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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실이 내겐 도축장” 김밖에 못먹는 ‘비행청소년들'

락토오보(육류는 안 먹고, 유제품 및 달걀은 섭취하는 채식 단계)를 택한 청소년들이 급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흑백처리했다.[하현정·김민교 학생 제공]

락토오보(육류는 안 먹고, 유제품 및 달걀은 섭취하는 채식 단계)를 택한 청소년들이 급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흑백처리했다.[하현정·김민교 학생 제공]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급식에서 먹을 수 있는 게 밥밖에 없어서 밥을 물에 말아 먹었어요.”

 

<제14화> 채식급식권
“김 따로 챙겨와 밥이랑 먹어요”
서울대 등은 채식 학식 운영 중
전문가 “채식청소년 권리 배제되고 있어”

비건(Vegan) 청소년 김가희(17)씨의 말입니다. 비건, 들어보셨나요? 육류, 생선, 유제품을 섭취하지 않는 사람들인데요. 채식을 할 뿐 아니라 동물 가죽·털로 만든 옷을 입지 않고,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 소비를 지양하는 이들입니다.
 
김씨는 “김치에도 새우젓이 들어가 먹지 못했다”며 “영양사 선생님이 챙겨주시는 김과 과일을 먹고 버텼다”고 했습니다. 채식을 택한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요. 밀실팀은 ‘채식급식권’을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비행청소년'이 말하는 학교급식은?

지난 1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비건 빵집에서 ‘비행청소년’(비거니즘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청소년) 활동가 세 명을 만났습니다. 비행청소년은 전국 비건 청소년 32명이 모여있는 단체입니다. 이날 만난 활동가들은 '군', '양'이 아닌 성인과 동등한 '씨'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친구들은 급식시간만 되면 다들 신나는데, 저는 급식실에 들어가면 도살당하는 소·돼지의 모습이 떠올라 슬펐어요.”

 
활동가 안윤재(16)씨는 이같이 말했는데요. 그는 “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이 나오는 날엔 밥조차도 먹을 수 없었다”며 “중학교까지 의무급식인데, 급식을 먹을 수 없어 운동장에 나가 있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고 털어놨습니다.
마포구 비건 빵집에서 판매 중인 빵. 버터, 우유 등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 김지아 기자

마포구 비건 빵집에서 판매 중인 빵. 버터, 우유 등을 사용하지 않고 만들었다. 김지아 기자

이들은 “너 참 어렵게 산다” “왜 손해를 보고 사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 어른들은 “네가 아직 어리니까 뭘 몰라서 그런다”라는 말을 내뱉는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이들은 비건의 삶을 택한 이유를 당당하게 말합니다.
 
김가희씨는 “2년 전쯤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공개한 닭 도살장 영상을 보고 고기가 음식이 아닌 사체로 여겨졌다”며 “그 후 고기가 목에 넘어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비건이 됐다”고 털어놨고요. 이예린(18)씨는 “지난해 배달의 민족 ‘치믈리에’ 행사장에서 ‘동물을 희화화하지 말라’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고 비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행청소년’은 육류섭취뿐 아니라 축산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던집니다. 안윤재씨는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환경, 정신적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그 역시도 노동착취”라고 했고요. 김가희씨는 “육식을 흔히 ‘자연의 섭리’라고 하는데, 만약 그렇다 해도 공장식으로 동물을 좁은 곳에 가둬 키우는 게 과연 자연의 섭리일지 의문이 든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채식급식이 아닙니다. 이예린씨는 “채식급식은 비건을 실천하는 과정이고 수단일 뿐”이라며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을 함께 배려하고, 일상생활에서 조금씩이라도 동물권에 해가 되는 걸 줄여나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안윤재씨는 “실생활에서 샴푸, 칫솔, 수세미까지도 동물에게 해가 되지 않는 걸 택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그는 “주체적으로 동물착취를 거부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데, 어른들은 청소년인 우리가 이런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어주지 않는다”며 “청소년을 어른과 동등한 주체로 봐주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급식에서 뭘 먹을 수 있을까?

 락토오보(육류는 안 먹고, 유제품 및 달걀은 섭취하는 채식 단계)를 택한 청소년들이 급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흑백처리했다.[하현정·김민교 학생 제공]

락토오보(육류는 안 먹고, 유제품 및 달걀은 섭취하는 채식 단계)를 택한 청소년들이 급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흑백처리했다.[하현정·김민교 학생 제공]

이들 외에도 채식급식권을 주장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한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현정(17), 김민교(17) 학생입니다. 락토-오보(Lacto-Ovo, 육류는 안 먹지만 유제품 및 달걀은 섭취하는 채식)를 선택한 이들은 SNS를 통해 ‘채식주의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학교 급식’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요. 
 
현행 급식에서 채식주의자들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흑백 처리해 SNS에 올린 겁니다. 두 학생은 “지난 7월 피터 싱어의 책『동물해방』을 읽고 동물과 인간이 평등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며 “도축방법이 잔인하고 육식이 얼마나 환경을 파괴하는지 알고 충격받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락토오보(육류는 안 먹고, 유제품 및 달걀은 섭취하는 채식 단계)를 택한 청소년들이 급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흑백처리했다.[하현정·김민교 학생 제공]

락토오보(육류는 안 먹고, 유제품 및 달걀은 섭취하는 채식 단계)를 택한 청소년들이 급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을 흑백처리했다.[하현정·김민교 학생 제공]

이런 활동을 시작한 건 사람들에게 채식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김민교 학생은 “채식주의자 청소년들이 급식에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주변 친구들에게라도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알리고, 채식급식권의 필요성을 알리는 게 목표”라고 했습니다.
 
하현정 학생은 “채식을 실천하려는 학생들이 급식을 먹다 보면 밥밖에 먹을 게 없어 김을 따로 챙겨와 먹곤 했는데, 일부는 체육 시간에는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했는데요. 이들이 급식 전체를 채식으로 바꿔 달라는 게 아닙니다. 김민교 학생은 “채식을 원하는 학생들에게만 신청을 받아 대안 급식을 마련해달라”며 “우리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이해 못 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지금 흑인 인권과 여성 인권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미래엔 동물권을 당연히 여기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광주·프랑스에선 주 1회 채식급식 중

서울대학교 감골식당은 채식뷔페를 운영한다. 지난 3일 현미밥, 미역국, 짜장소스, 콩으로 만든 고기, 호박볶음, 백김치, 야채 등이 제공됐다. 김지아 기자

서울대학교 감골식당은 채식뷔페를 운영한다. 지난 3일 현미밥, 미역국, 짜장소스, 콩으로 만든 고기, 호박볶음, 백김치, 야채 등이 제공됐다. 김지아 기자

채식급식권은 지나치게 허황된 이야기일까요. 프랑스는 지난 11월부터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에서 주 1회 채식급식을 의무화했고요. 광주광역시교육청 관할학교들도 지난 2011년부터 주 1회 채식급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책 『요리를 멈추다』 저자 심채윤 PD는 “네덜란드, 프랑스 학교에선 기본적으로 채식만을 제공하고, 추가로 생선이나 소고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며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울대, 동국대, 국민대 등 일부 대학교에서는 채식 학식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3일 채식 학식을 먹고 있던 서울대 대학원생 유준성(27)씨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탄소배출량 감소를 위해 육류소비를 줄이고 있다”며 “가격(구성원 6500원·비구성원 7500원)은 일반 학식보다 조금 비싸지만, 맛은 만족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학교 감골식당은 채식뷔페를 운영한다. 지난 3일 현미밥, 미역국, 짜장소스, 콩으로 만든 고기, 야채 등이 제공됐다. 김지아 기자

서울대학교 감골식당은 채식뷔페를 운영한다. 지난 3일 현미밥, 미역국, 짜장소스, 콩으로 만든 고기, 야채 등이 제공됐다. 김지아 기자

전문가들은 채식을 택한 청소년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전남대 명예교수)는 “무상급식으로 학생들의 식사 평등권은 보장됐지만, 채식하는 학생들의 권리는 배제되고 있다”며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느낀 후 혹은 동물 보호 목적으로 채식을 택하는 청소년은 가정에서도 부모님과 불화를 겪기도 하는데 이들을 이해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명옥 안양 삼성초 영양 교사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단백질 권장량의 두배 정도를 섭취하고 있다”며 “채소에도 단백질이 있는 만큼 급식에서 완벽한 친환경 농축산물을 제공하고 채식을 원하는 친구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지아·최연수·편광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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