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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필리핀 은행 전산시스템 배우던 우리, 지금은…

기자
강명주 사진 강명주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21)

“아 나도 드디어 비행기 타는구나~” 태어나서 처음 해외로 나가는 날이다. 해외여행이 귀한 시절, 1980년대 중반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다른 부서장들과 함께 홍콩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선진소비자금융을 배우기 위해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시장 홍콩은 많은 이들의 선망의 도시다.
 
한국 리테일뱅킹(소비자금융) 사업총괄책임자로 홍콩인이 왔다. 한국에 선진금융기법과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아시아지역본부에서 특별히 홍콩 금융전문가를 한국에 발령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경영진에서 일부 부서장들을 선발해 홍콩으로 해외출장을 보냈다.
 
해외여행이 귀했던 1980년대 중반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다른 부서장들과 함께 홍콩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선진소비자금융을 배우기 위해서다. [사진 pixabay]

해외여행이 귀했던 1980년대 중반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다른 부서장들과 함께 홍콩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선진소비자금융을 배우기 위해서다. [사진 pixabay]

 
혹시나 여권과 비행기티켓이 없어질까 밤새도록 머리맡에 두고 잤다. 챙겨놓은 짐을 풀어보고 또 풀어보고 혹여 빠진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설레는 마음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 일찍 짐을 챙겨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약속장소에서 서로 반갑게 맞이하며 짐들을 다시 한번 챙겨본다. 해외여행가면 현지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김치가 생각나니 고추장을 꼭 챙기라 했다며 누군가 고추장을 자랑한다. 다들 정말 잘했다고 저절로 박수를 쳤다. 들뜬 마음도 잠시 우리는 모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 다 처음이기에.
 
서로를 위안하며 출국절차를 무사히 마치고 나오는 순간 면세점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에 이런 데가. 말로만 듣던 해외명품브랜드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외국잡지에서나 봤던 해외 명품들이 화려하게 진열되어 있다. 눈을 뗄 수가 없었지만 탑승시간에 맞춰 지정된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하자 우리는 꿈만 같았다. 비행기 안에서 제공되는 기내음식과 시중에서 먹던 달달한 와인과 차원이 다른 와인을 공짜로 마셔보며 우리는 모두 비행기 안에서 마음의 비행기를 또 타고 있었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휘황찬란한 홍콩야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공항에서 호텔 가는 동안 우리는 홍콩야경에 팔려 말문도 막혔다. [일러스트 강경남]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휘황찬란한 홍콩야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공항에서 호텔 가는 동안 우리는 홍콩야경에 팔려 말문도 막혔다. [일러스트 강경남]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 곧 이륙한다는 기내방송과 함께 홍콩입국서류를 승무원이 나눠준다. 우리는 누구라 할 거 없이 서류를 받자마자 서로의 서류를 번갈아 쳐다봤다. 모두 영어로 된 입국서류 제목이 Immigration이다. 번역하면 이민이다. 이민 서류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용기 내 승무원에게 우리는 이민 가는 것이 아니라 출장 가는 것이니 다른 서류를 달라고 했다. 승무원은 웃으면서 입국서류라고 설명해준다. 창피해서 그만 얼굴을 떨구었다.
 
서류를 작성하는데 이름 칸에 First Name, Given Name, Surname이 표시되어 있다. 헷갈렸다. 성과 이름을 잘못 적어 승무원에게 서류를 다시 부탁했다. 우리는 촌티 내지 말고 잘하자며 시험 고시 정답을 쓰듯이 한 글자씩 조심조심 써내려갔다.
 
비행기가 랜딩(착륙)하는 순간 우리는 본능적으로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랜딩 코스라고 하는 홍콩공항에서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 급정거하면서 발생하는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었다. 브레이크 굉음과 함께 튀어나가는 줄 알았다. 자연스레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따라하면서 입국심사를 마치고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왔다. 출국할 때 부쳤던 짐을 찾아 함께 밖으로 나온 우리는 홍콩의 야경에 그만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게 바로 별천지구나’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휘황찬란한 홍콩야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공항에서 호텔 가는 동안 우리는 홍콩야경에 팔려 말문도 막혔다. 호텔에서 체크인하려고 하는데 호텔카운터 직원이 우리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좀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국 여행객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다음 날 홍콩 시내에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본사를 구경하고 홍콩은행 업무부서들과 전산부서, 고객서비스 부서, 지점들을 차례로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업무절차들을 배웠다. 그들은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으로 굉장히 뽐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몇 년후 개최될 88 서울올림픽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자존심을 지켰다. 일본만 알고 한국을 몰라보는 외국인들에게 88올림픽 개최는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를 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경영진에 자리매김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내가 한국인으로서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경영진에 자리매김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1980년대 초·중반에는 한국에 새로운 금융제도나 전산시스템을 교육하기 위해 필리핀 관리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특히 필리핀 마닐라 콜센터가 얼마나 우수한지 특유의 필리핀영어로 자랑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에도 필리핀 부서장들이 있었지만 한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1980년대 중후반 들어서자 홍콩 출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출신들도 함께 한국에 발령을 받아 그들의 선진 금융기법들을 한국에서 뽐내고 있었다.
 
1990년대 초부터는 인도 출신들이 전산 IT 전문가로서 동남아 지역 여러 나라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아시아 금융권 최고자리에는 인도 출신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밀레니얼 시대 2000년대에 아시아태평양지역 보험권에서는 호주나 뉴질랜드 출신들이 그 주도권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한국 출신 아시아태평양지역 책임자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2002년 월드컵 개최 이후 한국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되었다. 해외 출장을 가면 월드컵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 한국 IT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그 잘난 인도 IT 전문가들도 한국의 발전된 금융시스템 앞에 맥을 못 추었다. 어느 사이에 아시아태평양지역 보험 경영진에 한국인들이 글로벌리더로 승진 발령받기 시작했고 그 행운을 나도 함께 거머쥐었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 경영진에 자리매김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대한민국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아시아태평양지역뿐만 아니라 해외 글로벌 기업 본사 경영진에 한국인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지난 30년 동안 자랑스러운 발전이다.
 
얼마 전 베트남을 다녀왔다. 한국의 1970~1980년대를 보는 듯했다. 다들 역동적이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하고 왔다. 그들과 함께 해외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대한민국 기업과 국민이 애국자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혀주고 있었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이다. 자긍심을 가지고 세계를 품 안에 넣어보자. [일러스트 강경남]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이다. 자긍심을 가지고 세계를 품 안에 넣어보자. [일러스트 강경남]

 
 
지구촌이라 불리는 글로벌시대, 전 세계가 무대다. 기업도 이제는 한국기업에서 세계기업으로 거듭나야 살아남는다. 우리 젊은이들이여, 더 이상 국내에서만 머물지 말고 한국에서 벗어나 세계 속으로 나아가자. 자긍심을 가지고 세계를 품 안에 넣어보자. 한국인에서 세계인으로 거듭나보자.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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