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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퇴직금 탈탈 털어…스스로 '지옥'에 가는 남자

소년은 오토바이와 친했다. 충남 청양의 외진 마을 좁다란 길을 누비는 데 그만한 것은 없었다. 오토바이는 교통수단이자 소통 도구였고 생계의 발판이었다. 소년은 이후 30년 가까이 바이크 핸들을 잡았다. 아버지 것을 빌려서, 정비공으로, 프로선수로. 
류명걸 프로가 우리나라 처음으로 '죽음의 레이스'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 참가한다. 류 프로는 11월 20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오프밸리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김현동 기자

류명걸 프로가 우리나라 처음으로 '죽음의 레이스'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 참가한다. 류 프로는 11월 20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오프밸리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 김현동 기자

이 사람, 류명걸(38) 프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죽음의 레이스’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 출전한다. 그는 “모터사이클은 대를 이어 충성하게 한다”고 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몰던 배기량 50cc는 다카르 랠리에서 몰게 될 450cc의 출력과 토크를 제어할 수 있는 밑천이었다는 말이다. 지난해 정비업체를 나와 전업 선수로 나섰다. 그는 ‘류 프로’가 됐다. 

오프로드 모터사이클 아시아 일인자 류명걸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 한국인 첫 출전
7800㎞ '죽음의 레이스' 내달 사우디서 열려


 

# 지난달 20일 류 프로를 경기도 포천의 한 오프로드 바이크 훈련장에서 만났다. 그는 바이크와 한 몸이 돼 3m 높이 둔덕에서 솟구치고, 물웅덩이를 가르며, 자갈밭을 짓밟았다. 그는 숨을 고르며 헬멧을 벗었다. 헬멧이 벗겨지면서 얼굴에 맺힌 땀을 긁어모았다. 그 땀은 땅에 네댓 개의 굵은 물 자국으로 변했다.
 
체력 소진이 많은 것 같다. 
“몽골 랠리에서 8일간 달리고 나니 6~7㎏이 빠졌다. 다카르에서는 12일간 10㎏ 빠지지 않겠나. 일주일에 닷새는 체력 훈련, 이틀은 라이딩 훈련을 해야 버틸 수 있다.”
 
그는 다시 로드의 리듬을 탔다. 크고 작은 둔덕을 만날 때마다 대퇴근과 대둔근을 긴장시키며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다. 중심을 잡기 위해 허벅지 안쪽 내전근과 박근을 바짝 조였다. 핸들을 잡은 팔뚝 전완근부터 가슴의 대흉근까지 상체 근육이 움찔거렸다. 그는 다카르 랠리에서 이렇게 하루 15시간 이상 12일간 달려야 한다. 2020 다카르 랠리는 다음달 5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스타트한다. 류 프로는 오전 4시 15분에 출발한다. 11일 하루만 쉬고 17일 피니시 테이프를 끊는다. 7800㎞를 달려야 한다. 60개국 300개 팀 이상 참가한다. 부상과 사망이 이어져 죽음의 레이스라 불린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페루 리마에서 출발해 원점 회귀했다. 70%가 사막지대였다. 바이크 부문 137명 중 75명, 절반 조금 넘게(55%) 5000㎞ 구간을 완주했다. 이번에는 75%가 사막지대다.  
류명걸 프로가 우리나라 처음으로 '죽음의 레이스'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 참가한다. 11월 20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오프밸리에서 훈련하던 류 프로는 "개인 자격, 일종의 독립군으로 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류명걸 프로가 우리나라 처음으로 '죽음의 레이스'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 참가한다. 11월 20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오프밸리에서 훈련하던 류 프로는 "개인 자격, 일종의 독립군으로 출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위험을 무릅쓰고 출전하는 이유는.
“꿈으로만 간직해 왔다. 참가는 생각지도 않았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차근차근 실력을 키웠다. 그러다가 모터사이클 입문 20여 년이 흘렀다.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겨스케이팅을 인기 종목으로 바꾼 김연아처럼 이정표를 만들고 싶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말이다. 바이크를 인기 종목으로 만들 작은 불씨가 되고 싶다.”  
차량보다 바이크가 위험하다.
“차량은 전복이 되더라도 시트와 벨트, 롤 케이지(roll-cage, 차량 내부의 파이프 형태 구조물)가 충격을 줄여준다. 내부라 심리적인 안정감도 있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완전히 노출돼 있다. 모터사이클도 안전 장비가 있지만, 차량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러면서 3D로 머리를 스캔한 뒤 맞췄다는 헬멧과 무릎·목·골반·상체 보호대를 보여줬다. 그는 “장비가 잘 채워지는 날은 라이딩도 잘 된다”고 말했다. 
 
다카르 랠리 목표가 있을 텐데.
“일단 완주는 해야 하지 않겠나.” 
류명걸 모터사이클 선수가 20일 경기도 포천 오프밸리에서 훈련 전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류 선수는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다카르랠리(모터사이클 부문)에 참가한다. 김현동 기자

류명걸 모터사이클 선수가 20일 경기도 포천 오프밸리에서 훈련 전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류 선수는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다카르랠리(모터사이클 부문)에 참가한다. 김현동 기자

# 고등학교 때 친구 오토바이를 타다 고장을 냈다. 고칠 돈이 궁했다. 2000년, 아예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비싸고 수리비용 많이 나오는 온로드(도로 주행) 대신 오프로드(산악·사막 주행) 바이크를 택했다. 부족한 돈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준 셈이다. 장거리 오프로드 대회인 랠리(rally)에 꽂혔다.

 
2007년 국내 첫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 10월 멕시코 바하 랠리(1500㎞) 클래스1에서 1위로 들어갔다. 바이크 부문 전체 순위로는 8위. 2017년과 올해 몽골 랠리(4000㎞)에서도 우승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울퉁불퉁 오프로드처럼 험난했다. 2012년 태국 랠리에서는 길을 잃었다. 충격이었다. 
류명걸 프로가 20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오프벨리에서 훈련 뒤 포즈를 취하고 있디. 김현동 기자

류명걸 프로가 20일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오프벨리에서 훈련 뒤 포즈를 취하고 있디. 김현동 기자

류명걸 프로가 2019년 3월 31일부터 4월 5일까지 6일간 열린 모로코 메르주가 랠리에서 질주하고 있다. 그는 이 대회에서 19위로 완주해 다카르 랠리 출전 자격을 확정했다. 사진=류명걸

류명걸 프로가 2019년 3월 31일부터 4월 5일까지 6일간 열린 모로코 메르주가 랠리에서 질주하고 있다. 그는 이 대회에서 19위로 완주해 다카르 랠리 출전 자격을 확정했다. 사진=류명걸

이후 몽골 랠리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2013년 리타이어(retire·중도탈락) 뒤 2014년 완주. 2016년에는 레이스 중 팔이 부러지면서도 피니시 라인에 들어섰다. 2017년 대회에서는 이전 대회에서 13시간이나 앞서 1위로 들어간 선수를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인이 우승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국의 바이크 선수들도 “정말이야?”라며 믿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는 몽골·일본이 오프로드 바이크 부문에서 강세다. 류 프로 자신도 “처음에 몽골 선수들을 보니 번개 같았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 일인자가 됐다.
 
몽골과 일본에 아시아 강자들이 많다.
“몽골은 환경이 좋다. 드넓고 험한 사막에서 라이딩을 할 기회가 많다. 시력 6.0이라고 할 정도로 눈도 좋지 않나. 잘 보이면 판단을 빨리하게 된다. 일본은 저변이 넓다. 후원도 많다. 성능 좋은 바이크를 자체 생산한다. 한국은 모터도, 저변도, 후원도, 환경도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랠리 대회 자체가 없다.”  
아시아 일인자가 완주가 목표라면 지나친 겸손 아닌가.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엔 통상 130~150명이 참가한다. 완주 비율이 50%가 안 된다. 30% 선일 때도 있다. 완주하면 종합 순위 50위권이다. 그것도 대단한 것 아닌가.”  
이번 42회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는 158명이 출전한다. 바이크 부문의 4개 클래스 중 류 프로가 출전하는 루키 클래스에는 40명이 포진해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완주하거나 리타이어되는 100여 명을 제쳐야 한다. 그는 대회 참가를 위해 스토킹 수준으로 라이벌 몽골 선수의 모든 기록과 기술을 눈여겨봤다.
  
몽골 선수 기록을 꼼꼼히 추적했다.
“몽골 랠리에서 우승한 뒤 다카르 랠리에서 완주한 친구다. 내가 2017년 몽골 랠리 1위가 되자 이 친구의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기록을 비교하니 내가 더 잘한 것으로 나왔다. 나도 다카르에서 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2020 다카르 랠리.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2020 다카르 랠리.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한 대 4800만원에 이르는 그의 450cc 바이크(허스크바나)는 이미 현지로 떠났다. 프랑스에서 규격 검사를 받고 사우디아라비아로 향하고 있다. 포장 무게까지 200㎏이 넘는다. 류 프로는 “바이크 운송비만 5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 바이크는 ‘임대’ 형식으로 쓰는 것이다.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출전에 얼마나 드나.
“최저 경비가 1억3000만원이다. 다른 랠리 경험이 있어야 출전 자격이 된다. 일종의 예선전이다. 이 비용까지 합하면 2억원. 현지 정비업자·스태프 등에 들어가는 돈까지 더하면 3억원이다. 씀씀이를 최소화하고 원활한 지원을 받기 위해 체코의 클림치브 레이싱팀과 협업한다.”
비용 마련이 쉽지 않았을 텐데.
“기업 소속이 아니라 개인으로 참가하는 거다. 일종의 독립군이다(웃음). 얼마 되지 않지만 10년 다닌 회사 퇴직금을 보탰다. 차도 팔았다. 전세자금을 빼고 2년간 창고에서 숙식하며 훈련했다. 2018~2019년 랠리 대회는 그 돈으로 메웠다. 1만원, 2만원 주신 개인부터 중소기업 후원까지, 어렵게 마련했다. 사실 마이너스 상태다. 그래도 실망을 안겨주면 안 된다.”
 
해거름, 그가 다시 둔덕에서 솟구쳤다. 지켜보던 동호인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다카르 랠리에서의 목표치를 낮게 잡았다는 혐의가 짙다. 류 프로가 다카르 랠리에서 달 등 번호는 130. 해가 바뀌자마자 ‘130번’의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대회 창설자까지 … 70여 명 앗아간 '죽음의 레이스'
“메이데이! 메이데이!”
1989년 1월 아프리카 말리에서 다카르 랠리 창설자인 티에리 사빈(40·프랑스)이 탄 헬리콥터가 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에 휘말려 추락했다. 사빈을 포함해 5명이 사망했다.
 
지난 1월 페루에서 열린 41회 다카르 랠리에서 모래 언덕을 넘지 못한 바이크 라이더를 한 관중이 도와주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월 페루에서 열린 41회 다카르 랠리에서 모래 언덕을 넘지 못한 바이크 라이더를 한 관중이 도와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다카르 랠리에서 위험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번 42회 대회 7800㎞ 중 사막지대는 75%. 사막 지대가 어려운 이유는 첫째, 망망대해. 이정표가 될 만한 건물이나 나무가 드물다. 2015년 대회에서는 미칼 헤르니크(39·폴란드)가 코스를 이탈했다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둘째, 파도처럼 이어지는 모래 언덕. 2012년 페루 대회에서는 마르티네즈 보에로(38·아르헨티나)가 사구에 충돌해 사망했다. 모래 폭풍과 황량함·외로움 등도 영향을 미친다.
 
1979년 첫 대회 이래 다카르 랠리에서 70여 명이 사망했다. 그 중 28명이 ‘선수’다. 바이크 부문이 19명으로 가장 많다. 이 수치는 공식 발표된 게 아니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바티칸에서 “무책임한 유혈 경주”라고도 했다.
 
다카르 랠리는 원래 파리~세네갈 코스였다. 그러나 테러, 환경문제로 2008년 대회 하루 직전 갑자기 취소됐다. 이후 남미로 코스를 옮겼다가 이번에 중동으로 넘어갔다. 아시아(몽골)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우디 대회에서는 쌍용차가 3년 연속 참가한다. 외국인 선수가 핸들을 잡는다. 한국의 다카르 랠리 출전은 그동안 차량 부문, 특히 자동차 기업 소속에 한정됐다. 1988년 박정룡(기아차)을 시작으로 1993년 황운기(기아차)가 나섰다. 모두 중도 탈락했다. 한국인 첫 완주자는 1996년 대회의 김한봉(쌍용차)이다. 개인 자격 및 바이크 부문 출전은 류명걸 프로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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