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10월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현장에서 크게 다친 이기백 전 장관이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2/17/4f0b8583-1bce-44d4-aec9-ee4e18255b93.jpg)
1983년 10월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현장에서 크게 다친 이기백 전 장관이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백 전 국방장관
온몸 파편 수술 끝에 구사일생
당시 군복은 육사 박물관 전시
하나회 가입 안했어도 대장 진급
하지만 심장 쪽으로 날아온 파편이 정복 우측 가슴에 단 합참 휘장에 박히면서 치명상은 가까스로 피했다. 당시 25세의 중위였던 부관(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2차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피투성이가 된 고인을 둘러업고 구조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골조만 남은 테러 현장. [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2/17/7396a410-c1b9-49b7-8472-49904e88841a.jpg)
골조만 남은 테러 현장. [연합뉴스]
전인범 전 사령관은 본지 통화에서 “고인은 당시 목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쳐 수술 후 10시간 만에 깨어났는데 첫 마디가 ‘대통령은 괜찮으신가’였고 다음이 ‘지금 몇시인가’였다”고 말했다. 전 전 사령관은 “그럴 정도로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심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은 정치색이 없이 자기 임무에 충실하셨던 분”이라며 “국회의원 제안을 받고도 ‘장관 했으면 됐다’며 끝까지 거리를 뒀다”고 추모했다.
![테러 당시 이 전 장관이 입고 있던 정복. 오른쪽 가슴의 휘장이 파편을 막았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2/17/94392b10-c4e7-4110-8a72-c6577e806ed7.jpg)
테러 당시 이 전 장관이 입고 있던 정복. 오른쪽 가슴의 휘장이 파편을 막았다. [중앙포토]
고인은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국선장, 보국훈장 통일장, 수교훈장 광화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경연 씨와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영결식은 18일 정오 서울현충원에서 합참장으로 치러진다. 02-2258-5940.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