채무자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채무자가 회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채권자는 채무자인 A사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데 A사는 거의 폐업상태입니다. 하지만 A사 사장이 운영하는 B사는 A사와는 달리 매출도 좋고 보유자산도 꽤 있습니다. 심지어 사무실도 같고, 직원들도 그대로입니다. 회사 이름만 바꿔 사업자등록을 낸 것으로 보입니다. 화가 난 채권자가 사장에게 B사 재산으로 돈을 갚으라고 재촉해도 사장은 B사는 A사와 다르다고 해결해줄 수 없다 합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그 회사가 그 회사인데, 왜 다르다고 하는지 환장할 노릇이겠지요. 채권자가 B사의 재산으로 돈을 받을 수 있을까요. 법률적으로는 B사의 ‘법인격이 부인’된다고 합니다. 두 회사가 가진 별개의 법인격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경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물건을 팔든 돈을 빌려주었든 빌려준 사람에게서만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 부모, 형제가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강제할 수 없습니다. 채무자가 회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pixabay]

물건을 팔든 돈을 빌려주었든 빌려준 사람에게서만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배우자, 부모, 형제가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강제할 수 없습니다. 채무자가 회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진 pixabay]

 
만약 사장이 A사의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B사를 신설한 것이라면 B사 재산으로 A사 채무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대법원 2004. 11. 12. 선고 2002다66892 판결 등). 그런데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A사, B사는 사장도 동일하고 사무실도 직원도 모두 같은데 당연히 같은 회사 아니냐고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일단 법인 전부사항증명서에 나오는 사업목적 목록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사업목적이 전혀 다르면 다른 회사입니다. 그리고 자본금을 누가 납입했는지, 주주 구성도 봐야 합니다. 사장은 운영만 하고 자본금을 댄 사람은 따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채권자는 A사와 B사 법인등기사항 증명서를 떼어보고 사업목적도 유사한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사장 지인들에게 수소문해보니 A사 B사 모두 사장이 실제로 사주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런데 채권자가 다시 가서 추궁하자 사장은 갑자기 다른 말을 합니다. 자신은 B사를 신설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고요. 채권자가 법인 전부사항증명서를 다시 살펴보자 사장 말이 맞았습니다. A사와 B사의 설립연도가 비슷했던 겁니다. 채권자는 돈을 받을 수 없을까요?
 
법인격 부인은 단지 회사가 신설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이미 설립된 다른 회사 가운데 기업의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회사를 채무를 면탈할 의도로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기존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 상태나 자산상황,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유용된 자산의 유무와 그 정도,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자산이 이전된 경우 그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는지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다94472 판결 등). 만약 A사 자산이 B사로 정당한 대가 없이 넘어갔다는 점이 드러난다면 채권자는 B사 재산으로 변제받을 수 있습니다. 소송과정에서 밝혀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건물신축공사 중 원사업자가 부도가 나고 공사대금을 받기 어려워진 하도급업자들이 현 건축주를 상대로 공사대금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돈을 떼먹기 위해 중간에 다른 회사를 끼워 넣는 편법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사진 pixabay]

건물신축공사 중 원사업자가 부도가 나고 공사대금을 받기 어려워진 하도급업자들이 현 건축주를 상대로 공사대금을 청구했습니다. 이에 대법원은 돈을 떼먹기 위해 중간에 다른 회사를 끼워 넣는 편법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사진 pixabay]

 
만약 기존회사의 자산이 다른 회사에 직접 넘어간 것이 아니라 제3회사를 통해 넘어간 것이라면 어떨까요. 최근 대법원 판례 사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건물신축공사 도중 원사업자가 부도가 나고 공사대금을 받기 어려워진 하도급업자들이 현 건축주를 상대로 공사대금을 청구했습니다. 하도급법에 따라 원래는 원사업자 부도 시 발주자가 공사대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하지만 발주자는 폐업하고 없었습니다. 발주자의 유일 자산인 건축주 지위가 제3회사에 넘어갔다가 현재 건축주로 이전된 것입니다. 그런데 발주자와 건축주의 동일한 사주가 지배하는 회사로서 사업목적은 부동산 개발업으로 유일했습니다.
 
하도급업체들은 발주자가 채무를 면탈하기 위해서 건축주를 이용했다며 건축주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 2심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발주자에게 돈을 빌려준 제3회사가 차용금을 회수하기 위해 정당하게 건축주 지위를 이전받은 경우라서 발주자가 건축주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대법원 2019. 12. 13. 2017다271643 공사대금).
 
기존회사의 자산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한 제3자에게 이전된 경우라면 자산을 면탈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그 경우라도 기존회사와 형태나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다른 회사가 제3자로부터 자산을 이전받는 대가로 기존회사의 자산을 이용했다면 기존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직접 자산이 유용한 경우와 다르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대법원은 제3업체로부터 건축주로 지위가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주자의 차용금이 사용된 것을 주목한 셈이지요. 쉽게 말해 발주자가 건축주 지위를 회복했음에도 건축주 지위를 자신이 아닌 또 형태와 내용이 동일한 건축주에게 둠으로써 하도급업체들의 공사대금 지급을 면탈했다는 의미입니다. 발주자가 자신의 차용금으로 건축주 지위를 다시 양수하면 응당 자신의 지위에 두어야 함에도 공사대금을 면탈하기 위해 건축주를 이용했다는 의미죠. 대법원은 법인격 부인의 범위를 확장한 겁니다. 쉽게 말해 돈 떼먹기 위해 제3자를 중간에 다른 회사를 끼워 넣는 편법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겠죠.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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