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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의 문화탐색] 아듀, 바우하우스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1924년 라이프치히 무역박람회에는 바우하우스에서 만든 램프가 출품되었는데, 기계로 만든 대량생산품처럼 보이도록 30개를 두 줄로 나란히 진열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바우하우스 공방에서 일일이 손으로 두드려 만든 것이었다. 관람객들은 그것을 알아챘고 제품의 조잡함을 비웃었다. 오늘날에는 공장에서 만든 물건보다 손으로 만든 물건을 더 고급으로 치지만(수제 ○○!), 바우하우스 당시에는 수공품을 벗어나 기계생산품이 되는 것이 시대정신이었던 것 같다.
  

서구 디자인의 높은 수준
시행착오 경험의 산물
역사의 비약은 가능한가
바우하우스 백년의 교훈

바우하우스, 산업혁명의 완성
 
현대디자인의 첫 번째 과제는 전통적인 수공업으로부터 근대적인 기계공업으로의 이행에 적합한 조형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위의 사례는 바우하우스가 그러한 시대적인 과제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하나의 해프닝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저러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현대 디자인의 문법을 완성했다. 그러니까 바우하우스는 공예로부터 디자인으로의 이행이라는 당대의 조형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바우하우스를 가리켜 산업혁명의 뒤를 이어, 그를 완성하는 ‘제2의 혁명’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이것은 바우하우스가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적 하부구조에 디자인이라는 조형적 상부구조를 부여함으로써 근대문명을 가시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서구 근대와 바우하우스의 관계는 신라와 금관, 고려와 청자, 조선과 백자의 관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가지 않은 길
 
바우하우스 백주년 기념으로 지난 10월 14일~11월 3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미러’전.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바우하우스 백주년 기념으로 지난 10월 14일~11월 3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바우하우스 미러’전. [사진 서울디자인재단]

바우하우스가 걸어간 길은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다. 타율적 근대화는 우리에게 그럴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전통공예는 소멸하거나 박제화되었고 현대 디자인은 바깥으로부터 도입한 것이다. 그 사이에 연속성은 없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 근대의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인데, 다만 디자인은 그것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두드러질 뿐이다.
 
지난 5월 필자의 기획으로 진행된 ‘서울 핸드메이드 포럼 2019’의 주제는 ‘모던 디자인의 산실, 바우하우스의 공방’이었다. 필자도 발표자의 한 사람이었지만, 이날 포럼을 지켜본 필자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경험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 바우하우스의 공방은, 서두에서 든 예처럼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겪으면서도 전통공예로부터 현대디자인으로의 이행이 한 치의 빈틈도, 한 뼘의 비약도 없이 촘촘하게 이루어졌음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 현대디자인의 높은 수준은 바로 그러한 경험의 산물이다.
 
이를 재삼 확인한 필자의 입에서는 가느린 탄식이 흘러나왔다. 말했듯이 한국은 전통공예로부터 현대디자인의 이행과정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를 가리켜 “껍데기뿐인 공예와 뿌리 없는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우리의 환경이 어설프고 어리둥절하다면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이점이 서구의 근대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가야 할 길
 
아무튼 바우하우스 백주년이 되는 올해는 우리가 가지 않은 그 길을 후행(後行) 학습하고 추체험해볼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와 디자인계는 무관심했다. 우리가 가지 않은, 그러나 갔어야 했던 길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저 모두 지나간 역사로 치부했을 뿐이다. 몇몇 지면에서는 바우하우스를 가리켜 창의와 혁신의 대명사라고 불렀지만, 정작 그 창의와 혁신의 내용과 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묻지는 않았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20여 년 전 한 언론사는 이런 캠페인을 벌였다. 과연 역사의 비약은 가능한 것일까. 지금도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고 있지만, 진정 혁명이 무엇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일까. 일본의 연이은 노벨상 수상을 부러워하는 우리는 과연 세상의 이치와 사물의 근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있기나 한 것일까. 백 년 전 바우하우스가 간 길은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다시 다른 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과연 우리가 바우하우스로부터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일까. 바우하우스 백주년을 보내며 이런 회한이 밀려들었다. 다시 다음 백 년을 기다리며. 아듀, 바우하우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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