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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다고 느끼게 하라…색채도 형태도 ‘해체’ 시도

김정운의 바우하우스 이야기 <25>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현대미술의 경향을 보면 이런 질문은 아주 당연하다. 아무리 착한 마음으로 보려 해도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 싶은 전시회가 참 많다.
 

‘재현’ 포기한 예술의 새로운 길
타틀린 “재료가 형태를 만든다”
2차원 예술, 3차원으로의 확장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 이념으로

하지만 그런 질문은 ‘재현’의 포기가 시작되었던 20세기 초반부터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폼나는 대답은 ‘낯설게 하기(ostranenie)’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토르 슈클로프스키의 주장이다. 1916년 발표한 『방법으로서의 예술』이란 책에서 그는 예술의 목적을 “자동화된 인식체계를 비틀어 새롭게 느끼게 하는 데 있다”고 썼다.  
 
일상의 언어가 작품의 텍스트에서 어떻게 달라지는가, 즉 어떻게 낯설게 되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연극에 감정이입을 하며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여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소격효과(疏隔效果)’는 ‘낯설게 하기’의 확대버전이다.
 
도대체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텍스트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독립되고 조직화된 총체’였다(텍스트를 독립된 연구대상으로 삼은 러시아 형식주의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기호학’이 가능했다). 텍스트를 맥락에서 분리하여 텍스트 그 자체로만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슈클로프스키, 로만 야콥슨과 같은 이들에게 ‘형식주의자’라고 이름 붙인 이들은 (대부분의 혁신그룹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반대파였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한다는 비난이었다. 물론 오해를 야기하는 명칭이다. 그러나 ‘형식’처럼 여겨지는 텍스트 자체가 독립된 총체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리 크게 어긋났다고는 할 수 없다.
 
두스부르흐와 몬드리안의 ‘데 스틸’도 마찬가지다. 이름만 본다면 ‘데 스틸’은 영어로 ‘the style’이다. ‘양식’ 혹은 ‘형식’을 뜻한다. ‘데 스틸’도 러시아 형식주의처럼 ‘내용’이 아닌 ‘양식’을 추구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러나 ‘데 스틸’의 경우 ‘양식’은 각 개인을 초월한 ‘보편적인 어떤 것’을 뜻한다. 데 스틸은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의 균형을 추구한다고 선언했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 스틸’이란 이름은 두스부르흐가 창간한 잡지 ‘데 스틸’ 때문이다. 이 명칭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던 몬드리안은 ‘양식’이란 표현대신 ‘신조형주의(New Plasticism)’라는 말을 선호했다.
 
1‘데 스틸’ 잡지의 창간호 표지. 말레비치가 주장한 최종 편집단위 ‘사각형’의 가능성을 제일먼저 발견하고 실천에 옮긴이들이 바로 ‘데 스틸’ 그룹이다. 2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 회화를 해체는 그다음 단계의 창조적 통합, 즉 편집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말레비치의 ‘사각형’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마지막 단위, 즉 ‘영점’이었다. 3 타틀린의 ‘재료의 선택: 철, 스투코, 유리, 아스팔트’(1914). 러시아 구축주의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1‘데 스틸’ 잡지의 창간호 표지. 말레비치가 주장한 최종 편집단위 ‘사각형’의 가능성을 제일먼저 발견하고 실천에 옮긴이들이 바로 ‘데 스틸’ 그룹이다. 2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1915). 회화를 해체는 그다음 단계의 창조적 통합, 즉 편집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말레비치의 ‘사각형’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마지막 단위, 즉 ‘영점’이었다. 3 타틀린의 ‘재료의 선택: 철, 스투코, 유리, 아스팔트’(1914). 러시아 구축주의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러시아 형식주의나 네덜란드의 ‘데 스틸’이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오해를 받으며 활동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양쪽 모두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절대주의)와 블라디미르 타틀린(구축주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의 슈클로프스키나 야콥슨은 추상회화의 극단까지 밀어붙이던 말레비치의 열렬한 팬이었다. 맥락으로부터 독립한 총체로서의 텍스트를 주장하는 자신들과, 대상의 모방과는 전혀 관계없는 회화의 독자적 구성가능성을 추구하던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공동운명체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데 스틸의 두스부르흐는 전쟁이 끝난 후, 말레비치의 제자 엘 리시츠키를 만나며 러시아 구축주의 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진다. 이래저래 마땅치 않았던 몬드리안은 두스부르흐와 결별하고 파리로 돌아가 버린다.
 
20세기 초반, 대상의 재현이라는 전통적 회화관의 해체는 ‘색채 해체’(마티스의 포비즘)와 ‘형태 해체’(피카소의 큐비즘)라는 양방향으로 전개됐다. 피카소의 ‘형태 해체’가 더 파괴력이 있었다. 피카소가 주춤하는 사이, 북유럽 화가들은 제각기 형태 해체의 끝을 보려 달려들었다. 러시아 화가들이 가장 과격하게 반응했다.  
 
유럽에서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빠른 속도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러시아는 러일전쟁(1904)에 패한 후 ‘피의 일요일 사건’(1905)이 일어나는 등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겪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이 변화의 징조를 읽었다. 러시아 화단에서는 타틀린과 말레비치가 주도했다. 두 사람은 경쟁적으로 혁명 전후 러시아 예술계의 방향설정에 크게 관여했다.
 
러시아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선원, 악사, 서커스 단원을 전전하며 취미처럼 그림을 그리던 타틀린은 1914년 피카소의 화실을 방문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금속판과 철사로 만들어진 피카소의 작품 ‘기타’는 물감과 캔버스로 이뤄진 기존 회화의 틀은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조각, 조소의 상식까지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후 타틀린은 아주 막 나간다. 같은 해,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희한한 작품을 발표한다. ‘재료의 선택: 철, 스투코, 유리, 아스팔트(Selection of Materials: Iron, Stucco, Glass, Asphalt)’이다. 석회(스투코)가 칠해진 화폭에 철판조각, 나무, 유리조각 등을 붙여 놓았다. 러시아 ‘구축주의(Constructivism)’의 시작이다. (바이마르의 바우하우스에 구축주의를 처음 소개한 이가 바로 데 스틸의 두스부르흐다. 그로피우스는 이텐의 후임으로 구축주의자 모홀리 나기를 초빙한다.)
 
색채와 형태의 재현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회화에게 남은 선택지는 재료라고 타틀린은 생각했다. 회화의 재료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성요소들을 편집했다. 철, 나무, 유리와 같은 재료들이다. ‘재료가 형태를 만든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 반대는 성립할 수 없다는 타틀린의 구축주의는 후에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적 이념으로 발전한다. (이텐이 예비과정에서 가르쳤던 ‘재료 교육’도 같은 범주의 실험이다.) 그러나 ‘재료의 선택’은 회화의 색채, 형태, 재료를 완벽하게 해체했지만 여전히 사각형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이듬해 타틀린은 더 과감한 시도를 한다. ‘모서리 역부조(Corner counter-relief)’라는 작품이다.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915년 12월 개최된 ‘0.10-최후의 미래주의 회화’전에 전시된 이 부조물은 벽의 양쪽 모서리에 걸쳐져 있다. 프레임도 없고 받침대도 없다. 재료가 가진 물질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회화에서 추구하던 추상주의적 시도들을 단번에 폐기해버린다. 모서리에 걸린 타틀린의 작품은 평평한 벽에 걸려 있으면서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던 회화의 평면성도 해체했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의 확장이다. 관객들이 서성거리며 연속해서 고갯짓을 해야 하는 타틀린의 시도는 혁명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같은 전시회에 출품된 또 다른 작품에 의해 희석됐다. 바로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Black square)’이다.
 
말레비치 사각형, 창조적 편집의 최소단위
 
이 작품도 타틀린의 ‘재료의 선택’처럼 두 벽면이 겹치는 모서리에 전시됐다. 이 작품은 피카소 큐비즘의 다음 단계에 대한 말레비치식 고민의 결과였다.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회화의 프레임을 파괴하고 재료의 해체까지 시도한 타틀린의 구축주의가 훨씬 급진적이었지만, 방법론상으로는 말레비치의 ‘절대주의’가 훨씬 구체적이었다. 해체는 재구성 또는 재구축을 전제로 해야 한다. 다음 단계를 제시하지 못하는 해체는 그저 파괴일 뿐이다. 다다의 경우가 그랬다. 요소화, 분절화는 창조적 통합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말레비치는 재구성을 위한 ‘편집의 단위’로 ‘사각형’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이른바 ‘영도(零度·zero degree)’다. 사각형은 더 이상 환원될 수 없는 ‘평평하고 경계가 분명한 것’이라고 말레비치는 규정했다. 쪼개고 쪼개는 모더니티의 기본단위, 즉 ‘영도’를 사각형으로 규정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가 내포한 창조적 가능성을 가장 먼저 깨닫고 재구성에 착수한 이들이 바로 ‘데 스틸’ 그룹이다.
 
일단 말레비치나 타틀린이 공유한 ‘모서리’를 매개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이렇게 된다. 두 평면이 만나는 모서리에 작품을 설치한 것은 평면과 입체면, 즉 3차원 공간을 회화의 미래에 끌어오려는 시도다. ‘데 스틸’의 몬드리안은 2차원 평면을 고집했고, 두스부르흐는 말레비치의 제자 리시츠키를 알게 된 후 바로 3차원 공간의 편집가능성을 모색한다. 회화에서 건축으로 재빨리 옮겨갔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 지점에 바우하우스가 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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