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그라운드 안에선 '라이언', 밖에선 '젠틀맨'… 콜린 벨의 두 얼굴 리더십

콜린 벨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콜린 벨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치열했던 한일전이 끝난 뒤, 17일 부산 구덕운동장 홈팀 라커룸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기자회견까지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선 콜린 벨(58·잉글랜드)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고개 숙인 선수들을 둘러봤다. 비길 수 있었던 경기를 막판 실수 하나로 내주고 만 선수들은 벨 감독의 눈치를 살폈다. 벤치에서 격렬하게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통한의 핸드볼 파울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심서연(30·현대제철)도, 대회 최우수 수비수에 선정된 장슬기(25·스페인 마드리드CF 페미니노 입단 예정)도 고개를 푹 숙였다. 
 
벨 감독은 선수들에게 말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매우 실망스럽다." 선수들의 어깨가 쳐졌다. 그러나 벨 감독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벨 감독은 "하지만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훈련 기간부터 지난 3경기까지 우리 선수들이 보여준 능력과 에너지, 경기력, 태도는 모든 순간이 만족스럽고 또 즐겁고, 자랑스러웠다"고 말한 뒤 "싫고 아팠던 순간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일본전 88분"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전 후반 43분, 핸드볼 파울로 페널티킥을 내준 그 순간이다.
 
주장 김혜리(29·현대제철)부터 막내 추효주(19·울산과학대)까지 23명의 선수들은 벨 감독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 쓰린 기억이지만, 외면하고 덮어둬서는 안되는 실수이기도 했다. 벨 감독은 "우리는 최소한 비길 자격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 아픔을 깊게 새겨 더 나은 팀이 되길 원한다"고 선수들을 다독인 뒤 말했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어라. 국가를 대표해 충분히 잘해줬으니 자신감 있게 나가자."
 
지난 15일 펼쳐진 2019 동아시안컵 한국과 대만의 경기. 콜린 벨 대한민국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15일 펼쳐진 2019 동아시안컵 한국과 대만의 경기. 콜린 벨 대한민국 감독이 작전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선수들을 다루는 법 아는 '여자 축구 전문가'
"감독님이 화가 많이 나신 줄 알았다." 그 순간을 떠올린 장슬기의 말이다. 장슬기는 "감정적인 걸 우리에게 표출하신다. (경기 후)화가 많이 나신 줄 알았는데, 한 번 확 하시고 결국 우리가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시더라"며 미소를 보였다. 김혜리는 "감독님이 실망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티를 안내시더라.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실망하신 것 같다"며 "2월 올림픽 예선에서 더 잘하겠다"는 말로 벨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장슬기의 표현대로 벨 감독은 여자 축구 전문가다. 1989년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벨 감독이 여자 축구를 처음 맡은 건 2013년, 독일 여자 분데스리가의 FFC 프랑크푸르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다. 부임 첫 시즌 독일 컵대회 우승을 이뤄낸 벨 감독은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만들어냈다. 부임 첫 해 리그 우승을 놓치고 정확하게 12개월 후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린 이야기는 이번 대회 한국의 상황과도 닮아있다. 그래서 벨 감독은 일본전이 끝난 뒤 낙심하고 있는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시절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이후 노르웨이 아발드네스, 아일랜드 여자축구대표팀 사령탑을 거친 벨 감독의 '여자 축구 전문가'다운 연설이었다. "여자 축구를 오래하셔서 그런지 우리를 다룰 줄 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장슬기의 말처럼, 선수들은 자신을 이해하는 벨 감독의 리더십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
 
 
※벨 감독 일본전 후 라커룸 영상(https://youtu.be/BOUsHzAUju0) 대한축구협회
 
 
◇화낼 땐 화내고, 다독일 땐 다독이고… 그라운드 안팎 다른 '두 얼굴' 콜린 벨  
벨 감독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선수들을 그라운드에 풀어놓은 90분 동안 벨 감독은 한 마리 사자가 된다. 90분 내내 서서 그라운드를 날카롭게 바라보고, 잘못한 부분은 소리 높여 엄격하게 지적한다. 잘하면 '엄지 척'도 아낌없지만 플레이에 실수가 나오면 동작이 커지고, 휘파람을 불어 선수들을 집중시킨다. 그라운드 밖에서 친근하게 한국말을 구사하고, 선수들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거는 '젠틀'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대표팀 관계자는 "감독님이 코칭스태프들에게도 '경기할 때 나는 원래 라이언(사자) 같다'고 하셨다더라"고 귀띔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사진=대한축구협회

 
하지만 사자처럼 화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들은 그라운드를 벗어나는 순간 사라진다. 경기 중 나온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지적할 때도, 기자회견에 나서 패배의 아쉬움을 전할 때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그라운드 위의 벨 감독이 엄격한 사자라면, 그라운드 밖의 그는 다정한 젠틀맨이다. 첫 경기였던 중국전이 끝난 뒤엔 선수들을 1대1로 면담하는 시간도 가졌다. 선수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이 좋게 평가한 부분, 부족한 부분을 얘기해주고 어떤 플레이를 원하는지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1년 4개월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심서연은 개별 면담이 끝나고 눈물을 보였다. "네가 필요하다, 너를 믿는다." 벨 감독의 말에 신뢰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쏟아진 눈물이었다.
 
벨 감독은 대중의 마음을 휘어잡는 법도 안다. 일본전이 끝난 뒤 벨 감독은 "일본의 우승을 축하하고 존중하지만, 어떻게 이겼는지는 의문이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말로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승부가 될 수 있었는데 일본에 승리를 선물한 셈이 됐다", "일본이 시상식을 할 때 심장에 칼이 꽂히는 듯한 아픔이 있었다. 지면 안 되는 경기였고 무승부가 될 수 있었다"고 거침없이 표현했고, 그러면서도 "결과엔 실망했지만 선수들이 보여준 에너지와 기량에는 실망하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칭찬을 전하기도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전달한 뒤 자리에서 일어선 벨 감독은 마지막으로 '오늘의 한국어' 한 마디를 남겼다.
 
"안녕히 주무세요." 
 
 
부산=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