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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속에서도 해피엔딩일까…진짜 '동백이' 5명의 아픈기억

지난 11월 23%가 넘는 시청률로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는 8살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 '동백이'가 나온다. [사진 KBS]

지난 11월 23%가 넘는 시청률로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는 8살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 '동백이'가 나온다. [사진 KBS]

남편 없어도 아들은 있을 수 있잖아요”

 
지난 11월 23.8% 시청률로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동백이’의 대사다. 동백이는 8살 아들을 혼자 키우며 술집을 운영하는 미혼모다. 충청도 속 가상의 도시 '옹산' 사람들은 처음 이사 온 미혼모 동백에게 편견 가득한 시선을 보내지만 결국 그녀를 공동체 일원으로 따뜻하게 품어주며 드라마는 끝난다.
 
현실 속 ‘동백이’들의 삶은 드라마와 닮은 듯 달랐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진짜 동백이 5명(김도경·김미선·조가비·장지현·최혜정)을 만났다.
 

“애가 무슨 죄야” 

미혼모들은 인터뷰를 위해 모이기도 쉽지 않았다. 원래는 6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당일 아침 한 명이 “4살 아이가 밤새 열이 떨어지지 않아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결국 약속 장소에는 5명의 동백이만 왔다. 이들에게 실제로 겪은 편견에 관해 묻자 5명 모두 “너는 선택한 거라지만, 애는 무슨 죄냐”는 식의 비난을 들었다고 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회원 6명(왼쪽부터 조가비, 최혜정, 장지현, 김미선, 김도경)이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친 5명의 동백이는 국회에서 열린 ‘독일의 임신출산 양육지원체계 보고와 시사점’ 토론회에 참석했다. 임현동 기자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회원 6명(왼쪽부터 조가비, 최혜정, 장지현, 김미선, 김도경)이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를 마친 5명의 동백이는 국회에서 열린 ‘독일의 임신출산 양육지원체계 보고와 시사점’ 토론회에 참석했다. 임현동 기자

 
15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조가비(32)씨는 “아이와 함께 있는데도 대놓고 ‘아이가 불쌍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이어 “이런 편견에 ‘저희 행복해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맞받아 치는데 1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13살 아들을 키우는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미혼모 인식 개선 캠페인 가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이 말”이라며 “미혼모와 그 아이는 ‘당연히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이 많다”고 말했다.  
 
3살 딸을 키우는 장지현(43)씨는 “드라마를 보다가 ‘왜 술 파는 일 하냐’는 물음에 동백이가 ‘소주는 팔면 3500원 남잖아’라고 답하는 장면에서 정말 공감했다”며 “우리도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힘든 거, 체면 상관없는 그저 ‘엄마’다”고 말했다. 
 

“아이 지우고 와라”…가족에게 더 큰 상처 받아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받은 경험도 털어놨다. 5살 딸을 혼자 키우고 있는 최혜정(42)씨는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을 때 가족들이 ‘입양 보내자’고 제안해서 한동안 인연을 끊었다”며 “키우기로 한 결정이 쉽지 않았는데 가족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는 “딸의 돌잔치 사진을 본 엄마가 먼저 연락을 해와서 이제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며 “지금은 딸바보 할머니가 따로 없다”고 덧붙였다.  

 
5명의 미혼모는 가족으로부터 낙태나 입양 얘기를 한 번씩 들어봤다고 했다. 조씨도 임신 사실을 집에 알렸을 때 엄마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갔다고 했다. 조씨는 “병원 가서 태동 보고, 심장 소리 듣고 절대 지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낳겠다고 하니까 ‘인연 끊자’고 하기에 ‘인연 끊어도 나는 이 아이 기르겠다’며 버텼다”고 회고했다.  
현실판 동백이들에게 실제로 겪은 편견에 관해 묻자 5명 모두 ’너는 선택한 거라지만, 애는 무슨 죄냐“는 식의 비난을 들었다고 했다.  왼쪽부터 조가비, 최혜정, 장지현, 김미선, 김도경씨. 임현동 기자

현실판 동백이들에게 실제로 겪은 편견에 관해 묻자 5명 모두 ’너는 선택한 거라지만, 애는 무슨 죄냐“는 식의 비난을 들었다고 했다. 왼쪽부터 조가비, 최혜정, 장지현, 김미선, 김도경씨. 임현동 기자

 

생각지 못한 상황에 아이 상처받기도

미혼모와 그 아이들은 원치 않는 배려, 악의 없는 행동에도 마음이 다쳤다. 아이 얘기가 나오자 몇몇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16살 딸을 키우는 김미선(40)씨는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시절 영어캠프에 혼자 간 적이 있다”며 경험을 털어놨다. 그녀는 “당시 딸아이가 신청한 적도 없는 영어 캠프를 간다고 하기에 학교에서 다 같이 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캠프 당일은 사실 운동회 날이었다고 한다. 딸의 담임 선생님이 김씨가 학교에 오기 힘들 거라 생각하고 그녀의 딸만 캠프에 신청해 보냈던 것이다. 
 
김씨는 “나도 운동회 가고 싶어”라고 울면서 전화를 건 아이의 연락을 받고 당장 캠프에서 데리고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김씨는 “신경 써서 보낸 건데 왜 여기로 오셨냐”는 담임 교사의 말에 애써 “아이가 운동하는 걸 좋아해서요”라고 답했다고 했다.
 
김도경 대표는 “당연히 남편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던지는 질문도 많은 미혼모 가정에 상처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미혼모가 아이와 밖에 나가면 주변에서 ‘혼자는 외로워. 둘째 낳아야지’라는 말을 듣는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아이에게 ‘엄마한테 동생 낳아달라고 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김미선씨는 택시에서 기사가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고 아이가 “엄마가 좋다”고 답하니까 “아빠는 왜 싫어?”라고 캐물은 적도 있다고 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회원 6명의 인터뷰가 4일 여의도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회원 6명의 인터뷰가 4일 여의도에서 열렸다. 임현동 기자

 
최혜정(42)씨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최씨는 “유치원에서 ‘엄마·아빠 메달’을 나눠 준 적이 있다”며 “다른 아이는 다 두 개씩 받았는데 우리 딸은 한 개만 받아 시무룩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할머니나 이모를 줄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다정한 건 공짜잖아요” 

“나는 웬만하면 사람들한테 다정하고 싶어요. 다정은 공짠데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동백이는 "다정은 공짠데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미혼모들의 바람도 결국 '따뜻한 시선'이었다. [사진 팬엔터테인먼트]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주인공 동백이는 "다정은 공짠데 서로 좀 친절해도 되잖아요"라고 말한다. 미혼모들의 바람도 결국 '따뜻한 시선'이었다. [사진 팬엔터테인먼트]

 
드라마 속 동백의 대사다. 현실 속 동백이들의 바람도 결국 ‘따뜻한 시선’이었다. 최씨는 “미혼모들은 대부분 ‘죄는 아니다’와 ‘자랑은 아니다’라는 두 가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스스로 자책할 때가 많은데 다른 사람들이 굳이 ‘자랑은 아니다’고 평가 내리면 자존감이 많이 내려간다”고 말했다.  
조씨도 “다른 사람에게 ‘죄는 아니잖아요’라고 말해도 ‘아이만 불쌍하지’라는 말에 하루에도 몇번씩 무너진다”고 했다. 
김도경 대표는 “양육비 문제나 제도를 고쳐야 할 부분도 많지만 ‘네 선택이다’‘네 죄다’는 식의 냉소적인 시선만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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