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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그 사람 밖에 없다"던 김우중…DJ·盧까지 정치마당발

9일 별세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정치권 마당발로 통했다. 역대 대통령은 물론 굵직한 정치인 중 김 전 회장과 인연을 맺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그의 측근들은 경제인이면서 동시에 정치권에도 깊숙이 발을 담근 그의 경영 스타일을 ‘김우중식 줄다리기 게임’이라고 평가했다. 단순히 정치권에 수동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공생을 추구했다는 의미다.
 

정치권력과의 ‘적극적 공생’ 추구
자타공인 정치권 마당발
박정희 “김우중 그 사람밖에 없어”
DJ의 든든한 지원군
대우차 무료 광고모델 출연한 노무현
정치권 애도 물결 이어져

김우중 전 회장이 인수한 뒤 '대우조선소'가 된 옛 옥포조선소 전경. [중앙포토]

김우중 전 회장이 인수한 뒤 '대우조선소'가 된 옛 옥포조선소 전경. [중앙포토]

미 CIA도 박정희-김우중 관계 주목

김 전 회장과 정치 권력의 인연은 1976년 옥포조선소를 흡수해 대우중공업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결단력 있게 조선소 인수를 추진,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김 전 회장의 결단력을 보며 “김우중 그 사람밖에 없어.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돼”라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실제 김 전 회장은 생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우센터 지하에 있는 일식집을 자주 찾았고 들를 때마다 연락을 주었다”며 “술 한잔 드시면 ‘우중아’라고 부르며 껴안는 등 정이 많은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박정희(가운데) 전 대통령의 방위산업시찰 현장에 동행한 김우중(왼쪽 둘째) 전 대우그룹 회장. [중앙포토]

박정희(가운데) 전 대통령의 방위산업시찰 현장에 동행한 김우중(왼쪽 둘째) 전 대우그룹 회장. [중앙포토]

김 전 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밀월’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도 담겼을 정도다. 2017년 기밀 해제된 CIA의 ‘한국: 과도기의 경제적 의사결정’ 문건에는 김 전 회장과 관련 “대우의 성공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 전 회장의 각별한 관계에 따른 개인적 도움의 결과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문건은 각별한 관계가 김 전 회장의 선친 때부터 시작됐다고 봤다. 김 전 회장의 선친인 우당 김용하 선생은 대구사법학교 교사를 지냈는데,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그의 제자였다.

 

DJ와도 각별한 관계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만나 현안 논의에 나서는 모습. [인수위원회 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만나 현안 논의에 나서는 모습. [인수위원회 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김 전 회장은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80년대 초 사업 확장을 위해 해외 곳곳을 실사하던 중 처음으로 ‘정치인 김대중’의 이름과 그의 활동 내역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한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당시 유력 정치인이었던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중에서도 유독 DJ를 각별하게 생각했다.  
 
정치권에선 김 전 회장이 DJ에게 애정을 갖게 된 이유로 미 LA 한인 사업가이자 로비스트·무기상으로 일한 고 조풍언 회장의 역할을 꼽는다. 김대중 정부 당시 ‘얼굴 없는 실세’로 불린 조 회장은 김 전 회장과 경기고 동문으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즉 조 회장이 김 전 회장과 DJ를 연결하며 둘의 ‘상부상조’가 성사된 셈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정재계간담회에 참석한 5대 재벌 총수. 김우중(오른쪽 셋재) 대우회장도 자리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정재계간담회에 참석한 5대 재벌 총수. 김우중(오른쪽 셋재) 대우회장도 자리에 참석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최고 권력자와 경제인의 끈끈함은 결국 화살로 돌아왔다. 1999년 대우그룹 퇴출 과정에 김 전 회장이 조씨를 통해 구명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김우중-조풍언-DJ’ 연결고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조 회장은 2005·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구명로비 창구로 지목되며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인권변호사 노무현' 때부터 시작된 인연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김 전 회장은 DJ를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오랜 인연을 가졌다. 노 전 대통령과 대우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동·인권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은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의 규명 작업에 나섰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변호인으로서 법적 조력을 이어가다 장례식 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되며 변호사 업무정치 처분까지 받았고, 김 전 회장은 이때 처음으로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이석규 최루탄 사건’을 계기로 노 전 대통령은 90년대엔 대우조선 거제공장 파업 사태에도 적극 참여해 거제에서 노사 중재를 맡았다.  
 
두 사람 간 본격적 인연이 시작된 계기는 노 전 대통령이 1998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종로구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다. 김대중 정부 당시에 조풍언 회장이 있었다면, 김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 사이에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있었다. 이 전 원장은 김 전 회장과 경기고 동기동창이었데, 98년 종로를 지역구로 한 국회의원에서 국정원장이 됐다. 노 전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입각한 셈이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집권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공천을 받는 과정에 이 전 원장의 도움을 받게 됐고, 김 전 회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고 모델을 맡은 대우자동차 광고. [SNS 캡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광고 모델을 맡은 대우자동차 광고. [SNS 캡쳐]

둘의 인연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노 전 대통령이 2001년 표류하던 대우자동차를 돕기 위해 무료로 광고 모델이 된 사건을 통해 잘 드러난다. 대우자동차로선 최초의 정치인 광고 모델이었다. 이를 계기로 노 전 대통령은 대우자동차 명예 판촉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줄 잇는 정치권 애도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정치권에는 김 전 회장의 애도 물결이 줄을 잇고 있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우중 전 회장을 신임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피선된 김 전 회장의 말을 많이 참고했고, 대기업 간 구조조정에도 그의 견해를 중시했다”며 “김 전 회장님 편히 쉬시라. 하늘나라에서 김 전 대통령 부부를 만나셔서 하고 싶었던 말도 많이 하길 바란다”고 썼다.
 
변혁신당 창당준비위원장 하태경 의원은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인 고인은 떠나셨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정신을 이 땅에 남겼다”며 “편안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고인의 삶은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는 내용의 페이스북 글을 남겼다.
 

대우차 용접공 출신 홍영표 의원도 조문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용접공 출신의 홍영표 의원은 노조 활동에 김우중 전 회장과 첫 인연을 맺엇다. 특히 대우차 노조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김 전 회장과 3박4일 담판 협상을 통해 임금 18.2%를 끌어올린 바 있다. [연합뉴스]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용접공 출신의 홍영표 의원은 노조 활동에 김우중 전 회장과 첫 인연을 맺엇다. 특히 대우차 노조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김 전 회장과 3박4일 담판 협상을 통해 임금 18.2%를 끌어올린 바 있다. [연합뉴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김 전 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대우차 노조 출신인 홍 의원은 1985년 대우차 파업 때 김 전 회장과 단둘이 담판 회동을 해 파격적인 양보안을 얻어낸 인연이 있다.

 
김 전 회장은 그의 저서 『김우중 어록』에서 “8일간 하루 1~2시간밖에 잠을 못 자고 대화에 임했다”고 회고했다. 홍 의원은 통화에서 “극한 상황에서도 역지사지하면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것, 협상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그때 배웠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노조에 민ㆍ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청와대의 반대에 부닥쳤다. 김 전 회장은 담판 회동 직후 자신의 차 트렁크에 홍 의원을 숨겨 도피를 도왔다. 이후에도 청와대를 설득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홍 의원은 불법파업으로 구속됐다.  
 
홍 의원은 “1994년 대우차 해고자 신분일 때도 김 전 회장과 따로 만나고, 복직 후 영국주재원으로 있을 때도 김 전 회장이 영국에 오면 꼭 나를 만나곤 했다”며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2~3년 전까지는 왕래해왔는데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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