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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어느 목수의 당부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목수는 신묘한 목공솜씨로 알려진 건 아니었다. 나이로 치면 고구려 유리왕과 비슷하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의 누구도 지구 반대쪽 그의 존재를 알 길은 없었다. 그런데 그 목수는 인류 역사를 바꾸었고 지금 지구 전체가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가 없었다면 세계는 올해가 몇 년이냐며 연호 통일방안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업종통계로 한국에서 편의점·치킨집보다 많은 게 교회다.
 

그리스어 원전의 신약성서
번역 과정의 미묘한 변화
예수의 가장 중요한 당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예수의 태생·정체성·죽음이 여전히 논쟁대상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적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는 어렵다. 그 증언 도구는 신약성서하고도 복음서라 부르는 문서다. 그의 사후 한 세대가 지나 정리된 문서 파편의 조합이다. 그런데 누대의 번역을 거쳐 전파되며 당연히 오해가 생겼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그의 직업, 목수다.
 
복음서 두 곳에 그의 직업이 엉뚱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유태인 공회당인 시나고그에 모인 사람들이 내뱉은 감탄사 덕이다. 예수의 총명함이 직업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번역된 두 문장은 각각 이렇다. 목수가 아니냐,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직업의 부자전승이 당연하던 시절인지라 목수든 목수의 아들이든 문제는 아니다.
 
복음서는 당대 공용어 고대 그리스어 기록문이다. 원문 단어 텍톤(tekton)에는 목수(木手)에 묻어있는 나무의 의미가 없다. 그냥 뭔가를 만드는 장인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이 나사렛의 텍톤은 대체 뭘 만들었을까. 그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짚이는 것이 있다.
 
그는 집을 지어본 경험이 충분한 자의 문장을 구사한다. 집을 지을 때 땅을 깊이 파 주초를 반석 위에 올려야 하고 망루를 세울 때 준공 시까지의 예산을 미리 계산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심지어 제자들이 이 목수에게 커다란 석조건물 해설을 요청하는 장면도 있다. 그는 아마도 집 짓는 장인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가 남긴 비유로 가장 많은 것은 씨 뿌리고 양 치는 내용이다. 당시 나사렛의 마을 크기를 고려해야 한다. 고고학자들은 당시 나사렛 인구를 이 백 명 남짓으로 짐작한다. 집 짓는 장인이 상시 고용될 규모는 아니다. 전업으로 집 짓는 자를 지칭하는 그리스어는 오이코도모스(oikodomos)다. 예수는 필요하면 집도 짓고 이것저것 만들기도 하는 텍톤이되 평소에는 농사도 짓고 양도 쳤을 것이다.
 
이 텍톤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파베르(faber)가 된다. 여전히 장인이다. 근엄한 교황청 언어를 속세 독일어로 번역할 때 루터가 선택한 단어는 짐메르만(Zimmerman)이다. 의자나 소품을 만든다기보다 방 내부를 꾸미는 목수다. 영어에 이르러서야 예수는 톱과 대패로 무장하고 나무에 속박된 직업 카펜터(carpenter)를 얻는다. 목수다.
 
혹시 예수가 건축가(architekton)는 아니었을까. 그런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건축은 왕족·귀족 발주의 건물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건축가는 로마 시민이어야 했고 식민지 시골 젊은이에게 허용되지 않는 직책이었다.
 
문장이 이상한 예수의 일갈이 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이 괴상한 문장을 이해하려면 나사렛지역 건축특성을 살펴야 한다. 집을 지으려면 우선 채취·가공이 쉬운 석회암으로 벽을 쌓았다. 지붕이 문제다. 강수량이 거의 없는 지역이니 경사지붕은 필요 없다. 먼저 벽 상부에 곧고 굵은 삼나무로 들보를 얹고 그 위에 직각방향으로 잔가지들을 촘촘히 올린다. 햇빛만 막으려면 여기서 그치면 된다. 제대로 방을 만들려면 그 위에 진흙·석회가루, 마른 풀을 섞어 개서 겹겹이 바른다. 그러면 사람이 올라가도 좋은 평평한 지붕이 완성된다. 신약성서에서 다락으로 알려진 곳은 사실 죄 옥상을 이르는 것이다. 일갈로 돌아오자. 공방 청소 중이었던 모양이다. 문장을 다시 번역하면 이렇다. 너는 어찌 네 눈앞의 들보(dokos)는 놓아둔 채 형제가 잔가지(karpos) 안 치운 걸 타박하느냐.
 
중풍 환자를 지붕에서 방으로 들여보냈다는 일화가 복음서 두 곳에서 다른 단어로 언급된다. 각각 잔가지를 걷었다거나 진흙을 파냈다는 의미다. 건축 정황근거로 보면 잔가지 걷어냈다는 게 더 자연스럽다.
 
영어성서가 한글로 모습을 바꾸며 달라진 것이 있으매 이 목수가 아무에게나 반말이더라. 그리스어로 예수를 지칭하던 쿠리오스(kurios)는 존귀한 자라는 번역이 어울린다. 그런데 영문으로 이 호칭은 그냥 주인(lord)이 되었다. 반상양천(班常良賤)이 지엄하던 시대의 번역자가 주인의 존댓말을 상상하기는 어려웠겠다. 하지만 나사렛의 목수는 훨씬 겸허하게 말했을 것이다.
 
곧 성탄절이다. 무신론자 건축가에게도 성탄절 진위, 목수의 직업 실체가 궁금하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의 무성생식, 생명체의 사후부활을 믿지 않는 자에게 그게 중요할 정도는 아니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목수가 죽음을 무릅쓰고 남긴 평화의 당부다. 그건 이천 년을 살아남아 한겨울에도 여전히 우리 마음을 덥히는 문장이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아니지,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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