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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소녀 그레텔에 빙의한 40대 “무대선 별게 다 되죠”

[아티스트 라운지]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 주연 캐슬린 김

‘콜로라투라(Coloratura) 소프라노’는 성악곡에서 가장 높은 음을 기계처럼 정확하게 내는 ‘초절 기교’의 소유자다. 한국인 성악가 캐슬린 김(44)은 손꼽히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홍혜경(1984), 조수미(1989), 신영옥(1990)에 이어 네 번째(2007년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로 입성해 매 시즌 러브콜을 받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입성 소프라노
학생들 가르치며 더 강인해져

원작 동화 쉽지만 음악은 오묘
아름다운 곡 부르며 행복 느껴

그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국립오페라단의 ‘헨젤과 그레텔’(12월 5~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가깝게 들을 수 있게 됐다. 바그너의 마지막 제자 훔퍼딩크의 작품으로, 독일 민요풍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웅장하고 환상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이 돋보이는 크리스마스 대표 레퍼토리다.
 
해외에서 최고 수준의 극장만 돌며 초긴장 상태로 살았다는 캐슬린 김은 한국 활동을 하며 ’즐기며 일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해외에서 최고 수준의 극장만 돌며 초긴장 상태로 살았다는 캐슬린 김은 한국 활동을 하며 ’즐기며 일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신인섭 기자

지난주 캐나다 몬트리올오페라단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을 마치고 귀국해 아직 ‘헨젤과 그레텔’에 몰입이 안된 상태라는 그는 ‘대쪽 같은’ 예술가였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의 대표작으로 연상되는 오페라 ‘마술피리’ 속 ‘밤의 여왕’ 같은 역할에 대해서도 “일이 없으면 몰라도 다른 좋은 역할 많은데 스트레스 받으며 할 필요 없다”고 일갈한다.
 
“루치아에 에너지를 다 쏟고 왔거든요. 시차적응도 아직인 데다 도니제티에서 훔퍼딩크로 음악도 탁 바뀌고, 감정을 다 쏟아내는 역을 하다가 갑자기 열 살짜리가 되려니 쉽진 않네요.”
 
하지만 지난해 초연 당시 40대 나이가 무색하게 10세 소녀 ‘그레텔’에 완벽히 빙의했던 그다. “해외에선 크리스마스 레퍼토리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거든요. 외국 프로덕션을 보며 음악도 참 좋고, 제 체구가 작으니까 캐릭터도 맞을 것 같아 꼭 하고 싶었던 역이에요. 작년 공연을 관람한 지인 아들이 그레텔이 저라는 걸 안 믿었다고 하더군요(웃음). 그게 무대의 매력인 것 같아요. 제가 어디 가서 10세 소녀가 돼 보겠어요. 무대에선 별게 다 될 수 있죠. 인형, 새, 심지어 불까지 해봤는걸요.”
 
동화 원작의 가족 오페라니 좀 쉬운 작품인가요.
“워낙 유명한 동화라 아이들도 편하게 볼 수 있지만, ‘입문용’은 아니에요. 내용은 쉽지만 음악은 어려운 오묘한 작품이죠. 차라리 이탈리아 오페라는 음악도 쉽게 들리고 내용도 심플한데, 이건 사실 음악적으로 굉장히 심오해요. 가사 뉘앙스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레이션의 미묘함 때문이죠. 제가 좋아하는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단어를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색칠한다’고 표현하는데, 이 음악이 그런 작품이에요. 저럴 때 저 단어와 저 음악이 어우러져 이런 감동을 준다는 건 독일 오페라를 많이 접한 분들이 잘 느낄 수 있죠. 사실 저도 공부할 때 굉장히 어려웠어요.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라서요.”
 
그런 면을 잘 느낄 수 있는 건 어떤 장면인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데, 숲속에서 헨젤과 그레텔이 배가 고파 잠드는 장면이 특히 아름다워요. 헨젤과 함께 기도하는데, ‘천사가 우리를 이렇게 지켜주고 있다’는 가사와 음악이 기가 막히게 감동적으로 어우러지거든요. 부르면서도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부를 수 있구나’ 감사하고 행복감이 들 정도예요. 학생시절 테크닉이 부족할 때는 잘 표현하고 싶어도 안되던 게, 이제 원하는 대로 저절로 될 때 희열을 느끼죠.”
 
무대미술과 미장센도 각별히 아름답겠죠.
“솔직히 무대에 서는 입장에서 전체 그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웃음). 무대에서 보이는 과자가 진짜 먹고 싶을 만큼 예쁜데,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일까 항상 궁금하긴 해요. 더블캐스팅이 공연할 때는 쉬어야 되니까 보러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데, 요번에 막공(마지막 공연)은 보려구요. 어떤 작품이든 막공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항상 공존하거든요. 이제 이 음악에서 벗어나 다른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기쁨과 이 음악을 언제 다시 하게 될지 모른다는 아쉬움이죠.”
 
그레텔 의상 스케치. [사진 국립오페라단]

그레텔 의상 스케치. [사진 국립오페라단]

20여 년 해외 생활 후 대학 교수로 부임
 
그에겐 ‘2007년 데뷔 이래 매 시즌 메트로폴리탄 무대를 밟은 소프라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일부 잘못됐단다. 매 시즌 러브콜을 받긴 해도 실제 무대에 선 것은 ‘거의 매 시즌’이라고.
 
“작년에 마스네의 ‘신데렐라’에서 요정 역할을 했고, 올해는 오퍼가 들어왔지만 사정상 고사했죠. 왜 매년 저를 부르냐구요? 동양인이지만 무대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여태까지 연출가에게 연기 지적을 받아본 적은 없거든요. 연출이 디테일하고 연기에 대해 엄격한 연출가들이 저와 일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구요.”
 
따로 연기 레슨을 받진 않나요.
“솔직히 ‘끼’인 것 같아요. 그냥 연기하는 걸 좋아하니까. 저도 학생들을 맡고 있지만 노래는 가르쳐도 끼는 못 가르치죠. 타고난 본능 같은 거잖아요. 저도 스스로 내꺼다 생각하고 음악에도 몰입이 될 때 생각지도 못했던 연기나 느낌이 나오지만, 몰입이 안되는 순간에는 내 것이 안 되거든요.”
 
데뷔 이후 승승장구했지만, 큰 시장에서 어려움도 있었겠죠.
“늘 최고를 보여드려야 되는 게 어려움이죠. 메이저극장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은 서양인보다 두세 배 잘하는 분들이에요. 더구나 요새는 외모 비중도 큰데,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써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니까. 저도 초기에 한 극장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저보다 커리어가 떨어지는 친구에게 배역을 뺏긴 적도 있었어요. 당시엔 너무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 상처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저에게 필요 없었던 역할인 것 같아요(웃음).”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중 마카롱집 앞에서 노래하는 캐슬린 김(왼쪽). [사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중 마카롱집 앞에서 노래하는 캐슬린 김(왼쪽). [사진 국립오페라단]

고 2때 한국을 떠나 줄곧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돌며 활동하던 그는 2015년 한양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오랜만에 한국 기반의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20여 년간의 해외 생활이 늘 초긴장 상태의 연속이었다지만 한국에 와서 살면서 오히려 강인해졌단다. 무슨 말일까.
 
“전에는 목이 좀 안 좋으면 프로덕션 자체를 취소하곤 했어요. 데뷔 이후 큰 극장만 돌아다니다 보니 하루도 긴장을 놓을 수 없고 목관리 스트레스도 너무 심했죠. 술도 안 마시고 말도 안 하고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하며 연주에 연주만 거듭했거든요. 그런데 한국 와서 애들 가르치다보니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자리도 많고, 술도 마시게 되고, 인간적으로 릴랙스해지더군요.”
 
“목소리는 감정을 토해내는 유일한 악기”
 
학생들 레슨을 하다가도 곧바로 공연에 나서는 일상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소화할 수 있도록 그를 단련시켰다. “완전히 다른 내가 됐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전에는 내 삶이 전혀 없었어요. 지금은 내 삶도 갖고, 좀 더 즐기며 일을 하게 됐죠. 내가 파바로티도 아닌데, 굳이 내 삶을 희생하면서 노래에 전념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교수 생활은 어떤가요.
“처음엔 뭣도 모르고 했죠. 가르치는 일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솔직히 가끔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지난 세월 공연만 하며 살아왔으니까. 나가서 노래해야 되는데 왜 여기 있지 싶은 거죠. 하지만 보람 있는 일인 건 맞아요. 잘 따라와 주는 학생들도 있고.”
 
모든 솔리스트는 자기 소리를 만들어야 하는 고민이 있겠죠.
“저는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많은 걸 경험하라고 해요. 그 나이에만 배울 수 있는 걸 많이 배우라고. 무대에서 감정 표현도 다 경험에서 오는 것이니까. 한국 학생들은 너무 발성연습만 하고 그런 면이 좀 있는데, 세상에 나가서 보고 듣고 느끼고 연애도 해보고 할 것 다 해봐야 무대를 내 것으로 만들어 표출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성악 전공자는 많고 오페라 시장은 좁은 현실에 대해 “오페라는 외국에서도 대중적인 문화는 아니고, 어쨌든 우리 게 아닌 그들의 문화”라고 직설했다. “노래로 먹고살긴 정말 힘들더군요. 노래를 전공했어도 다른 재능을 살려보는 것도 능력이고 용기 아닐까요. 오페라 관객 개발이 되려면 너무 좋아서 또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좋은 공연을 만들어야할 것 같아요. 관객 입장에서는 돈 주고 티켓 사서 3시간을 귀하게 써야 하니까요. 저 같은 싱어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드려야죠. 사람의 목소리가 악기가 될 때 감동은 대단하거든요. 인간의 감정을 다 토해내어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악기가 바로 우리 목소리잖아요.”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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