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17)
작년 이맘때쯤, 집에서 키우다 버린 듯한 작은 개 한 마리가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 총각 개들에게 수작을 걸어 사랑을 하더니 길가에 쌓아 둔 볏짚 속에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다. 그땐 동네어른 한 분이 나서서 말했다.
“그냥 두면 온 동네가 개판이 될 것이고 새끼 생김새가 저 집 개, 이 집 개 다 닮아서 누가 아비인 줄 모르겠으니 개 키우는 집은 한 마리씩 데려가 묶어 키우소.”
![어미개는 새끼 낳은 근방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동차만 보여도 짖어댄다. [사진 송미옥]](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2/04/ecba3afa-0370-4bc2-a550-9e885c9c0967.jpg)
어미개는 새끼 낳은 근방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동차만 보여도 짖어댄다. [사진 송미옥]
우리는 명령 같은 말씀에 눈이 떨어지자마자 한 마리씩 데리고 왔다. 어미 개는 새끼가 사라진 빈 둥지를 보며 한동안 울부짖다가 어디로 사라졌는데 언제부턴가 그놈이 또 나타나서 동네를 다니니 모두 걱정이 늘었다. 119에도, 유기견 센터에도 연락을 했지만 잡혀야 무슨 수를 쓰지.
살기가 폭폭 해도 우리 동네가 요즘 인기드라마의 옹산마을처럼 따뜻하고 살기 좋으니 돌아온 것일까. 이 집, 저 집 구박을 받으면서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으르렁거리고 짖는 이유는 세월이 가서 자연스럽게 또 임신해 새끼를 낳은 것이다.
뱃속의 생명을 살리려고 이 집 저 집 눈치 보며 밥을 먹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찡했다. 새끼 낳은 근방을 지나가는 사람이나, 자동차나, 보이기만 하면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댄다. 내 새끼 이번엔 절대 안 뺏긴다는 듯.

밖에서는 안이 절대 안보이는 대나무 숲.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살기 좋은 우리 마을에도 개를 극히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개 짖는 소리에 몇 번이나 동네 사람들과 투덕거리고 경찰까지 오고간, 동네 사람들과도 냉전 상태인 그 집 대문 옆 대나무 숲속에 새끼를 낳은 것이다. 갱갱거리는 강아지 소리와 그 옆을 지나가는 것은 물론 창문만 열어도 종일 짖어대니 마을 사람들은 강아지보다 그분의 신경 상태가 핵폭탄이 되지 않을까 더 걱정되었다.
강아지의 상태가 어떤가 궁금해 이웃이랑 대나무 숲을 들여다보니 누군가 벌써 다녀갔는지 황태에 쌀을 넣어 끓인 산모용 밥그릇이 입구에 놓여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세상에나, 그 작은 몸으로 이번엔 아홉 마리의 새끼를 낳아 다 살려내고 있다. 앞에서 죽기 살기로 짖어대는 어미의 젖은 홀쭉하고 애잔하다. 젖이 나오기는 하는 건지 삼일 된 놈들은 털이 보송보송하고 꼬물거리는 모습이 건강하다.
“다리에 하얀 점이 있는걸 보니 그 집 수놈이 아비 같네.”
“저 밤색 털을 가진 놈 애비는 그쪽 집 아니유?”
“우리 집은 아직 1년도 안 된 놈이라 아직 어려서 그런 짓 못햐.”
마치 내 새끼는 절대 나쁜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부모들처럼, 후에 일어날 일도 걱정이지만 대책이 안 나온다. 어수선한 대화만 오고간다.
그때, 개를 싫어하는 이웃 사람이 대문을 열고 나왔다. 이전의 상황으로 보아 소리부터 지를 거라 생각하며 모인 우리는 조신하게 인사를 했다. 예상 밖으로 덤덤하게 나온다. 제 새끼 해칠까 봐 창문에 비친 그림자를 보고도 밤새 짖어대는 개 때문에 며칠 밤을 설친다며 한참을 푸념한다.
우리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개는 싫어하지만 생명이니 일단은 살려야 할 것 같아 어제 마트에 가서 돼지고기와 명태포를 사와서 죽을 끓여 주었다는 거다. 나쁜 사람은 없다. 개 짖는 소리로 사이가 틀어진 옆집 사람이 얼른 개 사료를 한 통 들고나와서 인사를 하며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동네 사람들과도 냉전 상태인 그 집 대문 옆 대나무 숲속에 새끼를 낳았다.
우선 유기견 센터에 전화해 상황을 말하니 며칠만 보살피고 있어 달란다. 센터에서 올 때까지 모두 돌아가며 산모 바라지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들개 한 놈이 소원해진 이웃의 소통도 갖고 왔다. 그날 밤 우리 동네는 일찍 잠을 청해야 했다. 창문 앞에 그림자만 얼씬해도 목이 터져라 짖어재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당번이 된 이웃 여자가 강아지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이봐요, 밤새 강아지가 다 사라졌어요.”
나도 나가려다 말고 숲으로 올라가 보니 어젯밤까지 있던 강아지가 한 마리도 없이 다 사라진 것이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대략난감일까? 전봇대에 강아지 찾는다고 부칠 상황도 아니고 어수선한 마음으로 외출했다. (2부는 다음회에)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