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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작아도 기술대국’ LG 매출 1150배로 키웠다

구자경 1925~2019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사진 LG]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사진 LG]

상남(上南)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

초등교사하다 ‘락희화학’ 입사
직원들과 숙식하던 ‘공장 지킴이’
45세부터 25년간 그룹 회장 맡아
첫 해외공장, 연구소 70개 설립

 
구 명예회장은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1970~95년 만 25년간 LG그룹을 이끈 2대 회장이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3대 회장의 아버지이자 현재 LG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광모 회장의 할아버지이다. 전경련 제18대 회장(87~89)을 지낸 그는 락희화학·럭키금성 시절의 LG를 지금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혁신가로 평가받는다.  
 
구 명예회장 재임 시절 LG의 매출은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다. 현재 LG의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의 기틀이 마련된 것도 이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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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25년 4월 경남 진주에서 6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모교였던 지수초등학교와 부산사범대 부속 초등학교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리며 교사로 재직했다. 50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후에는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름 없다”는 부친의 철학에 따라  공장에서 십수년을 보냈다. 가마솥에 직접 원료를 붓고 일일이 제품을 포장해가며 손수 럭키크림을 만들었다고 한다. 허름한 점퍼에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직원들과 함께 숙직하던 ‘공장 지킴이’였다. 국내 최초 플라스틱 가공제품 생산 현장과 금성사의 첫 라디오 생산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구인회 창업주가 62세를 일기로 69년말 타계하자 구 명예회장은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45세에 2대 회장에 취임한다. 75년은 ‘가전의 LG’가 시작된 해다. 연산 50만 대의 미국 수출용 컬러TV공장이 구미 공단에 세워졌다. 이듬해엔 냉장고·공조기·엘리베이터 등을 갖춘 국내 최대의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이 건립됐다.
 
70~80년대엔 울산에 8개의 화학 공장과 충북 청주에 ‘럭키 치약’으로 대표되는 청주공장을 설립해 종합 화학사와 생활용품 강자로 올라섰다. 83~86년 미래 첨단기술시대에 대비해 컴퓨터·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세워 오늘날 전자산업의 기틀을 닦았다.
 
구 명예회장은 해외 진출 1세대였다. 재임 기간 50여 개의 해외법인을 세웠다. 특히 82년 미국 앨라배마에 세운 컬러TV공장은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였다. 독일 지멘스와 금성통신의 합작에서 선진기술을 배웠고 일본 히타치, 미국 AT&T, 칼텍스 등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경영을 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구인회의 창업정신이자 럭키금성의 슬로건이었던 ‘인화단결·연구개발·개척정신’을 개척정신과 연구개발을 묶어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로, 인화단결은 ‘인간존중의 경영’이라는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제정했다. 1992년에 쓴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서 “사람이 곧 사업이다”고 표현할 정도로 인재를 중시했다. “완성된 작은 그릇보다 미완의 대기(大器)에 기대를 걸었다”는 어록도 남겼다.
 
결재 서류의 회장 결재 칸 위에 ‘고객결재’ 칸을 만들고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를 마련했다. ‘땅은 작아도 기술만은 대국인 나라’를 꿈꿨다. 그는 ‘기술입국(技術立國·기술이 나라를 세운다)’의 일념으로 재임 동안 70여개의 전자·화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70세가 되던 95년 2월 장남 구본무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용퇴했다. “혁신은 종착역이 없는 여정이며 영원한 진행형의 과제”라는 고별사를 남겼다. 시골로 내려가 분재와 난을 가꾸며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구자경 회장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위대한 기업가였다”며 "공장에서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대한민국의 화학산업을 일궜고 전자산업을 챙기며 기술입국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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