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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사건 車운전자에 6년형···구형 내린건 AI 검찰이었다

[중앙일보]

[중앙일보]

“AI 판사에게 재판받는 게 낫겠다.”  

AI 전문가 괴벨-임영익 변호사 대담

“유럽인권재판소 판례 학습 결과
인간 판결과 5건 중 4건 일치”

미 로펌 AI, 초당 10억 장 판례 분석
변호사들 재판 전략 짜는 데 기여

“그렇게 판결할 거면 로봇으로 바꿔라.”
 
논란이 되는 재판 결과가 나오면 인터넷에선 판사를 비판하는 글이 적지 않게 올라온다. 판결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판사 대신 인공지능(AI)에게 재판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실제로 로봇 판사에게 재판받는 날이 곧 올까. 법률 AI 전문가인 랜디 괴벨(Randy Goebel) 앨버타대 교수와 임영익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대표를 지난 1일 만났다. 괴벨 교수는 사법연수원 초청으로 컨퍼런스 특별 강연을 하기 위해 방한했다.

 
괴벨 교수가 몸담은 캐나다의 앨버타대는 AI 연구의 선두 주자다. ‘알파고’로 유명한 구글의 AI 자회사 딥마인드는 2017년 7월 캐나다 앨버타주의 에드먼턴에 ‘딥마인드 앨버타’를 설립했다. 임 대표는 지난 2011년부터 국내 최초 법률 AI ‘아이리스’와 계약서 분석 법률 AI ‘알파로(Alpha-Law)’ 등을 개발한 개발자이자 변호사다. 
 

에스토니아는 소액사건 다루는 AI 판사 등장

 
괴벨 교수는 “지금은 ‘AI 팬더믹(인공지능 유행병)’ 시대”라고 정의했다. 전 세계 모든 분야에서 AI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는 의미에서다.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적용이 어려울 것이라 예측한 법률 분야에서도 AI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임 대표가 북유럽 발트해에 위치한 인구 140만 명의 작은 국가 에스토니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에스토니아에선 7000유로(약 949만원) 미만의 배상액이 나오는 소액 사건의 경우 AI 판사가 판결을 내리죠. 당사자가 결과에 불복할 경우에만 인간 판사에게 정식 재판을 청구합니다.”
 
또 다른 예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해 5월부터 ‘206’이라는 AI 재판 도우미를 도입해 여러 도시에서 실험해 왔다. 형사재판에 본격 활용될 206은 관련 증거를 요청하면 감시카메라 영상을 재생하거나 정신 감정서 등 증거를 종합적으로 제시한다.
 
미국에서는 AI가 판사 등 법관의 일을 보조한지 오래다. 2013년 2월 에릭 루미스는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총격 사건에 사용된 차량을 운전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형량판단 알고리즘인 ‘컴퍼스(COMPAS)’를 이용해 중형인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컴퍼스는 “루미스의 폭력 위험과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법원은 이를 그대로 인용했다. 루미스는 항소했지만 2017년 미국 위스콘신주 대법원은 AI의 판단을 기초로 루미스에게 중형을 선고한 판결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정확도는 얼마나 될까. 임 대표는 “2016년 영국과 미국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재판예측 알고리즘은 유럽인권재판소(ECHR) 판결 사례를 학습해 사건 5건 중 4건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며 “80%에 가까운 예측 성능을 보인 셈”이라고 말했다. AI의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임영익 대표와 랜디 괴벨 교수가 지난 1일 시그니엘 호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희연 기자.

임영익 대표와 랜디 괴벨 교수가 지난 1일 시그니엘 호텔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희연 기자.

 

“판사도 결국 사람…AI 도움받을 수 있어”

괴벨 교수는 “한국도 법률 분야에서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법률 시장의 비용절감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일찌감치 법률 분야에서 AI를 활용해온 미국에서는 계약서 등 법률 서면을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AI 프로그램이 흔하다. 미국 전통 강자 로펌 ‘베이커 앤드 호스테틀러’는 2016년 IBM의 AI 변호사 ‘로스(Ross)’를 고용했다. 로스는 초당 10억장의 판례를 검토하고 분석해 재판 전략을 짜는 데 필요한 내용을 찾아낸다. 괴벨 교수는 “로스 덕에 변호사들은 소모적인 리서치 업무 대신, 전략을 세우거나 새로운 케이스를 맡을 수 있게 됐다”며 “변호사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재판 과정에 AI를 도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질문에 괴벨 교수는 ‘변수의 감소’를 강조했다. “판사도 결국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날따라 기분 나쁜 일이 있을 수 있고, 그런 기분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럴 때 AI가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해당 판사의 지난 판결과 그날의 판결이 다른 성향을 띈다면 AI가 경고음을 울릴 수 있단 얘기다.

 
미국의 판결 예측 서비스인 ‘렉스 마키나(Lex Machina)’가 대표적이다. 렉스 마키나는 판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소송 당사자와 변호사에게 분석자료를 제공한다. 사건을 맡은 판사의 성향, 판결 소요 시간, 비슷한 사건에서의 결정 등을 AI로 분석해 제공하는 것이다. 렉스 마키나는 특정 사안에 대한 승소 및 패소할 확률 등 판결 결과를 예측하기도 하고, 합의할 경우 예상 합의 금액까지도 분석해 제공한다. 변호사는 렉스 마키나가 제공한 자료를 보고 재판 전략을 짤 수 있다. 판사는 과거 이력을 토대로 자신이 어떻게 판결을 내리는지 확인하고 다른 판사들의 판결을 통해 배울 수도 있다. 
 

“AI는 도구(tool)일 뿐…인간 대체 할 수 없어”

그렇다면 AI 판사가 인간 판사를 대체할 수 있는 걸까. 답은 “노(No)”다. 괴벨 교수와 임 대표는 AI 기술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발달하더라도 “결국 결정은 인간이 내려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 대표는 “AI는 단순 작업을 맡는 시간을 절약해주는 기계일 뿐, 작업의 질을 높이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라며 “사회적, 환경적 의미를 모두 고려해 판단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AI 연구의 다음 단계가 ‘설명 가능한 AI(Explainable AI)’로 넘어가고 있는 이유도 이런 한계 때문이다. 설명 가능한 AI는 판단에 대한 이유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AI다. AI가 판사나 변호사에게 분석을 통해 내놓은 결과를 설명하고, 이를 근거로 인간이 결정을 내리면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신뢰도도 높일 수 있다는 게 두 사람의 설명이다. 
 
2018년 4월,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임영익 대표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

2018년 4월, 인텔리콘 메타연구소 임영익 대표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앙일보]

 
다만 한국에선 재판 분야에서 AI를 도입하는 게 한계가 있다. 임 대표는 “AI 학습을 위해서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가 중요한데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 아래에선 힘들다”며 “관련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괴벨 교수도 “지나친 개인정보보호법은 오히려 우리 사회를 불투명하게 만들 뿐”이라며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정부가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괴벨 교수는 “한국 정부에 딱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며 두 손가락을 내보였다. 첫째는 교육, 둘째는 강점을 살리라는 것이다. 괴벨 교수는 중국을 예로 들며 “이미 전 세계가 AI 인재 육성에 돌입했다”며 “한국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가장 강한 분야에 AI를 접목하는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며 “나라면 자동차 산업과 AI의 합작품에 걸어 보겠다”고 말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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