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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아웅산 테러 수술받고 “대통령은?”

1983년 10월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현장에서 크게 다친 이기백 전 장관이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3년 10월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현장에서 크게 다친 이기백 전 장관이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 병원에서 치료받은 뒤 휠체어를 타고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백 전 국방부 장관이 16일 별세했다. 88세. 1931년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52년 1월 육사 11기로 입교한 뒤 1군단장, 제2 작전사령관, 육군참모차장을 거쳐 제19대 합참의장과 제24대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이기백 전 국방장관
온몸 파편 수술 끝에 구사일생
당시 군복은 육사 박물관 전시
하나회 가입 안했어도 대장 진급

고인은 1983년 합참의장 재직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을 수행했다. 그때 북한 공작원이 저지른 아웅산 국립묘지 폭탄 테러의 현장에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목숨을 건졌지만 현장에 함께 있었던 서석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이범석 외무장관 등 각료급 인사와 언론인 등 17명이 숨졌다. 고인도 이때 머리와 배에 폭탄 파편이 박히고 다리가 서까래에 깔리면서 크게 다쳤다.
 
하지만 심장 쪽으로 날아온 파편이 정복 우측 가슴에 단 합참 휘장에 박히면서 치명상은 가까스로 피했다. 당시 25세의 중위였던 부관(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이 2차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피투성이가 된 고인을 둘러업고 구조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골조만 남은 테러 현장. [연합뉴스]

골조만 남은 테러 현장. [연합뉴스]

파편 자국이 남은 그의 정복은 귀국 뒤 육군사관학교에 기증돼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됐다.
 
전인범 전 사령관은 본지 통화에서 “고인은 당시 목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화상을 입는 등 크게 다쳐 수술 후 10시간 만에 깨어났는데 첫 마디가 ‘대통령은 괜찮으신가’였고 다음이 ‘지금 몇시인가’였다”고 말했다. 전 전 사령관은 “그럴 정도로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심이 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은 정치색이 없이 자기 임무에 충실하셨던 분”이라며 “국회의원 제안을 받고도 ‘장관 했으면 됐다’며 끝까지 거리를 뒀다”고 추모했다.
 
테러 당시 이 전 장관이 입고 있던 정복. 오른쪽 가슴의 휘장이 파편을 막았다. [중앙포토]

테러 당시 이 전 장관이 입고 있던 정복. 오른쪽 가슴의 휘장이 파편을 막았다. [중앙포토]

고인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였지만, 11기가 주도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하나회 출신들의 독주 속에서도 ‘비하나회’로 대장까지 진급했다. 합참은 이날 “고인은 합참의장 및 국방부 장관 재임 중 즉각 전투태세를 완비한 가운데 ‘총력안보태세 강화’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며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강력한 연합방위태세를 확립해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국선장, 보국훈장 통일장, 수교훈장 광화장 등의 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전경연 씨와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영결식은 18일 정오 서울현충원에서 합참장으로 치러진다. 02-2258-5940.  
 
유지혜 국제외교안보에디터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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