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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잣돈 500만원서 재계 2위로…89조 ‘인류 최대 파산’ 추락

김우중 1936~2019 

“평생의 멘토로 꼽는 세 명 중 한 명이다.…나는 그를 통해 세상을 봤다. 그와 세계 곳곳의 경영 현장을 누비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배웠다.”(이헌재, 『위기를 쏘다』)
 

극적 성공·몰락, 김우중이 남긴 것
창업 5년 만에 수출 100만 달러
10년 만에 현대·삼성과 나란히

김일성과 인연, 20회 넘게 만나
남북 합작 남포공단 사업도 추진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회고록에서 평생의 멘토로 꼽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83세. 김 전 회장은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끈 거목이자 ‘세계 경영’을 주창했던 글로벌 경영인이었다.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1960년대 산업화 이후 대규모 기업집단을 일군 성공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단돈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해 대우그룹을 자산 규모 76조원, 재계 순위 2위(1998년)까지 키워냈지만 외환위기 이후 40조원 넘는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빚이 최대 89조원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파산’으로 기록됐다. 그 후 1999년 중국으로 떠나 2005년 귀국하기까지 영국·베트남 등을 떠돌며 ‘낭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드라마틱한 성공신화와 더 극적인 추락을 모두 겪은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 10일 각계 조문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뉴스1]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 10일 각계 조문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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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영의 꿈=“자기 분야에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히 뭔가 다른 점이 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꿈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김우중 어록』)
 
그는 경기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67년 서울 충무로에 ‘대우실업’을 세운다. 섬유·의류 등을 수출하며 당시로선 파격적인 무역 위주의 사업 확장에 나섰다. 증권·건설업 등으로 사업을 키우며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발맞춰 중공업·조선·자동차 등으로 그룹의 외연을 넓혔다.
 
창업 5년 만에 수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고, 10여 년 만에 현대그룹·삼성그룹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74년 전자제품 무역업을 위해 만든 대우전자는 80년대 금성(현 LG)·삼성전자와 함께 국내 3대 가전사로 성장했다. 새한자동차를 인수해 일군 대우자동차는 중동에서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에 팔리는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이었다.
 
80년대 후반 소련 붕괴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한국 기업으론 독보적으로 동유럽·중동·아프리카·남미 등에 진출했다. 이즈음(89년) 펴낸 책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다. 출간 당시 6개월 만에 100만 부가 팔려 최단기 ‘밀리언 셀러’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그가 주창했던 세계 경영의 핵심은 창조와 도전이었다. 그 비결을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절실해야 해요.…절실하면 꿈에서도 해답이 나와요.”(신장섭, 『김우중과의 대화』)
 
북한과의 교류도 그의 열정 속에 있었다. 북한 김일성 주석과 20번 이상 만났을 정도로 인연이 깊었다. 김 전 회장은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대북특사로 일하면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1995년엔 첫 남북한 합작투자회사인 민족사업총회사를 세워 남포공단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 10일 각계 조문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뉴시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 10일 각계 조문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뉴시스]

◆리스크를 두려워 마라=‘기술이 없으면 사오면 된다’ ‘사업은 빌린 돈으로 하고 벌어서 갚으면 된다’ 등 공격적인 사업 스타일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런 경영 스타일은 외환위기에 통하지 않았다. 대우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더미에 결국 쓰러졌다. 대우 때문에 거덜 난 은행을 살리기 위해 국민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 30조원이 투입됐다. 고집이 셌지만 전문경영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권한은 과감히 실무자에게 넘겼다.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해결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김우중이 남긴 것=그는 술·골프·휴가와는 거리가 멀었고, 1년에 289일을 해외에서 보내는 기업인이었다. 야인이던 80년대 초반 김 전 회장과 세계를 누볐던 이헌재 전 부총리는 이렇게 썼다. “(김 전 회장은) 언제나 가방 하나만 달랑 챙겨 들고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었다. 손가방 속에는 양복 한 벌, 셔츠 한 장, 속옷 두 장, 그리고 자료. 그게 전부였다.”
 
김 전 회장은 대학 강연에서 “해외에서 빡세게 5년만 굴러 보라” “두려워 말고 새로운 길을 찾으라”고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그에게서 우리가 잃어버린 꿈을 읽어낼지, 아니면 개발연대 경영자의 ‘노오력’을 떠올릴지는 남은 자의 몫이다.
 
문희철·임성빈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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