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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圍魏救趙<위위구조>

한자세상 11/30

한자세상 11/30

기원전 353년 병법의 대가 손빈(孫臏)이 제(齊)나라 위왕(威王)에게 말했다. “지금 위(魏)·조(趙)가 서로 공격하고 있어 정예 병사는 모두 밖에서 기력이 쇠진하고 안에서는 노약자도 피폐했을 것입니다. 임금께선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의 도성 대량(大梁)으로 달려가 허점을 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반드시 조를 놔두고 자기를 구할 것입니다. 일거에 조의 포위를 풀어 주고 위를 피폐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사기(史記)』에 전하는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한 ‘위위구조(圍魏救趙)’ 전략이다. 이후 병법 ‘삼십육계’의 두 번째 전법이 됐다. 손빈은 위나라 장수 방연(龐涓)을 상대로 신출귀몰한 전도팔문진(顚倒八門陣)을 펼쳐 이겼다. 계릉(桂陵)의 전투다.
 
13년이 흘렀다. 위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했다. 손빈이 장군 전기(田忌)에게 “병법에 ‘백 리 앞의 이익을 좇으면 상장군이 죽고, 오십 리 앞의 이를 쫓으면 군대가 반밖에 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위나라 영토에 들어서면 첫날은 부뚜막 10만개를, 다음날은 5만, 그다음 날에는 3만 개만 만드시오”라고 일렀다. 뒤쫓던 방연이 기뻐 말했다. “위나라 땅에 들어온 지 3일 만에 도망간 병사가 반을 넘었구나!”
 
손빈은 험준한 마릉(馬陵)에 들어서자 나무 한 그루의 껍질을 벗겨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다”라 쓰게 한 뒤 궁사 1만을 매복시켜 ‘밤에 횃불이 켜지면 쏘라’고 명령했다. 쫓아온 방연이 나무의 글자를 보고자 횃불을 밝혔다. 글자를 채 읽기도 전에 화살이 쏟아졌다. 방연은 “손빈이 드디어 명성을 얻었구나” 탄식하며 숨을 거뒀다.
 
2300여 년이 흘렀다. 지난 18일 홍콩 구룡반도의 몽콕·야우마테이·침사추이를 오가며 흑의대(黑衣隊) 시위를 지켜봤다. 그들은 이공대 잔류파를 구하기 위해 ‘위위구조’식 팔문진을 펼쳤다. 새로운 경찰 수장 덩빙창(鄧炳强·크리스 탕·54)은 방연과 달랐다. 기동경찰 속룡대(速龍隊) 버스를 시위대에 돌진시키는 진압 전술로 242명을 무더기 체포했다. 모두 폭동죄로 기소했다. 흑의대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했다.
 
이어진 선거에서 홍콩은 흑의대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고 흑의대와 덩빙창 어느 쪽도 좌절하거나 쾌재를 부를 때가 아니다. 아직 계릉의 전투가 끝났을 뿐이다. 홍콩판 마릉의 전투는 아직 막이 오르지 않았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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