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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인증샷' 매일 올린 음주운전자 집유…재판부 "1년 보호관찰"

음주운전. [중앙포토]

음주운전. [중앙포토]

“피고인, 3개월 전 죄수복을 입고 그 자리에 서 있던 때를 기억해보세요. 피고인은 변화했습니까?”

 
짙은 회색 니트를 입고 법정을 찾은 A(34)씨는 선고 내내 재판장의 말을 들으며 재판부를 바라봤다. A씨는 이날 선고로 피고인에서 ‘졸업생’이 됐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A씨를 “우리나라 법원에서 처음 시도한 치유법원 프로그램의 첫 졸업자”라고 불렀다.

 

음주 사고 후 이탈…징역 1년 받고 구금

A씨는 지난 1월 새벽 인천의 한 도로에서 음주 교통사고를 냈다. 차선을 바꾸는 앞차를 받았는데 A씨 자동차가 전복됐다. A씨는 뒤집힌 차에서 빠져나와 인근에 쓰러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고현장을 이탈해 도주치상 혐의가 적용됐다.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A씨를 찾았다. A씨는 음주측정을 거부했다. 앞차에 타고 있던 피해자들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이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형 전과가 있던 A씨는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아 구치소에 구금됐다.
 

항소심, A씨 직권 보석 결정

A씨는 항소심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 다만 형량만 다시 판단해달라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뭘까 고심했다. 술을 마셨다고 모든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지는 않는다. 업무상 거래처와 술자리가 잦은 A씨에게는 술을 마시더라도 적절하게 마시고, 술을 마신 뒤 절대 운전대를 잡지 않는 ‘절제력’이 필요했다.
 
A씨가 구치소에 그대로 있게 된다면 자연히 ‘금주’는 가능했다. 문제는 재범 우려였다. 많은 음주 운전자들이 구치소에 들어가면 그 기간 술을 끊지만 출소하면 다시 음주운전을 하곤 한다. A씨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스스로 술을 끊는 노력을 통해 절제력을 키우는 경험이었다.
 
재판부는 A씨에게 몇 가지 과제를 부과했다. 이 과제를 잘 이행하는지 보기위해 A씨의 보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3개월간 술을 끊고, 이를 매일 재판부에 보고하는 과제를 줬다. 비공개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A씨와 재판부, 검사, 변호사가 가입했다. A씨는 매일 밤 10시 이전에 귀가해 날짜와 시간이 보이게 동영상을 촬영해 카페에 올린다. 재판부와 검사, 판사는 A씨가 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 댓글로 격려의 답을 준다. A씨가 재판부가 제시한 기간동안 과제를 잘 수행하면 재판부는 이점을 양형에 반영한다. A씨 입장에서는 스스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술을 끊는 경험을 쌓고 처벌도 줄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3개월 넘게 스스로와 약속 지킨 A씨

A씨가 재판부와 함께 만든 비공개 온라인 카페에 쓴 글. A씨는 지난 8월부터 12월 3일까지 매일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은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활용해 촬영일자와 날짜를 고지하는 화면으로 시작한다. A씨의 글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가 격려의 댓글을 단다. [A씨 제공]

A씨가 재판부와 함께 만든 비공개 온라인 카페에 쓴 글. A씨는 지난 8월부터 12월 3일까지 매일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은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활용해 촬영일자와 날짜를 고지하는 화면으로 시작한다. A씨의 글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가 격려의 댓글을 단다. [A씨 제공]

선고가 끝난 후 A씨는 지난 8월부터 선고 전날 밤까지 자신이 꾸준히 올린 글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A씨가 올린 글에는 동영상뿐 아니라 자신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자녀를 어떻게 돌봤는지 등 하루를 충실히 보낸 삶이 담겼다. 재판부와의 약속대로 동영상 첫 화면은 노트북이나 다른 휴대전화에 표시된 날짜와 현재 시각으로 시작한다. A씨는 이렇게 꾸준히 3개월이 넘는 기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올렸다.
 
A씨는 변화한 자신의 모습에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아내’라고 말했다. A씨가 처음 구금됐던 3개월 동안 직장을 다니던 A씨 아내는 아이 2명을 혼자 돌보지 못해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당장 생계의 어려움도 겪었다. A씨는 "이제야 아내가 '다시 술 마실거야?'라고 웃으며 장난을 건넨다"고 말했다.
 

3개월 끝 아냐…보호관찰 위반 시 집유 취소

재판부는 “상대방뿐 아니라 본인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고, 가족들에게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며 음주운전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번 경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보호관찰 1년 명령을 내렸다. 3개월이 끝이 아니라 A씨가 절제력을 키우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취지다. 
 
다만 재판부는 지난 3개월보다는 이행 강도를 완화했다. A씨가 향후 1년간 지킬 약속은 두 가지다. 관할지역 보호관찰소의 감독을 받으며 ▶가능하면 금주 ▶가급적 저녁 10시까지 귀가다. 이를 위반하면 A씨의 집행유예가 취소될 수 있다.
 
이날 졸업생이 된 A씨는 "'가급적'이 아니라 앞으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업무상 술자리가 많아 어렵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지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업무는 할 수 있다는 걸 치유법원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음주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며 "상대방을 잘 이해시키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고 답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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