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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강·시가지 잘 어우러진 ‘전원도시 서울’ 꿈일까

빠른 삶, 느린 생각 

김우창칼럼

김우창칼럼

얼마 전 인터넷으로 읽은 글에 서울의 산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며칠간의 방문을 계획하고 한국을 찾아온 어느 미국인이 서울에 도착하자 곧 등산을 결심하고 북한산 산길을 8시간에 걸쳐 걸었다고 한다.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찾아 오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그럴 때에, 특히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경복궁이나 미술관 또는 고도시의 풍광과 풍습이 남아 있는 거리 등 역사나 문화 유적들을 찾아가지, 산이나 강이나 바다를 찾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할 것이다. 관광 목적으로 외국을 방문할 때, 다른 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산업화·민주화 등 역사적 경험
통일·세계평화 과제 중요하지만
외면적 조건 다지는 것일 뿐

이젠 삶의 내면적 재구성 고민을
근대 이후 숨가쁘게 확장된 서울
산자락 따라 새로이 다듬어볼 만

가령, 알프스가 있는 남독일이나 스위스 또는 미국 뉴욕주의 나이아가라 폭포 또는 네팔의 히말라야 산을 찾아 가는 경우, 당장에 방문 대상이 되는 것은 도시보다는 이름난 산이나 물의 명승지이다. 그런데 한국, 그중에도 서울을 처음으로 찾으면서, 첫 방문의 대상으로 북한산과 같은 산을 택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여행지 선택이다. 가을 단풍 계절에 설악산을 방문한 독일인이 그 곳의 풍치가 알프스보다 좋았다고 하더란 말을 들은 일이 있다. 그러한 경험과 판단이 누적되면 설악산도 세계적인 명승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설악을 가보기 위하여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이 있게 될 것이다.
 
19세기 하워드가 꿈꾼 ‘전원도시’
 
생각해 보면, 사실 서울은 경승(景勝)의 도시라고 할 만큼 산들과 시가지가 섞여 어울려 있는 곳이다. 산과 시가지 그리고 강이 이렇게 섞여 있는 곳이 세계에 많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까지 산과 시가지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아름다운 고장으로 보이게 하려는 노력이 충분히 존재해왔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조선 초기 한양 천도[遷都]가 이루어졌을 때 서울은 풍수로 보나, 그러니까 불어오는 바람이나 흐르는 물로 보나, 그것을 참고한 계획도시라는 관점에서 보나, 산과 도시가 지극히 잘 어울려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근대 도시로서의 서울은 그렇게 산과 물과 바람이 잘 어울리게 계획된 고을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근대화가 일단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서울은 그 나름의 조화를 가진 도시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밖으로 산과 도시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전체의 모습을 보면, 산들이 시가지에 섞여 있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인 듯, 시가지가 평평한 들판, 기하학적 평면에 펼쳐질 수 있었으면 더없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며있는 듯 한 인상을 준다. 그런데 앞에 말한 미국인 관광객은, 뒤섞여서 거의 알아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산 속에 자리한 도시로 알아보고 번화가의 한 편에 솟은 북한산을 오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고 필자는 서울이 당초에 그러했던 것처럼, 작고 큰 산과 시가가 적절하게 어울려 있는 곳으로 발전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사람의 하는 일은, 시가지 개발이나 발전을 포함하여, 시행착오를 통하여 개선되고 향상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지금이라도 서울이 본래의 지형을 존중하면서, 산들 사이의 고을로 발전하기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할 수는 없다.
 
현대 도시 계획에 크게 영향을 끼친 아이디어 하나가 ‘전원도시 (가든 시티)’라는 발상이다. 유럽에서 산업화의 선구자가 되었던 영국에서 마구잡이로 도시가 팽창하여 감에 따라, 계획된 시가지와 건축물 그리고 자연과 수목을 조화하여 시가지를 설계하려는 생각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런던 출신의 에베네저 하워드는 열다섯에 학교를 그만두고, 여러 회사에서 서기(書記)로, 또 미국에 건너가 농업 노동자로 일하다가 런던에 돌아와 의회의 회의록을 출판하는 회사에서 일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 개혁의 여러 발상에 접하게 되고 자기 나름의 사회 개혁 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그의 생각은 『내일, 진정한 개혁으로 가는 평화의 길 (1898)』이라는 저술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좋은 도시는 자연과 인간의 삶이 조화하여 존재하게끔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득하고자 하였다. 이 설계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물론 수목과 거리의 공존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주거, 산업, 경작 등의 인간 활동을 주안으로 하는 독립된 구역을 두어야 한다. 또 비어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존(zone)’이라는, 일정하게 구역화되는 도시 공간의 이념이 여기에서 생겨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이어지는 수목원이다. 녹지대(綠地帶)가 이어짐으로써, 도시는 전원 도시 또는 정원 도시가 된다.
 
또 한 가지, 하워드의 이상 도시는, 무한이 펼쳐지는 도시가 아니라 공간으로나, 인구로나 일정하게 제한되는 땅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제한을 강제적으로 부과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생각은, 제한된 인구와 공간을 넘어 도시가 팽창한다면, 녹지 중심으로, 그것을 별개의 공간 지역으로 계획하자는 것이었다. 또는 그런 도시는 소규모 도시들이 서로 연합하여 존재하게 되는 도시 연합이 된다.
 
김우창칼럼

김우창칼럼

도시 개발은 대체로 부동산 투자에 관계될 수 있다. 사회적 삶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 하워드는 전원 도시 발전에 따를 수 있는 과장된 수익을 제한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개발의 비용과 이익을 공유하고 개발된 도시 지역의 정치적 결정을 협동적 공동체에서 관장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선도(先導)하여 시작된 전원도시 운동에서 이러한 협동 체제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의 부동산 투자 열기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널리 퍼지게 된 전원 도시들은 저절로 자본 투자와 그 수익에 관계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협동주의는 19세기 미국의 경제 이론가 헨리 조지의 사상적 지향과 많은 공유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조지는 우리나라의 정치 이론가 사이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정치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소규모 전원 도시에 대한 하워드의 발상도 현실에 그대로 구현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의 원형이 어떤 것이었던지 간에 전원도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영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 여러 곳의 도시 계획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전원도시와 관련하여 서울을 생각하면, 서울은, 되풀이 하여 말하건대, 지형으로나 당초의 계획으로나 그러한 도시였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다. 사실 서울이 도시로서 팽창하고 그에 따라 새로 추가로 설계하고 정비하면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산을 존중하고 손상하지 않게 하면서, 또는 그것을 북돋아 보이게 하면서, 시가지가 펼쳐 나가게 하였더라면, 서울은 절로 전원도시 또는 전원도시의 연합체가 되었을 것이다. 전체를 조감(鳥瞰)하여 본다면, 지금의 상태도 그러한 모양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을 조금 더 부상(浮上)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시각적으로 그래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삶의 터전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서울의 여러 곳을 생활공간으로 나누고, 그 공간들을 잘라내는 산들을 돋보이게 하고 서로 연쇄(連鎖)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둘레길’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해 전부터 시에서 생각해오던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다음으로는 필요한 것은 녹지와 산으로 구획된 공간을 조금 더 자족적(自足的)인 삶의 공간이 되게 하는 것이다. 전원도시의 중심부에는 상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생활 필수품의 수급이 원활하게 처리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부는 사회적 상호 교환관계 또는 문화적 교환관계를 매개할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몇 해 전에 뉴욕에서는 시내의 십자로에 작은 광장을 위치하게 하려는 운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와 시민들로부터 상당한 반응을 일으킨 움직임이었다. 상점도 있어야 하고 식당이나 다방도 있어야 한다. 극장, 영화관, 전시장 등 문화 향수(享受)의 공간도 편입되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전원적으로 구획화된 지역의 공동체적 성격을 강화하는 일이기도 하고 시의 중심부로 폭주(輻輳)하는 교통량을 줄이는 효과를 가지게 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서울과 같은 수도의 경우, 산업지역을 어디에다 설치하느냐 하는 것은 더 연구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뉴욕선 도심 십자로에 작은 광장 설치도
 
위에 말한 대로 관광객이 우선적으로 선택한 북한산 등반은 천부(天賦)의 전원도시로서의 서울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함께 오늘의 우리의 정치 상황도 생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의 시점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상황 전체를 반성적으로 돌이켜보고, 세부적인 사항들을 가려보면서 보다 완전한 상태, 보다 조화된 상태를 계획해 볼 수 있는 시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나라는 해방, 산업화, 민주화 등의 과정, 괴로우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과정들을 경험하였다. 현시점의 과제는 현상을 삶의 필요에 맞추어 살펴보면서 조정하고 보충하고, 부가 설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큰 과제로서 남북통일 또는 긴장 완화가 있고, 또 평화로운 국제 관계 속에 나라를 자리하게 하는 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보다 중요하고 근본적이고 어려운 과제이면서, 삶의 내면적 재구성보다는 외면적 조건을 다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삶의 직접적인 조건은 아니면서도 의도하는 대로 조정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하여서도 위에 말한 북한산 등반이라는 우연한 사건이 갖는 우화적 의미를 생각해 볼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심스럽게 전체를 조감하고 여러 작은 일들을 균형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내부가 일정한 균형을 얻게 하는 일이다. 서울시의 지형적 재구성 또는 정비의 문제는 이 균형의 한 모형이 될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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