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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 쌍둥이 고지, 왜 '섹시 심볼' 여배우 이름 붙었을까

[Focus 인사이드]

 
고지전에서 부상당한 동료 병사를 후송하는 미 2사단 병사들의 모습. [사진=www.bostonherald.com]

고지전에서 부상당한 동료 병사를 후송하는 미 2사단 병사들의 모습. [사진=www.bostonherald.com]

 

한국전쟁 지옥같은 고지전 이어져
미군, 여배우 이름 무명고지에 붙여
펀치볼·폭찹힐 등 다양한 이름도

이제는 외국의 유명 연예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공연을 하거나 출연작을 홍보하기 위해서인데 한마디로 비즈니스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중요한 시장이 되었다. 특히 영화는 테스트베드로 여겨져서 세계에서 제일 먼저 개봉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고 한국을 방문한 연예인도 대부분 전성기를 지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1950년대에 할리우드의 초특급 스타들이 줄줄이 내한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안보가 불안한 데다 전쟁 복구도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곳이었다. 당연히 세계의 문화예술계에서 시장 밖의 세상이었다. 그런 곳에 밥 호프, 마릴린 맥스웰, 미키 루니, 마릴린 먼로처럼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유명인들이 앞 다투어 찾아왔다.
 
1943년 무법자에 출연했을 당시의 제인 러셀 [사진=wikipedia]

1943년 무법자에 출연했을 당시의 제인 러셀 [사진=wikipedia]

 
그들이 평생 들어본 적도 없었던 한국을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주한미군을 위문하기 위해서였다. 전쟁 중에는 최대 20만 명, 휴전 이후인 1957년 이전까지도 7만 명의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다. 1954년 초, 마를린 먼로는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주한미군의 요청이 있자 망설이지 않고 한국으로 곧바로 건너와 병사들을 위해 한 겨울에 얇은 무대복을 입고 공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금전적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찾아온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들은 불편한 시설을 결코 탓하지 않았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산다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당연한 의무로 생각했다. 1957년 방한 한 제인 러셀(Jane Russell)도 그러했던 스타 중 하나다. 그녀는 1953년 빅 히트한 영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Gentlemen Prefer Blondes)'에서 먼로와 공동 주연을 하면서 절정기를 구가하던 중이었다.
 
1957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한 제인 러셀. [사진=대통령기록관]

1957년 3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한 제인 러셀. [사진=대통령기록관]

 
러셀은 한국 방문 당시에 전방 부대를 찾아 위문 공연을 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예방해서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67년에 한 번 더 한국을 찾아 한국 시민을 상대로 상업 공연을 펼쳤다. 사실 이때도 한국에선 해외 스타를 직접 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그녀는 의외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각별한 편이었다. 더하여 러셀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본의 아니게 한국전쟁사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다.
 
고지 이름에 제인 러셀이 명기 된 미군 작전 지도. [사진=wikimedia]

고지 이름에 제인 러셀이 명기 된 미군 작전 지도. [사진=wikimedia]

 
흔히 철의 삼각지대라 불린 중동부 전선의 요충지인 강원도 김화에 있는 쌍둥이 고지를 미군들이 제인 러셀 고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제인 러셀 고지는 원래 피로 흘러넘친 격전지였던 단장의 능선·피의 능선·저격능선 부근에 있던 무명고지였다. 그런데 이곳의 이름이 제인 러셀로 불리게 된 데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병사들이 쌍둥이 봉우리가 러셀의 신체 일부와 닮았다며 그렇게 부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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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은 당시에도 유명했던 할리우드 여배우로 미군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병사들이 수 없이 죽어가며 싸우던 삭막한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그녀를 상상하며 고지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그녀는 병사들이 고통 속에 죽어간 격전지에 자신의 이름이 붙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질겁했을지 모른다. 한편으로 지옥의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그렇게라도 여유를 찾으려 하였던 것 같아 측은하기도 하다.
 
1950년 10월 원산을 방문해 해병대를 위문한 밥 호프. 그는 제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당시에 많은 연예인을 이끌고 와서 봉사 활동을 펼쳤다. 미군은 존경의 표시로 1998년 취역한 미 해군 수송선 T-AKR-300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붙였다. [사진=time.com]

1950년 10월 원산을 방문해 해병대를 위문한 밥 호프. 그는 제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당시에 많은 연예인을 이끌고 와서 봉사 활동을 펼쳤다. 미군은 존경의 표시로 1998년 취역한 미 해군 수송선 T-AKR-300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붙였다. [사진=time.com]

 
1951년 휴전회담이 개시된 후 전쟁의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현 위치에서 휴전이 이루어진다고 보고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고지전이 가열됐다. 만일 전선을 돌파할 의지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쳐도 될 이름 없는 많은 고지들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병사들이 총과 폭탄에 의해 사라져갔다. 따라서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던 첩첩산중은 현실에 등장한 지옥으로 바뀌어 갔다.
 
그러한 와중에 잠시 전쟁을 잊고 싶었는지 병사들은 전쟁과 관련 없는 이름들을 전선의 무명고지 위에 남겼다. 앞서 언급한 제인 러셀 고지 외에도 화채 그릇을 빗댄 펀치볼(Punch Bowl), 먹음직스런 돼지갈비를 연상시키는 폭찹힐(Porkchop Hill) 등도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병사들의 희망과 달리 고지전은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어떤 이름을 붙여도 전쟁은 그 자체가 지옥이기 때문이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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