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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55년 전 ‘산돼지’ 빼닮았다…36세 탑건 조영재 소령

한국 전쟁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 포스터 앞에 선 원로배우 신영균. 제주신영영화박물관에서 찍었다. 김경희 기자

한국 전쟁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 포스터 앞에 선 원로배우 신영균. 제주신영영화박물관에서 찍었다. 김경희 기자

“고3 때 ‘빨간 마후라’를 처음 보고 조종사 로망을 키웠습니다.” 원인철 공군참모총장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지난 11일 서울 대방동 공군회관에서 열린 ‘2019 탑건(Top Gun)’ 시상식에서다.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38)
<9> 공군 알린 1등 공신 ‘빨간 마후라’

공군 70돌 시상식서 만난 조 소령
시속 900㎞ F-15서 91㎝ 표적 명중
덩치며 얼굴까지 나관중과 비슷

▶원 참모총장= “영화가 개봉했을 때 현재 공군 3성 장군 정도 태어났을까요? 우리 공군을 알린 1등 공신입니다.”
 
▶나=“감사합니다. 팔팔하던 청년 신영균이 이제 구순 노인이 됐네요. 그래도 아직 허리가 꼿꼿합니다. ‘빨간 마후라’의 자존심이죠. 그런데 한 가지 후회스러운 게 있어요. 이런 환대를 받으려면 공군 군의관으로 갔어야 했는데, 저는 해군 출신이지 않습니까. 허허허.”
 
11일 나는 55년 전으로 훌쩍 날아갔다. 공군 창군 70주년을 기념해 열린 ‘탑건’ 시상식에 초청을 받았다. 원 참모총장이 수여한 감사패를 받으니 ‘빨간 마후라’(1964)를 찍을 당시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시상식 단상에 올라간 내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출연작 300여 편 가운데 가장 보람 있는 작품입니다. 제 머리 뒤에서 실탄을 쏘는 등 목숨을 걸고 찍었어요. 동남아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끌었죠. 한국영화의 해외 개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공군 여러분, 영화 속 나관중 소령처럼 대한민국 하늘을 잘 지켜주세요.”
 
연재 첫 회에 밝힌 것처럼 ‘빨간 마후라’는 내 삶의 정점 같은 영화다.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일 때 평양에서 10㎞ 떨어진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을 실감 나게 다뤘다. 나는 별명이 ‘산돼지’인 편대장 나관중 소령으로 나온다. 패기와 의리가 넘치고 부하에도 자상한 사나이 중 사나이다. 100년 한국영화사에서 그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정말 영화를 잘 찍었다”는 생각이다. 배우가 나이를 들어가도 영화는 살아 있고, 배우는 영화 덕분에 늘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빨간 마후라’ 주인공 나관중(왼쪽) 소령과 ‘2019 탑건’에 뽑힌 조영재 소령. [영화 캡처·공군]

‘빨간 마후라’ 주인공 나관중(왼쪽) 소령과 ‘2019 탑건’에 뽑힌 조영재 소령. [영화 캡처·공군]

이날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있었다. 행사장 테이블 내 오른쪽에 나관중 소령이 앉아 있지 않은가. 듬직한 덩치는 덩치거니와 굳건한 얼굴 또한 나 소령을 빼닮았다. 알고 보니 올해 ‘탑건’ 영예를 안은 제11전투비행단 102전투비행대대 조영재 소령이다. 나도 순간 ‘산돼지 신영균’ ‘영원한 소령’으로 돌아간 듯했다. 게다가 조 소령은 만 36세, 내가 ‘빨간 마후라’를 찍은 바로 그 나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탑건은 해마다 열리는 ‘보라매 공중사격대회’에서 최고 점수를 얻은 전투조종사를 일컫는다. 조 소령이 F-15K를 시속 800~900㎞로 몰며 직경 91㎝ 표적지를 명중시켰다니 말 그대로 명사수 중 명사수다. 셀 수 없는 훈련을 거친 결과일 게 분명하다. 나는 모형 조종석에 앉아 촬영했는데 말이다. ‘빨간 마후라’ 후예를 직접 마주하니 믿음직하기만 했다.
 
인연은 인연을 낳는 모양이다. 조 소령이 영화에도 등장하는 그 ‘102대대’ 소속이 아닌가. 내게 크나큰 선물이다. 그의 수상 소감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신영균 선배는 공군 최초 전투대대인 102대대 출신입니다. 우리도 6·25 당시 승호리 폭격과 전술을 알고 있습니다. 365일 24시간 영공방위를 묵묵히 수행하는 동료들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영화에서 나 소령도 출격을 앞둔 대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두 준비는 됐나. 다 같이 ‘빨간 마후라’를 부르자. 내가 죽는 건 몰라도 너희들은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나는 ‘빨간 마후라’를 촬영한 강릉기지 이현진 대위에게 특별상을 시상했다. 그가 “필승”을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는 순간 신상옥 감독, 최은희 여사, 동료배우 남궁원·최무룡·박암·김희갑 등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부분 고인이 됐지만 그들 덕에 오늘을 맞게 됐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들에게 마음 속 경례를 올렸다. 이날 시상식에선 공군 구호 ‘하늘로~ 우주로~’가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로 우리의 안보가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빨간 마후라’ 후배들이 있어 마음 든든하다. ‘하늘로~ 우주로~’ 뻗치는 패기 앞에 두려울 건 없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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