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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음’ 불국사는 ‘양’…사찰 설계에 적용된 도교 사상

[도시와 건축] 통일신라의 ‘멀티 컬처’

우리나라에 많은 전통 사찰건축물 중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불국사다. 불국사는 751년 통일신라 경덕왕 10년에 크게 증축했다. 설계는 김대성이 맡아서 했는데 삼국유사에 의하면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였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석굴암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토함산 동쪽엔 음의 공간 석굴암
서쪽엔 양의 공간 불국사로 균형

바닷길 통해 인도·유럽 문화 유입
통일신라는 부유하고 열린 사회

불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기단부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내리는 몬순기후다. 장마철에 집중호우가 내리는데 이때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돌로 만든 벽은 쓰러져서 사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목재를 사용해서 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 목재는 비에 젖으면 썩어서 무너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기둥이 젖은 땅과 닿는 부분에는 방수재인 주춧돌을 놓게 된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초가집의 경우에는 작은 주춧돌을 놓고 부잣집으로 갈수록 큰 주춧돌을 놓는다. 돌은 무겁기 때문에 큰 주춧돌을 옮기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주춧돌이 클수록 부잣집이다.  
 
불국사 돌 기단, 조선 경복궁보다 높아
 
김대성이 설계한 불국사. 통일신라 경덕왕 때 증축됐다. [중앙포토]

김대성이 설계한 불국사. 통일신라 경덕왕 때 증축됐다. [중앙포토]

예부터 부의 상징은 ‘기와집’이었다. 비가 많이 오는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중요한 건축의 기능은 비를 피하는 것이다. 지붕에 방수재료로 가장 좋은 것은 기와다. 그런데 기와의 문제는 무겁다는 점이다. 기와로 지붕 방수재료를 사용하면 그 무게를 버티기 위해서 나무기둥이 굵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지붕의 무게와 굵은 나무기둥을 받치기 위해서 주춧돌도 더 커져야 한다. 건축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래서 서민들은 무거운 기와 대신 가벼운 볏짚을 이용해서 지붕을 만들었다. 그래서 기와집이 부의 상징인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부자는 기단을 만든다. 기둥 밑에 작은 주춧돌을 두는 정도가 아니고 돌로 수십 cm 높이의 기단부를 만들고 그 위에 주춧돌을 놓고 건물을 짓는다.  
 
조선 시대건축물 중 가장 높은 기단부를 가진 건축은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경복궁이다. 경복궁의 건물들은 1m가 넘는 높은 기단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해본 가장 큰 높이의 돌 기단부는 경복궁이 아닌 불국사에 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두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통일신라가 조선보다 부유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경주는 모든 세대가 음식을 할 때 장작 대신 숯을 썼다고 한다. 둘째는 가장 큰 기단이 궁궐보다 사찰에서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는 실질적으로 정치권력보다 종교권력이 더 컸다는 점이다.
 
불국사에 진입하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높이의 기단부인 석축이다. 이 높이를 올라가기 위해서 ‘청운교’와 ‘백운교’라는 두 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아래에 있는 백운교 18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청운교 16계단이 있다. 총 34개의 계단을 올라갈 정도로 높은 기단을 가지고 있는 건축물이 불국사다. 그런데 이 기단부는 경복궁의 기단과는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 돌들은 피라미드처럼 비슷한 크기의 돌이 쌓여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 기둥과 보처럼 세로로 긴 돌과 가로로 긴 돌이 격자형으로 쌓여있고 그사이를 돌을 쌓아서 만든 모양을 가진다. 이런 모양의 석축을 ‘가구식 석축’이라고 부른다. 이런 디자인은 구조적인 이유보다는 돌을 이용한 건축을 하는 초기였기에 목구조에서 배운 기둥과 보의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에서 바라본 석굴암 본존불. [중앙포토]

정면에서 바라본 석굴암 본존불. [중앙포토]

석굴암은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하학적인 건축물이다. 보편적으로 서양의 종교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로 만들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판테온이고 이후에 만들어진 하기아 소피아 성당 같은 건축물도 평면은 원과 직사각형의 기하학으로 분석 가능하다. 판테온은 평면과 단면 모두 43.3m 직경의 원이 들어가는 구성의 공간이다.  
 
서양 종교건축에 기하학이 도입되는 이유는 서양사상의 기초를 세운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영향이 크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던 사상가였다. 플라톤은 이집트 지역을 여행하면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설립한 대학의 입학조건으로 기하학의 이해를 둘 정도로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플라톤은 심지어 제자들에게 하늘에 보이는 천체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수학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이처럼 유럽문화의 근간에는 수학, 그중에서도 기하학을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생각의 흐름이 크다. 따라서 우주의 진리를 드러내야 하는 종교건축의 공간은 당연히 기하학적인 형태로 나와야 했다. 하지만 동양의 종교건축에서 기하학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특별한 예외가 석굴암이다. 석굴암은 직경 6.7m의 원이 들어가는 평면과 단면을 가진다. 내부공간의 형태를 보면 미니 판테온이다. 석굴암의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통일신라라는 국가가 얼마나 국제적이었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오히려 폐쇄적이고 중국에만 의존했던 조선보다 해외와의 교류가 더 활발했던 것으로 상상이 된다.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 공주였다는 설화가 있다. 이런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한반도는 이미 바닷길을 통해서 인도, 페르시아, 유럽의 문화를 받을 수 있는 경로가 있었다고 보인다. 문화가 전파되면 건축에 반영된다. 석굴암은 서양 건축문화가 통일신라 시대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판테온과 석굴암은 유사하기도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첫째 판테온은 비워진 공간에 위로부터 빛이 떨어지는 공간이다.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인 ‘만신전’ 이어야 했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신의 조각상을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간을 비우고 빛으로 채웠다.
 
대한민국의 도시 건축은 너무 획일적
 
로마 판테온의 내부 디자인은 기하학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마 판테온의 내부 디자인은 기하학적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반면에 불교사찰인 석굴암은 불상을 가운데에 두었다. 이보다 더 큰 차이점은 판테온은 밖에서 보면 건축물로 보이지만, 석굴암은 건축을 마친 다음에 흙을 쌓아서 건물을 지워버렸다는 점이다. 이것이 석굴암이 특별한 가장 큰 이유이다. 석굴암을 설계한 김대성은 석굴암은 ‘음(陰)’의 공간인 빈공간만을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건물의 외양이 보이게 되면 ‘양(陽)’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양의 공간은 이미 서 측에 있는 불국사에서 완성되어 있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있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중앙포토]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있는 다보탑(국보 제20호). [중앙포토]

우리는 불국사와 석굴암의 디자인을 통해서 설계자 김대성의 머릿속을 엿볼 수 있다. 김대성의 설계는 반대되는 것의 병치를 추구한다. 우선 토함산을 기점으로 동쪽에는 땅을 파내서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음의 공간인 석굴암을 만들었고, 서 측에는 반대로 기둥과 보를 쌓는 구축방식으로 양의 공간인 불국사를 건축했다. 불국사 경내에 들어가면 마당에 석가탑과 다보탑이 보인다. 다보탑은 우리나라 수천 년 역사에 가장 화려한 디자인의 석탑이지만 석가탑은 미니멀 디자인의 극치다. 두 개의 탑이 ‘아사달’이라는 한 작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이처럼 김대성은 반대되는 것을 한 쌍으로 만든다. 서로 다른 음과 양을 병치해서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은 도교 사상의 핵심이다. 도교는 음양의 조화로 세상을 이해한다. 따라서 실제로 불국사와 석굴암은 불교를 위한 건축물이지만 설계의 원리에는 도교 사상이 깔려있다. 이 역시 통일신라 시대의 ‘멀티 컬처’를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불국사의 기단의 규모와 석굴암의 기하학적인 디자인, 그리고 불교사찰에 도교 사상이 접목된 것으로 미루어보아 당시 통일신라가 얼마나 부유했으며 열린 사회였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학교, 아파트, 도시의 형태가 획일화된 우리 시대 대한민국의 건축을 보면서 후대는 과연 21세기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평가할까.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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