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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은 해외에, 돈은 중국서 버는 중국인 빅5

중국이 낳은 수많은 부호들은 알고 보면 이미 다른 나라 사람이 되어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인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중국인이 아닌 것.
 

중국 부호 가운데 국적 바꾼 사람들
복지, 세금 문제, 사업 편의 위해 이민

<글로벌 부의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1만 5000명의 중국 부자들이 해외로 이민을 갔다. 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국가는 4년 연속 호주인 것으로 집계됐다. 교육, 의료 등 복지와 치안 조건이 좋을 뿐만 아니라 상속세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중국 부호 가운데 더 이상 중국인이 아닌 사람들을 꼽아봤다.
 

하이디라오 장융(张勇)

하이디라오 장융 [사진 소후닷컴]

하이디라오 장융 [사진 소후닷컴]

 
"중국에는 '장융'이랑 이름을 지닌 기업가가 둘 있다."
 
마윈의 뒤를 이어 알리바바 회장으로 취임한 장융과, 훠궈 프랜차이즈 하이디라오 창업주 장융이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 하이디라오 장융 회장은 중국에서 나고 자랐으나 국적은 싱가포르인이다. 하이디라오 상장 전 본인 및 가족이 함께 싱가포르로 이민을 간 것.
알리바바 장융(왼쪽), 하이디라오 장융(오른쪽) [사진 바이두 바이커]

알리바바 장융(왼쪽), 하이디라오 장융(오른쪽) [사진 바이두 바이커]

 
하이디라오는 2018년 9월 3일, 홍콩 증시 상장 후 일년 여 사이 주가가 두 배 넘게 오르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기사 작성일(11월 28일) 기준 하이디라오의 시가총액은 1802억홍콩달러(약 27조 1500억 원)를 기록했다. 장융과 그의 가족은 현재 싱가포르 별장에서 머물며 중국 대륙과 싱가포르를 오가며 생활한다고 전해진다.
 

부부가오 돤융핑(段永平)

돤융핑 [사진 바이두 바이커]

돤융핑 [사진 바이두 바이커]

 
돤융핑 이름 석자를 아는 이는 드물지만, 아마 그의 회사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 오포(oppo)와 비보(vivo)를 만드는 부부가오(步步高)의 창립자가 바로 돤융핑이다. 부부가오는 원래 학습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2000년대 초반 중국어 학습자들에게는 HSK 스피킹 테스트 준비물로 익히 알려진 그 학습기다.
 
2006년,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 경매를 낙찰 받아 주목 받았던 돤융핑은 애플, 넷이즈 등 회사에 투자하며 중국의 워런 버핏이라 불린다. 그 역시 중국인이지만 미국으로 이민해 현재 미국 국적이다.
 

차오장난 장란(张兰)

장란 [사진 더우반]

장란 [사진 더우반]

 
장란(张兰)은 중국 요식업 프랜차이즈 차오장난(俏江南) 창시자다. 장란이 2000년 설립한 차오장난은 쓰촨 요리 전문 레스토랑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이름나 있다. '중국 요식업계 여왕'으로 통하는 장란은 S호텔 왕샤오페이(汪小菲) 회장의 어머니이며, 대만판 <꽃보다 남자(流星花园)>의 여주인공 쉬시위안(徐熙媛 서희원)의 시어머니이기도 하다. 차오장난 상장을 준비할 시기 국적을 바꿔 현재 세인트키츠 네비스 국적이다.
 

룽촹 쑨훙빈(孙宏斌)

쑨훙빈 [사진 바이두 바이커]

쑨훙빈 [사진 바이두 바이커]

 
룽촹중궈(融创中国) 쑨훙빈(孙宏斌) 회장은 현재 미국 국적이다. 일찍이 칭화대를 졸업하고 레노버(联想 롄샹)에 들어갔다. 한 때 레노버 후계자로 꼽히던 인물이었지만, 횡령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결백이 밝혀졌으나, 쑨훙빈은 레노버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룽촹중궈를 창립한다. 과감하게 중국 회사를 사들이며 부동산 업계에서 명성을 얻게된 그는 특히 위기에 몰린 러스왕(乐视网)을 구제하며 주목받았다. 현재 쑨풍빈의 룽촹중궈는 그 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부동산 회사로 성장했다.
 

청쿵그룹 리자청(李嘉诚)

리자청 [사진 바이두 바이커]

리자청 [사진 바이두 바이커]

리자청(李嘉诚 리카싱) 청쿵그룹 창립자는 홍콩 최고 부호로 이름났지만 1997년 가족이 함께 캐나다로 국적을 바꿨다. 그는 부동산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남다른 투자 감각으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홍콩의 경제 성장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2018년) 만 90세가 된 리자청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은퇴를 선언했다.
 
 
차이나랩 홍성현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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