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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70주년 회의 곳곳서 파열음… 집단안보 뒤에서 갈등만 키워

미국 방위비 더 내라며 회원국 압박… 프랑스 대통령 “나토는 뇌사 상태”
 

70주년 나토의 미래

12월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70주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에 참석한 각 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2월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70주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에 참석한 각 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의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28개 회원국 정상이 12월 3~4일 영국 런던에서 연 창설 70주년 회의는 역사적인 회합이다. 70년이나 지속한 동맹은 서계사에서 보기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당위성이 그랬을 뿐 70주년 회의는 실제로는 분위기가 전에 없이 싸늘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냉전이 막을 내린 지 30년이 된 현재 나토가 겪고 있는 정체성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욱 세계화하고 다극화한 ‘글로벌 세상’이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동맹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집단안보체제의 미래를 살펴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정상회담이 끝난 4일 나토 회원국 수뇌들은 ‘대서양 동맹’의 유대가 계속될 것임을 재확인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대서양 동맹은 나토를 통한 미국과 유럽 간의 군사동맹을 가리키는 말로 시작해 냉전 이후에는 가치·경제·문화 협력까지 의미가 확대했다. 올해 공동 선언문에서 눈여겨볼 점은 “중국의 커가는 영향력은 나토가 대처할 필요가 있는 기회이면서 동시에 도전”이라는 문구가 새로 추가됐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군사대국 부상에 나토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기로 천명한 것은 처음이다.
 
냉전 초기 소련을 가상 적국으로 출발했던 나토가 창설 70년 만에 중국을 적국으로 인식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냉전은 끝났지만 앞으로 중국과 나토 간에 신냉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식화한 셈이다. 나토는 중국의 위협을 인식하는 한편 러시아와 테러세력의 위협에도 계속 대처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무게 중심은 중국으로 쏠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앞서 12월 3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중국의 군사대국 부상이 나토 안보에 주는 영향력에 대응해야 한다”며 “중국은 세계에서 둘째로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중국은 최근 미국과 유럽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며 “중국의 영향력이 나토 영역인 북미와 유럽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부상하자 나토 “공동 대응”

나토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나토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특히 “중국이 유럽의 사회기반시설과 사이버 공간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고 북극과 아프리카에서 우리에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나토의 안보 이익과 관련이 있는 인프라와 지역 투자에 대응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나토가 중국과 안보 문제를 두고 본격적으로 충돌하고 견제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그럼에도 최근 미국이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 기기와 관련해 안보를 이유로 사용을 금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나토 회원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탈리아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협력해 항구 개발 등에 공동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명백한 군사적 조치나 압박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면 국가 간 이익에 다라 해석이 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나토 차원의 대중 대처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중국은 근래 인터넷이나 정보통신, 항만, 공항, 에너지 등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나토의 공동 선언이 공허한 말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게다가 이번 나토 정상회담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견과 분열, 갈등과 반목이다. 이틀에 걸친 일정을 마친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대서양 동맹’의 유대가 계속될 것임을 재확인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며 중국의 부상에도 공동 대응하기로 했음에도 이는 표면적일 뿐 이면의 공기나 온도는 사뭇 달랐다. 이번 정상회의는 사실 분열을 보여주는 파열음이 곳곳에서 요란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토를 보는 트럼프의 싸늘한 눈초리와 동맹 앞에 비용만 따지는 ‘가치착오’적인 발언이다. 이러한 회담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국 뒤 발언이다. 런던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를 마치고 워싱턴에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5일 백악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관계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나토에 충분히 기여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무역에 관한 조처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는 또 “많은 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라는 국방 지출 기준에 접근하고 있다”면서도 “일부는 이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으며 부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고 누구든 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토 70주년 정상회담의 핵심이 국방 지출 부담 압박임을 자인한 셈이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우리는 무역과 관련 있는 일을 할지 모른다”며 국방 지출과 무역 문제를 연계할 뜻을 비쳤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가 나토 국방 지출 인상에 박차를 가하려고 무역 관련 조치를 취하겠다고 압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방 지출 인상 압박을 위해 동맹국에 무역 보복이나 제재를 가하겠다는 ‘살벌한’ 발언을 대놓고 한 셈이다. 트럼프는 “그들이 미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그들의 돈을 내놓지 않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해 동맹관계가 보호비를 지불하고 보호를 받는 관계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동맹국들이 경악해 하고 우려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나토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유럽 회원국들에게 국방 지출 증액을 압박하면서 계속 갈등을 겪어왔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이 나토 회원국은 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한다는 가이드라인이다. 이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2018년 이를 충족한 회원국은 미국(3.39%), 그리스(2.22%), 영국(2.15%), 에스토니아(2.07%), 폴란드(2.05%), 라트비아(2.03%), 리투아니아(2.0%)의 7개국 뿐이다. 나머지는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 경제 규모가 큰 주요 회원국인 프랑스(1.82%), 터키(1.64%) 독일(1.23%) 이탈리아(1.15%)도 마찬가지다. 스페인(0.93%), 벨기에(0.93%), 룩셈부르크(0.54%)는 가이드라인의 절반인 1%도 되지 않는다. 회원국인 아이슬란드는 군대 없이 해안경비대만 운용한다.
 
 

트럼프 “동맹국은 보호를 내라”

이번 정상회의에서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 회원국의 국방 지출이 증가세에 있다고 강조했다. 스톨텐베르크 사무총장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25억 달러의 나토 운영비 분담금도 조정해 미국 몫을 줄여 트럼프를 무마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트럼프는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국방 지출 증액을 대놓고 압박했다. 이에 나토 유럽 회원국들은 2024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GDP의 2%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지만, 트럼프는 4%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 중에서 국방비를 GDP 4% 수준으로 지출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사실 나토는 실질적으로 미국이 주도해왔다. 나토 통계에 따르면 나토 회원국 29개국의 2018년 국방비 1조134억 달러 가운데 미국이 7060억 달러로 가장 많다. 미국이 나토 전체 군사비의 69.67%를 차지하는 것이다. 나머지 회원국을 모두 합쳐도 전체 국방비 지출의 3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이 615억 달러, 프랑스 520억 달러, 독일 510억 달러, 이탈리아 257억 달러, 스페인 138억 달러, 그리스 50억 달러 수준이다.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는 미국이 너무 많은 돈을 부담한다고 볼멘소리를 하지만 사실 여기에 나토의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나토의 근원을 따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49년 4월 4일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으로 창설된 나토는 냉전시기(1946~1991년) 서방 군사동맹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북대서양조약은 미국이 주도해 영국·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룩셈부르크·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포르투갈 등 서유럽 국가와 북미의 캐나다가 미국 워싱턴에서 체결한 집단안전보장 조약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그리스에서 친서방인 정부군과 공산당의 군사조직인 민주군이 1946~49년 치열한 내전을 벌이면서 냉전이 격화하자 서방 세계의 결속을 위해 체결된 조약이다. 조약 제5조는 “회원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고 상호 원조를 한다”고 규정했다. 그 유명한 집단 안보 규정이다. 미국과 함께 소련에 대응한다면 미국이 방위를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다.
 
벨기에 나토 본부

벨기에 나토 본부

서유럽권을 미국의 영향력 아래 묶어 소련에 대응한다는 미국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된 것이 나토 동맹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나토의 본질이 담겼다. 서유럽 국가들의 소련에 대한 두려움이 이들의 나토 참여 결정을 이끌어냈다. 냉전 붕괴 뒤 중유럽과 동유럽 국가는 물론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옛 소련권 발트 국가까지 나토에 가입한 이유다.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창설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시작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은 나토 정상회의에서 이 집단안보 규정을 확인하는 연설을 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해왔다. 냉전 균열 이후 가치 동맹, 테러와의 전쟁 등 다양한 명분을 개발하며 존재해온 나토는 이렇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과 트럼프는 국방 지출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갈등을 빚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미군의 시리아 동북부 철수 결정과 그 뒤 이어진 또 다른 나토 회원국 터키의 해당 지역 쿠르드족에 대한 군사 공격이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이런 일련의 사태와 함께 미국과 나토의 유럽 동맹국 사이의 갈등과 미국의 리더십 부재, 터키의 예측 불가능성을 지적하면서 “나토가 뇌사 상태”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그러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트럼프는 그의 발언을 즉각 바난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나토 내부의 균열을 촉진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난 트럼프와 마크롱은 ‘나토 뇌사’ 발언은 물론 나토의 장래 역할, 터키의 위상,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쿠르드족 문제 등을 둘러싸고도 대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회견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함께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말했지만 마크롱은 나토는 뇌사상태라고 했던 발언에 대해 “철회하지 않겠다”며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균열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순간이다. 희극도 있었다. 12월 3일 버킹엄 궁에서 열렸던 나노 70주년 정상회의 환영 행사장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마크롱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과 대화를 나누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으로 40분간 늦었다는 내용 등으로 그를 놀리는 듯 한 발언이 희미하게 들리는 동영상이 4일 공개되면서 분위기는 더욱 나빠졌다. 트럼프는 트뤼도 총리를 가리켜 “위선적인 사람(two faced)”이라고 비난하고, 트위터를 통해 정상회의 뒤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갑자기 취소하고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백악관에서 무역을 이용해 압박하겠다는 발언은 그 직후에 나왔다.
 
정상회의에선 마크롱과 에르도안의 갈등도 계속돼 마크롱은 정상회의를 마친 뒤 쿠르드 민병대를 테러 단체로 볼 것이냐의 문제를 두고 터키와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극단주의 테러 단체인 이슬람국가(IS)을 시리아에서 몰아내는 과정에서 서방 동맹국들에 협조해온 쿠르드 민병대를 나토의 회원국인 터키가 공격한 이후 서방국가들과 터키는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이번 정상회의는 그 갈등이 쉽게 해결될 수 없음을 재확인한 행사였다. 사실 이번 정상회의는 냉전으로 시작된 나토 체제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중요한 행사였다. 대서양 동맹은 미국이 1948년 유럽 동맹국들의 전후 재건·원조 프로그램인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과 함께 서방 세계의 결속을 다진 핵심 정책이었다.
 
 

미국, 나토 전체 군사비 69% 이상 차지

미국은 1948년 4월 3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한 해외원조법을 바탕으로 4년 동안 서유럽에 130억 달러(2016년 가격으로 1300억 달러에 해당)를 지원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확립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대상이었다. 미국은 경제는 마셜플랜, 정치와 국방은 나토 체제를 앞세워 서방세계의 맹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냉전 이후 나토는 단순한 안보 동맹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서구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동맹’으로 발전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이번 정상회의는 나토가 가치동맹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불화를 뒤에 숨긴 채 갈등의 불씨만 키워왔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물밑에선 새로운 글로벌 시대에 나토라는 집단안보 체제가 얼마나 유익한지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다. 트럼프의 거친 대응은 이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중국과 대결을 선언한 나토는 당장의 균열부터 해결해야 할 처지다. 나토는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의문도 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할 트럼프는 국제관계를 이렇게 허물어 놓고도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될 수 있을까? 재선된 트럼프는 세계를 어떻게 뒤흔들까? 주한민군 분담금 협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의문은 끝이 없다. 하나 같이 불길한 예감이 드는 질문이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데 말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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