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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님 글과 유품을 지켜주오…퇴계 후손의 눈물

기자
송의호 사진 송의호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64)

조상이 남긴 글과 생전에 보던 서책을 어딘가에 넘기는 후손의 심정은 어떨까. 대구의 이동후(85) 옹은 지난 13일 집안에 내려온 고문서와 서책 등 650여 점을 한국국학진흥원에 모두 기탁했다. 이 옹은 이들 자료의 기탁 결심부터 넘길 때까지 서운함과 조상들에 대한 죄송스러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고서의 과학적 보존과 연구를 위해 이제는 기탁하는 길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며 위안을 삼았다.
 
기탁은 국학진흥원에 그런 뜻이 처음 전달되고 한 차례 현장 조사를 거친 뒤 보름이 지나 이루어졌다. 이 옹은 이날 국학진흥원의 자료 인수자들이 집에 도착하자 먼저 아파트 한쪽에 마련된 사당에 향을 피우고 조상들에게 고유(告由)했다. 선조들이 읽던 책과 자료를 더 이상 지킬 수 없어 이제 국학진흥원에 기탁한다는 내용이다. 사당 감실에는 이 옹의 4대 조상 신주가 모셔져 있다. 고유를 하는 동안 이 옹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한국국학진흥원 직원들이 기탁자의 집을 방문해 고문서와 서책 등을 인수하고 있다.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이 기탁자인 이동후 옹. [사진 송의호]

 
고유가 끝이 났다. 그때부터 국학진흥원 전종왕 학예사 등 3명은 서책과 고문서 등을 차례로 확인한 뒤 자료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한 뒤 준비한 종이상자에 담고 보자기에 쌌다. 2시간이 걸렸다. 기탁한 자료는 대부분 이 옹의 고조부인 유천(柳川) 이만규(李晩煃‧1845∼1920)가 남긴 것들이다.
 
기탁 자료 중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11대손인 유천이 과거시험장에서 작성한 답안지인 과지(科紙)와 대과인 문과에서 갑과 2등으로 합격했음을 알리는 붉은색 홍패가 있었다. 또 과거 급제자가 밖으로 나갈 때 얼굴을 가리는 녹색 사선(紗扇), ‘사간원 정언’ 등 각종 관직 임명장인 교지(敎旨) 등이 있었다. 유천이 주고받은 편지인 간찰(簡札) 뭉치와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을 지낸 아버지가 아들 유천을 위해 손수 쓴 경서(經書)도 나왔다. 사당 감실에 고이 보관돼 온 『퇴계집』 등 서책도 다수 포함됐다.
기탁자의 고조부(이만규)가 대과인 문과에 2등으로 급제했음을 적은 교지. 홍패로 불린다. [사진 송의호]

기탁자의 고조부(이만규)가 대과인 문과에 2등으로 급제했음을 적은 교지. 홍패로 불린다. [사진 송의호]

기탁자의 고조부(이만규)가 소과에 3등으로 급제했음을 알리는 교지. 백패로 불린다. [사진 송의호]

기탁자의 고조부(이만규)가 소과에 3등으로 급제했음을 알리는 교지. 백패로 불린다. [사진 송의호]

건양 원년(1896년) 고종 시기 예안군수 임명을 알리는 교지인 칙명. [사진 송의호]

건양 원년(1896년) 고종 시기 예안군수 임명을 알리는 교지인 칙명. [사진 송의호]

 
이들 자료는 6‧25 등을 거치며 간신히 보존되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이 집은 불행히도 남자라고는 군에 간 삼촌을 빼고 초등학교 5학년인 이 옹뿐이었다. 이 옹의 증조모는 전쟁 통에 이들 자료를 큰 상자에 넣은 뒤 자물쇠로 잠그고는 ‘근봉(謹封)’이라고 써 붙이고 외딴 집안 정자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는 어린 증손자를 향해 당부했다. “네가 크거든 이 책들을 집으로 옮겨 공부해라.”
 
이 옹은 전쟁이 끝나고 한참 뒤 그 상자 생각이 났다. 다행히 상자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누군가 손을 댄 뒤였다. 일부 자료가 사라진 것이다. 이 옹은 “남은 자료를 조상 대하듯 보관하며 보았는데 이제 우리 집을 떠나니 증조모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유천은 1910년 경술국치 비보를 듣고 24일 단식 끝에 순국한 향산 이만도의 아우다. 향산은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공조참의까지 오른 관료로 나라가 망하자 그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며 지도층의 의무를 몸을 던져 실천했다. 아우 유천 역시 나라가 망하자 안동 향리로 내려와 칩거하며 유림의 독립운동인 ‘파리장서 운동’에 앞장선다. 형제는 과거에 1‧2등으로 급제하고 함께 독립유공자가 되었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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