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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검사가 나쁜 놈 잡는데 그게 무슨 정치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윤석열 잘리는 거 아니야?” 연말 이런저런 모임에 가면 화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다. 로켓맨 김정은의 ‘성탄절 ICBM 선물’과 한반도 전쟁 위기보다 윤석열의 험난한 앞날을 더 걱정한다. 사실 이 정권이 윤석열을 예쁘게 볼 리 만무하다. 조국 법무장관을 낙마시킨 것도 모자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을 헤집고 다니며 청와대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고 있으니 괘씸하다.
 

윤석열의 앞날 걱정하는 시중 여론
권력 수사 ‘가만 안 두겠다’는 정권
유재수·송철호 사건은 타락의 조짐
공수처 강행으로 수사 무력화 안 돼

개혁에 저항하는 정치 수사라고 몰아치며, “가만히 두지 않겠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통령 뜻을 안다”(추미애 법무장관 후보자)며 벼르고 있다. 촛불 정부의 동반자라던 그는 구교주인(狗咬主人, 주인을 물어뜯는 개)이라는 비난을 듣는 신세로 추락했다. 누구 덕에 검찰총장이 됐는데 감읍과 결초보은도 모자랄 판에 인간적 의리를 져버렸다며 살기가 등등하다.
 
윤석열의 지인이 전해준 그의 심경이다. “보기 드물게 기본이 안 된 작자들이 있다. 검사가 그런 나쁜 놈 잡는데, 그게 무슨 정치냐.” 출구 전략을 물었더니 “검찰총장으로 얼마나 버티느냐가 아니라 어떤 수사를 했느냐가 검사에겐 중요하다. 법대로 밖에 못한다. 국민만 보고 간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검사는 부패한 것”이라는 윤석열의 소신은 좌·우, 진보·보수 따지지 않고 죄가 있으면 잡겠다는 뜻이다.
 
집권 전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을 주구(走狗), 즉 반대파를 물어뜯는 사냥개라며 경멸했다. “정치권력과 검찰의 결탁은 노골화됐고 정치 검찰은 정권의 주구가 돼버렸다”고 했다. 권검(權檢) 유착도 비판했다. “검찰은 부정부패 사건을 정치권력의 의도에 따라 왜곡하며 검찰 기득권을 지켜냈다.” (『검찰을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 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게 검찰 개혁의 핵심”이라고 봤다. (『문재인의 운명』) 그런 문 대통령은 “우리 총장” 윤석열을 믿고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며 여유와 호기를 과시했다.
 
미련한 건가, 우직한 건가. 윤석열은 문 대통령의 말씀을 충실히 받들고 있다. 미련하게도, 나쁜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냥개에서 벗어나 정치적 중립성을 되찾으라는 립서비스를 곧이곧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윤석열이 없었다면, 우리는 싸가지 없는 진보의 정의와 공정 타령에 아직도 속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인사권 무력화’ ‘총칼 없는 쿠데타’라는 압박을 딛고 진보의 위선과 그 얼굴의 두꺼움을 벗겨준 덕분이다.
 
유재수 사건과 울산시장 사건에 비하면 조국 일가 수사 때 치른 희대의 분열 전쟁은 작은 난리일 수 있다. ‘문재인의 분신’ 조국, ‘재인이 형’이라고 부른다는 유재수, ‘대통령의 30년 지기 동지’ 송철호 울산시장, 문재인 정부의 첫 민정비서관 백원우 등 친문 핵심 실세들이 얽히고설킨 사건에선 심한 냄새가 풍긴다. 권력에 취해 정치적 이권을 둘러싸고 끼리끼리 밀어주고 당기는 불온한 권력의 사유화가 드러나면 그 파장은 심각하다. 정권이 휘청댈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우려했던 ‘정치권력의 의도에 따라 사건을 왜곡’하려는 유혹을 느낄만 하다. 진보정치학자 최장집 명예교수의 얘기처럼 “진보의 도덕적 파탄”이 어른거린다.
 
여기서도 집권 세력의 체질화된 내로남불은 작동한다. 울산사건의 청와대 개입은 ‘고래 고기’ 때문이며, 유재수 봐주기는 합법적 감찰 중단이고, 정치 검찰이 쓸데없이 의혹을 부풀리고,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둘러댄다. 조국·유재수·송철호 의혹이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졌어도 이랬을까. 우직하게도, 윤석열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직은 거침이 없다. 권력형 비리와 부패를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건성으로 수사했다간 재수사든 특검이든 훗날 자신이 쇠창살에 갇힌다는 점을 그는 꿰뚫고 있다.
 
집권 세력은 그들만을 위한 검찰 개혁에 명운을 걸고 있다. 윤석열을 치고, 검찰을 애완견으로 길들이고, 정권의 치부를 막아주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드는 게 개혁이란 이름의 그림이다. 문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우호세력이 접수할 공수처는 또 다른 권력의 시녀가 될지 모른다. 윤석열은 수사권을 빼앗겨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고 유재수·울산시장 사건은 물론이고 앞으로 권력형 부패 사건은 모조리 공수처의 입맛대로 처리될지 모른다.  
 
공수처가 진영논리와 선악 이분법에 따라 자의적 통치도구로 변질된다면 문 대통령이 그토록 경멸했던 정권의 사냥개가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나. 과거 검찰의 행태가 밉고 무소불위 검찰의 권한 분산과 견제에 동의하지만, 지금은 때 아니다. 적어도 악취가 진동하는 유재수·울산시장 사건 수사가 떳떳하게 마무리되고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은 뒤 공수처를 만들어도 늦지 않다.
 
윤석열은 칼끝이 권력 핵심에 접근할수록 목숨이 위태롭다는 걸 안다. 박근혜 정부에 쓴맛을 봤기에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도 직감한다. 윤석열 라인에 대한 졸렬한 고사작전은 점점 다가온다. 권력의 질주와 타락을 막아선 윤석열을 응원한다. 나쁜 놈 잡는 게 뭔 죄인가.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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