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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의 미국에서 본 한국] 한 해를 돌아보며: 걱정하기, 산책하기, 관람하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저는 ‘연말’이란 한국어 표현을 좋아합니다. 제게 연말은 한국과 미국 어디서든 항상 즐거웠습니다. 상쾌하고 차가운 공기, 잎새를 떨군 조각 같은 나무, 도시의 축제 조명과 시골의 칠흑 같은 하늘로 활기가 더해져 긴 산책에 안성맞춤인 때입니다. 어두워지면 영화와 책을 보고 가까운 이들과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를 내다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최근의 외교와 정치 뒤덮은 위기는
‘퍼펙트 스톰’이란 표현 가장 적절
‘기생충’ 보며 한국의 문제들 성찰
한반도외교 성과는 가장 어려울 듯

올해 연말에는 미국 국무부 벤저민 프랭클린 룸에서 열린 우아한 점심에 초대 받았습니다. 그날 점심은 미국 외교 아카데미의 연례 시상식  행사였습니다. 퇴직 고위 외교관들이 전직 외교관·정치인 또는 언론인·작가 중 미국 외교에 공헌한 이들을 치하하고 ‘외교의 오스카상’을 주는 자리입니다.
 
특히 올해는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의회의 탄핵 조사에 소환돼 증언한 외교부 관계자, 공무원, 군 종사자 등 현직에 있는 동료들의 용기와 프로 의식에 대한 대화가 길게 이어져 조용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점심 대화의 주요 관심사는 미국이 직면한 도전,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치와 외교적 과제에 대한 불안과 걱정의 수위였습니다. 수상자들도 소감에서 이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전 국무부 차관이자 현 카네기국제평화재단 회장인 빌 번즈는 저서 『비공식 루트: 미국 외교 회고와 개선의 필요성』에서 우리의 불안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우리는 국제 무대에서 한 세기에 몇 번 오지 않는 아주 드문 소성(塑性) 모멘트(plastic moment·전체 단면이 항복 응력에 다다른 순간을 뜻하는 건축용어)를 살고 있다. 1945년과 89년이 그랬고 지금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힘의 균형과 정치·경제·기술·환경적 대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는 것이다.’
 
존 네그로폰테 전 국무부 차관은 평생을 외교에 바친 공으로 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감에서 미·중 관계의 주요 과제를 언급하며 세계의 교역 구조와 환경에 미치는 위협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전략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짚어냈습니다.
 
저를 포함한 청중들 사이에는 이런 문제와 함께 비확산이나 세계 불평등과 같은 과제들도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조합하든 ‘완벽한 폭풍(퍼펙트 스톰)’이란 표현은 외교뿐 아니라 정치 제도와 가치를 뒤덮은 지금의 위기 의식을 가장 잘 묘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제가 워싱턴 D.C.에서 제일 좋아하는 동네인 로건 서클로 오후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우아하게 복원된 19세기 타운하우스인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이 공들여 되살린 옛날 외교 공관 겸 사택을 자주 갑니다. 이곳에서 헌신적으로 연구하는 직원들로부터 1세대 주미 한국 외교관들의 희망과 노고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을 더 잘 알리고 외세 침략에 대항해 자국의 힘을 키워나가는데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한 노력들 말입니다. 비참하게도 이런 노력은 20세기로 넘어가면서 당시 지정학적 세력의 힘에 의해 완벽한 폭풍 속으로 휩싸였습니다. 일본의 점령과 합병으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개인에게 팔렸고 최근에서야 되찾아 복원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회복력과 뿌리깊은 한·미 관계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저는 워싱턴에 오는 모든 한국인 친구들에게 로건 서클 방문을 추천합니다. 이 지역은 20세기 후반 대부분 쇠퇴했지만 현재 가장 앞서가고 인기있는 동네입니다. 최초의 한국 외교관들은 부동산 보는 눈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의 12월 ‘걱정하기, 걷기, 관람하기’ 3부작 중 마지막입니다. 이번 연말 미국인 친구들에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일찍부터 봉준호 감독의 팬이라는 사실을 즐겨 자랑했습니다. 2008년 한국의 워싱턴 특파원들에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라고 말했으니 말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영화 평론가 A.O. 스캇은 ‘2019년 최고의 영화’ 목록에 ‘기생충’을 올리며 ‘이처럼 세계 현황에 대해 더 슬퍼하게 만들고 영화업계 현황에 대해 더 기뻐하게 만드는 영화를 찾아 볼 수 없다’고 평했습니다.
 
이것이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곳곳에서 미국인들과 한국의 모든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교차했던 만감을 정리해주는 듯 합니다. 한국의 놀라운 경제·정치적 변화, 깊어지는 불평등과 좁아지는 기회에 따른 분노, 북한과의 평화·화해·비핵화를 향해 한 발자국 전진하거나 현상을 유지하는데 따르는 최근의(주로 내리막길이지만) 우여곡절과 북한 주민들의 더 나은 삶, 한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와 두 나라가 얽혀있는 관심사와 가치, 도전 과제 등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감정들 말입니다.
 
‘기생충’은 저를 웃고 울고 애도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2019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가오는 새해는 더 문제투성이에 그 파급력도 훨씬 심각할 것입니다. ‘기생충’이 오스카 상을 타기를 바랍니다. 한반도에서 상을 받을 만한 외교를 성취해내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만 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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