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홍콩서 탐냈던 한국 럭비 국대 김진, 도쿄 간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한국 7인제 럭비 국가대표 김진. 미국 국적이던 그는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특별귀화했다. 장진영 기자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한국 7인제 럭비 국가대표 김진. 미국 국적이던 그는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특별귀화했다. 장진영 기자

“저는 축구의 박지성을 자주 떠올립니다. 화려한 플레이어보다 팀의 윤활유가 되고 싶거든요.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국민께 기쁨을 줄 수 있는 국가대표가 되는 게 목표예요.”
 

올림픽 첫 본선행 도운 귀화선수
고향 잠실 차범근 축구교실 출신
중국회사 접고 어머니 나라 찾아
훈련 뒤 곱창으로 스트레스 풀어

최근 서울 서소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한국 남자 7인제 럭비의 귀화 1호 국가대표 선수 김진(28·안드레 진 코퀴야드)은 한국말로 또박또박 자신을 소개했다. 이국적인 외모와 거침없는 한국말 솜씨. 불협화음 같은데 잘 어울렸다. 한국(세계 31위)은 지난달 열린 2020년 도쿄올림픽 남자 7인제 럭비  아시아 예선 결승에서 홍콩(21위)을 12-7로 꺾고, 단 1장의 올림픽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 럭비에는 첫 올림픽 본선이다. 아시아 최강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한 덕을 봤다. 김진은 “우승이 확정된 순간 너무 좋아서 펑펑 울었다. 회식이 끝나고 혼자 방에서 또 울었다. 산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제 인생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말했다.
 
1924년 파리올림픽을 끝으로 정식 종목에서 밀려났던 럭비는 92년 만인 2016년 리우올림픽 때 돌아왔다. 럭비는 축구장과 비슷한 면적의 경기장에서 공을 들고 상대 골 지점까지 돌파해 ‘트라이(득점)’하는 종목이다. 경기 시간은 전·후반 7분씩에 휴식 1분이다. 14분간 3㎞ 이상 뛸 만큼 활동량이 많고, 몸싸움과 태클은 거칠다.
 
김진은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91년 태어났다. 탄탄한 체격(1m95㎝·100㎏)은 아버지(1m83㎝)와 어머니(1m75㎝)한테 물려받았다. 어머니는 1980년대 세계적인 모델로 활동했던 김동수(62) 동덕여대 패션학과 교수다. 아버지(67·노웰 코퀴야드)는 미국 다트머스대 미식축구 선수였다. 한 미국 식품회사 아시아지역 책임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12세까지 서울과 일본 도쿄를 오가며 자랐다. 어린 시절 한국과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었다. 11세였던 김진은 “당시 차범근 축구 교실에 다니던 ‘골 좀 차는 어린이’였다. 한국 축구를 보며 흥분해서 방방 뛰어다녔다”고 회상했다.
 
럭비는 중학 3학년 때인 2006년 캐나다에서 유학하며 시작했다. 입문과 동시에 재능을 보였다. 17세 때인 2008년 아버지의 나라인 미국 럭비 청소년 대표선수로 뽑혔다. 김진은 “당시 키가 1m85㎝였다. 축구나 농구보다 럭비에 최적인 체격이었다. 럭비는 축구의 드리블, 킥 등과 비슷한 움직임이 많아 적응이 쉬웠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학 럭비 최강 UC버클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며 계속 럭비를 했다. 2014년 중국 상하이의 스포츠매니지먼트 회사에 취직하며 선수 생활을 접었다. 저변이 넓지 않은 럭비 선수로 계속 뛰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김진(안드레 진 코퀴야드)

김진(안드레 진 코퀴야드)

잠들었던 김진의 럭비 열정을 다시 깨운 건 홍콩의 러브콜이었다. 상하이 동호인 리그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인 그를 눈여겨본 홍콩럭비협회가 2015년 귀화를 제안했다. 고민 끝에 다시 럭비공을 쥐기로 결심했다. 그런 그가 전화를 건 상대는 대한럭비협회였다. 그는 “기왕 국가대표를 한다면 당연히 어머니 나라에서 하고 싶었다. 그래서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테스트를 거쳐 한국 럭비 국가대표가 됐다. 럭비는 (외)조부모나 부모 중 한 사람 국적을 따라 그 나라 대표가 될 수 있다. 다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출전은 귀화해야 가능하다.
 
한국에 적응하기까지는 어려움도 있었다. 일부에선 김진을 외국인으로 취급했다. 존댓말이 익숙지 않아 오해도 많이 샀다. 그는 “‘괜히 한국에 왔나’ 후회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올림픽만 보며 묵묵히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8월 특별귀화를 마쳐 한국 국적을 얻었다. 그는 “이젠 진짜 한국 사람이다. 자신 있게 잠실이 고향이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부주장인 그는 훈련 후 동료들과 곱창에 맥주 한잔하며 스트레스를 풀 만큼 끈끈하다.
 
김진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어릴 때 지켜봤던 한·일 월드컵 4강 같은 기적을 꿈꾼다. 그는 “2002년 축구는 전 세계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일”이라며 “우리도 도쿄에서 기적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올림픽에서 제대로 사고 한 번 치겠다”며 왼쪽 가슴의 코리아 엠블럼을 움켜쥐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