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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업계획서 뻥튀기? 회사 나와보니 사업은 서바이벌 게임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7)

 
연말이 다가온다. 곧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할 시기가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데 참고 하기 위해 예전 회사원 시절에 수도 없이 작성했던 부서별 사업계획서를 열어보았다. 팀장, 본부장, 임원, 그리고 최종적으로 대표 순으로 아무 탈 없이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무사히 통과시키기 위해 몇 주 동안 야근을 하던 기억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내가 다녔던 전 직장은 11월말쯤 되면 경영기획실로부터 내년도 사업계획서 작성 양식이 공지된다. 물론 몇 년째 양식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면 해당 본부장이 각 부서장을 불러 언제까지 취합해 보고하라는 지침을 하달하면서, 이번에는 좀 더 획기적인 신사업계획과 대폭적인 매출상승 지표를 삽입하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만약 승진 차수에 있는 본부장이라면 사업계획서에 삽입 될 수치는 상당히 높아지게 된다.
 
연말은 곧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할 시기가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과를 달성하고 못하고 보다는, 불가능 수치에 도전해보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수치를 한 폭 더 높인다. [사진 pixabay]

연말은 곧 내년도 사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할 시기가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성과를 달성하고 못하고 보다는, 불가능 수치에 도전해보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수치를 한 폭 더 높인다. [사진 pixabay]

 
그 후 각 부서장은 업무담당자들을 불러 모아 본부장의 지시 그대로, 본인이 본부장으로 빙의가 된 듯 똑같은 오더를 내린다. 그리고 성과를 달성하고 못하고 보다는, 우리가 불가능 수치에 도전해보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수치를 한 폭 더 높인다.
 
이어 각 업무 실무자는 지표를 만들고, 나름 고민을 해 신사업도 구상하면서 제 3자가 보면 상당히 있어 보이는 파워포인트를 만들어낸다. 물론 신사업 내용은 본부장과 부서장의 논의 과정에서 이미 다 만들어져 있다. 단지 실무자는 그 내용을 화려한 파워포인트 기술로 멋진 장표를 만들어 낼 뿐이다. 그러다보니 다 만들어진 사업계획서를 보면 전년도 사업계획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과정이 매년 지속적으로 반복되다보면 내가 주도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면 제도권 내의 명함을 떼고 나면 남는 게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들 수밖에 없어진다.
 
직장에서의 나는 위에서 바운더리를 그려주면 그 바운더리 안에서 굉장히 일을 잘해내는 편이었다. 가끔 시대에 뒤처져 보이는 부서장의 내년도 계획에 콧방귀를 끼면서, 바운더리를 내가 직접 그리고 싶다는 호기로운 야망을 몇 차례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고, 그 부서 안에서도 각자의 역할이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었다. 더불어 타 부서의 영역은 우리 부서가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냥 잘하는 사람이 다하면 매우 효율적일 것 같아 보였지만, 여기에는 나름 지켜야 할 ‘순리’가 존재했다. 그리고 바운더리(boundary)는 부서장끼리 밥그릇 논쟁으로까지 펼쳐지면서 확고한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
 
어떤 면에서 조직은 늘 한사람이 잘해내는 것보다 모두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조직이 효과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 했다. 그렇다보니 매번 사업계획서는 크게 달라질 수 없는 구조였다.
이미 정해진 바운더리 안에서 매년 어떻게 신사업이 도출된다는 말인가. 융합, 시너지, 칸막이를 허무는 부서 간 협업은 각 부서장의 인사평가 기준이 존재하는 한 불가능해 보였다.
 
조직은 늘 한사람이 잘해내는 것보다 모두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조직이 효과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 했다. [사진 pixabay]

조직은 늘 한사람이 잘해내는 것보다 모두가 잘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조직이 효과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 했다. [사진 pixabay]

 
정말 회사를 위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인지 의아했던 적이 많았다. 그리고 거짓으로 한없이 부풀려진 목표 달성 수치를 보면서 괴로워했다. 

지금의 사업계획서에는 매월·매분기의 목표를 수치화하여 달성하려는 ‘목표지향’적인 문화와 단위별 목표(KPI)를 함께 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담당 업무와 관계없이 ‘다함께’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새로운 시도에 있어서는 어떤 개인과 부서에게만 막중한 책임을 던져 놓고, 달성하면 특진시켜주겠다는 달콤하지만 무책임한 방침은 일절 없다. 물론, 조그마한 조직에서는 이런 유인책을 반겨할 사람조차 없지만 말이다.
 
신사업은 조직 구성원 모두가 다 함께 참여하고, 각 부서 특성에 맞게 권한과 목표가 분할된다. 그리고 신사업만큼은 달성 수치보다는 시도의 수치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창업을 하고 나서 스타트업 대표들끼리 모임을 종종 갖게 되는데, 그들의 한결같은 공통된 특징은 본인이 직접 바운더리를 그리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해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한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 역시 바운더리를 직접 그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맨땅에서 바운더리를 그리고 있다. 물론 시행착오 투성이다. 과거에는 스케일이 굉장히 큰 바운더리 안의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그건 자기가 실력이 있다기보다는 회사가 힘이 있어 가능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조그만 조직의 대표는 바운더리를 그리는 일부터 직접 실행까지 모든 걸 다해내야 하는 ‘플레잉 코치’의 역할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대표인 내가 직접 그리기에, 누구에게 보여주기 보다는 진짜 실행 가능할 목표와 수치를 그려낸다. 팀원들과 함께 뛰어야 하다 보니, 어쩔 땐 나의 전략 실수로 팀이 경기에서 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팀원들로부터 존경받기는 일단 글렀다고 보면 된다.


리더는 구단주로 빠져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며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 중심으로 감독, 코치, 주장을 선발하는 것이다. [사진 pixabay]

리더는 구단주로 빠져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며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 중심으로 감독, 코치, 주장을 선발하는 것이다. [사진 pixabay]

 
함께 뛰면서도 코칭도 해야 한다. 팀이 이겼어도 마냥 좋아하는 팀원들에게 오늘 경기에서 부족했던 점, 보완해야할 점을 이야기해줘야 한다. 팀원들로부터 인기를 얻을 리 없다.
 
결국 목표는 하나다. 사업계획을 잘 세워 우리 팀을 1군리그로 올리는 것이다. 리더는 구단주로 빠져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며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 중심으로 감독, 코치, 주장을 선발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팀이 해체를 해 역사 속에 사라질 수도 있다. 매사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하는 라이브 실전 필드게임이다. 거짓의 수치가 아닌, 진짜 사업계획서를 잘 작성해야하는 이유다.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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