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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기부가 키운 예술 나무, 문화 사회의 숲 이룬다

문화예술지원이 경영이다 <4> 2019 ARKO 예술후원인의 밤

문학평론가 고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유산 30억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부되어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위해 쓰인다. [중앙포토]

문학평론가 고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유산 30억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부되어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위해 쓰인다. [중앙포토]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유산 30억 기부 김윤식 미망인에 장관상
“남편이 남긴 것들은 공공의 유품”
개인의 일상적인 예술후원이 과제

문학평론가 김윤식(1936~2018) 선생의 말이다. 유가족은 선생의 유산 30억원을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부했다. 2022년 개관 예정인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을 위해서다. 서울대 국문과에서 평생 연구한 한국 문학 관련 저서 200여 권을 통해 얻은 수익금이 주축이다. 여기에 문학사적 가치가 높은 장서, 자료도 함께 기증한다.
 
가정혜 여사

가정혜 여사

자료를 일일이 확인하며 기증을 준비하고 있는 미망인 가정혜 여사에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이 수여됐다. 9일 서울 잠실 시그니엘 호텔에서 열린 ‘2019 ARKO 예술후원인의 밤’에서다.
 
김윤식 선생의 추모 영상이 상영되자 전 재산을 기부한 가 여사에게 참석자들이 경의를 표했지만, 여사는 눈시울만 붉힐 뿐 수상 소감 발표를 끝내 고사했다. “남편 일에 내가 나서고 싶지 않다”는 가 여사에게 “남편이 남긴 모든 걸 떠나보내려니 아쉽지 않냐”고 물으니 “내가 가져서 가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국립한국문학관을 짓는 게 초유의 행사잖아요. 남편이 남긴 것들을 어쩔까 생각하다가, 본인이 여기에 제일 동의할 것 같았어요. 전부 손으로 필사한 자료들이라 한국문학사 초기의 아날로그 자료라는 의미가 크죠.”
 
생전에 김윤식 선생이 기부 의사를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글 쓰는 것 외에는 한 게 없었기에 문학에 돌려주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게 가 여사의 말이다. “어떤 후손은 돈 내고 빌려가라 했다던데, 이해가 안 되요. 개인이 갖는 건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떠나고 나서는 공공의 유품이라 생각해요. 남편은 평생 피서 한 번 가본 적 없을 정도로 모든 시간을 공부에 바쳤죠. 생의 전부였던 문학 연구를 이어가게 하는 게 본인의 뜻일 것 같아요.”
 
‘ARKO 예술후원인의 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이 빛나는 밤에’라는 이름으로 매년 개최해 온 행사로, 올해 7회를 맞아 명칭과 내용을 확 바꿨다. 대기업 위주로 진행하던 ‘예술후원인대상’ 시상을 중소기업·공기업·개인·후원매개 등으로 다변화시켰다. 올해의 수상자는 부산은행·한국수자원공사·배우 신영균·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MBC ‘같이펀딩’ 등 7개 분야 10인이다. 후원우수기관 및 매개단체에 대한 인증패 수여식도 함께 진행해 각 분야 예술후원인 300여 명이 네트워킹의 시간을 가졌다.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예술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누구나 동등한 지위를 갖자는 뜻에서 명칭도 변경했다”며 “수많은 민간기구와 다양한 개인의 기부가 예술 나무를 키워 예술의 숲을 이루는 문화사회를 꿈꿀 때가 됐다. 일상적인 후원의 시대를 앞당기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예술후원인대상’ 주요 수상자들
개인 부문 권오춘
 
개인 부문 권오춘

개인 부문 권오춘

개인사업가 권오춘씨는 젊은 시절 한 예술가 부부의 어려움을 목격한 후 1980년 ‘초허당 창작지원기금’을 출연, 30년간 300명이 넘는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해 왔다. 클래식 애호가로 예술의전당에 총 4억원을 기부했고, 모교인 동국대에 82억원 상당의 미술품 300점을 기증했다.  
 
“예술가들에게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름다운  
영혼을 발견했어요. 내가 가난하게 살아왔기에  
그들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죠. 나도 예술을 알고  
싶어서 아무 조건 없이 작품 설명만 들려달라고 했어요.그들의 뜨거운  
예술혼은 내 삶에 빛이 돼주었습니다.”


중견중소기업 부문 (주)영산글로넷 박종범 대표
 
중견중소기업 부문 (주)영산글로넷 박종범 대표

중견중소기업 부문 (주)영산글로넷 박종범 대표

연매출 1조원 규모의 오스트리아 한상기업 영산그룹의 한국계열사. 전주세계소리축제, 평창대관령음악제 등 국내 음악축제를 후원하고 신진 음악가들의 유럽 진출을 돕고 있다.  
 
“1999년부터 빈에서 사업을 하면서 느낀 게  
문화예술이 백업되지 않는 경제성장은 모래 위의  
성이란 겁니다. 한국 예술가들이 콩쿠르를  
휩쓸 정도로 재능은 뛰어나지만, 실제 유럽 무대에  서기는 힘들어요.
한국 기업이 유럽 무대를 후원해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문화가
융성해져야 국가 경쟁력이 생기고 기업도 함께 발전하는 것 같아요.”
 
후원매개 부문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후원매개 부문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후원매개 부문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회계사 출신으로 2013년 제정된 ‘문화예술후원활성화에 관한 법률’ 초안 작성에 기여했다. 덕분에 예술과 기업의 네트워킹이 강화되고 메세나단체 활성화가 촉진됐다는 평이다.  
 
“예술계에서 회계와 세법을 강의할 때 어떤 분이  
‘돈도 없는데 무슨 세법을 배우냐’ 하시더라고요.  
기부를 받으면 된다고 했더니, 한국인들은 기부를  
안 한대요. 제가 보기엔 기부를 못 받는 것 같더라고요.  
모금 행위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 모금을 잘 하려면 매개인력  
양성이 절실합니다.  많은 후배 후원매개자들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프런티어 부문 (주)텀블벅 염재승 대표


프런티어 부문 (주)텀블벅 염재승 대표

프런티어 부문 (주)텀블벅 염재승 대표

문화예술분야 대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으로, 누적 후원금액 1000억원 달성을 앞두고 있다. 영화학도 출신의 염재승 대표는 크라우드펀딩 개념 태동기인 2011년 회사를 설립해 개인 기부문화 트렌드를 이끌어 왔고, 본인도 500건이 넘는 펀딩에 직접 참여했다.  
 
“학창 시절 영화 제작비를 마련하다 구상했어요.
예술은 국가나 기업이 아니라 시민이 누리는 것
이잖아요. 기업이나 기관보다 더 많은 시민이 후원을 통해 예술에
흔적을 남기면서 향유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예술이
일상속으로 더 깊게 들어올 수 있겠죠.”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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