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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코리안 좀비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2019년 한국 정치를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나는 ‘좀비’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강시는 나름 익숙한 존재였지만 좀비는 어원도, 문화적 배경도 낯설기만 한 대상이었다. 홍콩 영화의 단골 주인공에 코믹한 이미지로 그려지곤 했던 강시와 달리 피비린내 나는 잔인함을 동반하는 좀비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표창원·김세연 “정치 현실 자괴감”
내년 총선 ‘좀비 국회’ 오명 벗어야

그러던 좀비가 지난 1년 새 우리네 일상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연초 한국판 좀비를 등장시킨 6부작 시리즈 ‘킹덤’이 국내외 영화계를 강타한 게 시발점이었다. 할리우드 전유물로만 알았던 좀비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실감나게 묘사되자 세간의 관심도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2016년 영화 ‘부산행’이 1100만 관객을 모으며 자락을 깔아둔 터였다. 이후 좀비를 주제로 한 모바일 게임이 젊은층의 인기를 끌더니 급기야 정치권에도 좀비 바람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지난 10월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좀비 논쟁에 불을 붙였다. 그는 내년 총선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들처럼 바뀌고 있는 게 아닌가 자괴감이 들었다. 좀비에게 물린 느낌이랄까. 손이라도 자르면 독이 거기서 끝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있으면 나도 좀비가 되는 것 아닐까.” 20여 일 뒤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하며 좀비 얘길 꺼냈다. “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 받는다. 깨끗하게 해체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동료 의원들을 좀비에 비유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지만 의외로 사석에선 여러 의원들이 공감을 표했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그렇잖아도 요즘 부쩍 ‘좀비 국회’라는 말이 의원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무기력한 여당이나 반대밖에 모르는 야당이나 ‘살아 있는 시체’라는 좀비의 사전적 의미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인 셈이다.
 
그렇게 혼자만 좀비가 되면 별 상관이 없으련만, 문제는 전염성이 워낙 강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물리면 끝장이다. 중세 유럽을 파국으로 몰아갔던 페스트가 최근 베이징에 다시 출몰해 초비상이 걸렸다지만 좀비의 전파 속도는 페스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최근 유행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조차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빠르고 치명적이다. 표 의원은 “손이라도 자르면”이란 표현을 썼지만 물리고도 살아남은 경우는 어느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근묵자흑(近墨者黑). 가장 확실한 안전책은 좀비 근처에 가지 않는 거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경구를 다시 소환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모두가 외면하면 국회는 누가 지키나. 좀비들에게 한국 정치를 맡겨둘 수는 없지 않은가. 최근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지만 왜 정작 나가야 할 사람은 꿈쩍도 않고 괜찮은 평가를 받던 의원들만 책임을 지겠다는 건가. 왜 자책은 늘 양심 있는 자의 몫이어야 하는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걸 유권자들은 지켜만 봐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아직 좀비에 물리지 않은 누군가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적인 격투기 스타 정찬성 선수가 다음 주말 부산에서 옥타곤 링에 오른다. 그의 별명은 ‘코리안 좀비’. 아무리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쓰러져도 곧장 일어나 상대방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좀비를 빼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맞다. 좀비는 링에 있어야지 여의도에 있으면 나라가 불행해진다. 2020년 대한민국에 좀비는 코리안 좀비 한 명이면 족하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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