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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선수협, 누구를 위한 귀족노조인가

프로야구 선수 최저연봉 인상, 자유계약선수(FA) 연한 단축, FA 등급제 실시, 부상자명단 제도 신설.
 

최저연봉 인상 등 개선안 선수협이 거부
일부 고연봉자에게 유리한 조건 내세워
'귀족노조'도 파업 않고 경제 걱정하는데
선수협은 저연봉 복지 외면, 기득권 강화

누구에게 유리한 제도 같은가? 최근 프로야구 뉴스를 읽지 않은 팬이라면, 프로야구 선수 노조 성격을 갖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의 주장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10개 구단과 합의해 2021년 시행하려는 제도 개선안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지난 24일 선수협이 대의원회의(선수대표 회의)를 열어 KBO 안을 거부한 것이다.
 
지난 28일 KBO 이사회(구단사장 회의)는 KBO가 마련한 개선안을 공개했다. 핵심은 FA 연한을 현재 9년에서 8년(대졸 선수는 8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또한 FA 등급제를 도입해 A, B, C등급 별로 차등 보상하는 방안이 나왔다.
 
A등급(구단 연봉 순위 3위 이내, 전체 30위 이내) FA를 영입하는 팀은 원소속팀에 보호선수 20명 외 1명과 전년 연봉의 200%를 보상해야 한다. 이는 현행 규정과 같다. 대신 B등급(구단 4위~10위, 전체 31위~60위)은 보호 선수 25명 외 1명과 전년 연봉의 100%, C등급(구단 11위 이하, 전체 61위 이하)은 전년 연봉 100% 보상 등이다. 또한 만 35세 이상 FA의 경우에는 연봉과 관계없이 C등급을 적용한다.  
 
이런 경우 B, C등급 FA의 영입 리스크가 낮아져 거래가 활성화 될 수 있다. 구단이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지만, 해당 선수가 더 큰 수혜를 입는다. 
 
또한 현행 2700만원인 최저 연봉을 3000만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포함됐다. 아울러 부상을 입은 선수가 FA 자격 취득에 손해를 보지 않도록 부상자명단 제도(최대 30일까지 등록일수 인정)를 도입한다고도 했다.
 
개선안에는 선수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조항도 있다. 외국인 선수 운영을 3명 등록, 3명 출전(현행 3명 등록, 2명 출전)으로 바꾸는 안이다. 또한 육성형 외국인선수(연봉 30만 달러 이하) 제도를 도입해 1군 외국인 선수가 부진하면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국내 선수 보호를 위해 1군 엔트리 인원을 기존 27명 등록, 25명 출전에서 28명 등록, 26명 출전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난 4월 취임한 이대호 선수협 회장. [연합뉴스]

지난 4월 취임한 이대호 선수협 회장. [연합뉴스]

이대호(37·롯데) 선수협회장 주도로 진행된 대의원회의에서는 FA 등급제에서 B등급 선수의 보상안을 더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현행 4년인 FA 재취득 연한을 없애자는 주장도 포함됐다.
 
두 가지보다 선수협이 가장 강하게 요구한 부분은 고액연봉 감액조항 완화다. 현재 KBO 규약에 따르면, 연봉  3억원 이상 선수(2019년 기준 66명)가 부상이 아닌 이유로 2군으로 내려갈 경우, 일당의 50%를 삭감하는 조항이 있다.
 
이는 고액 연봉자의 태업 또는 FA 먹튀 등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나마 실제로 이 조항을 적용하는 사례는 팀당 한 시즌에 한 번도 나오기 어렵다. 급여를 깎았다가 서로 감정이 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단들은 이 조항을 만들면서 연봉 5000만원 이하 선수(2019년 기준 290명)가 1군에 등록된 기간에는 5000만원에 해당하는 급여를 주고 있다.
 
더구나 감액조항은 2016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선수협은 이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선수협이 선수전체가 아니라 일부 고액 연봉자들의 목소리만 듣는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선수협은 2017년 초 이호준 회장 사퇴 후 무려 2년 동안이나 회장 공백 상태였다. 1000명 가까운 프로야구 선수 중에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나서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이대호 회장이 취임한 지난 4월 이후에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물론 선수협도 다른 개선책을 요구할 수 있다. 그 개선안이 선수 전체를 위하고, 특히 저연봉·저연차를 보호하는 방안이라면 여론이 편을 들어줄 것이다. 선수들의 투쟁에 명분이 있다면 구단도 한 발 물러날 것이다.
 
그러나 선수협의 요구는 고액연봉자와 FA 대상자를 위한 것이다. 프로야구 관중이 줄어들고, 경기가 꺼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득권 강화에만 열을 올리니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선수협에서 협상 실무를 책임진 김선웅 사무총장(변호사)은 "KBO의 개선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로 3년 임기가 끝나는 김 사무총장은 최근 연임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대호 회장을 비롯한 선수협 대의원의 강경한 입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KBO의 개선안을 본 야구 관계자 대부분은 "구단이 양보할 만큼 양보했다"고 평가했다. 팬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지난해부터 구단들을 설득해 만든 방안"이라고 말했다.
 
FA 시장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에는 양의지(32·NC)가 4년 125억원의 대박 계약을 따냈지만, 이는 양극화의 심화를 증명할 뿐이었다. FA 등급제가 시행된다면 B,C 등급에 해당할 선수들의 몸값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노경은은 아예 1년을 통째로 쉬었다.
 
올해 한파는 더욱 심하다. 경기침체로 인한 모기업의 투자 위축, 리그의 스타 부재, FA 영입효과에 대한 의문 등이 복합된 결과다. 시장 확장기에는 FA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며 몸값이 오르지만, 현재는 분명한 수축기다. 가만히 두면 몸값 거품이 빠지는 구단 우위의 시장이다.
 
구단이 칼자루를 쥔 상황에서 내놓은 개선안은 오히려 선수들에게 유리해 보인다. 그런데도 선수협은 다른 요구만을 하고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선수협이 팬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다.
 
2000년 1월 창립한 선수협은 대한민국의 그 어떤 노조보다 큰 지지를 받았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팬들도 한목소리를 냈다. 당시 KBO와 구단은 여론전에서 완패했다.
 
지금은 어떤가. 2000만원이었던 당시 최저 연봉은 20년이 지나도 2700만원이다. 상당수가 근로자 최저임금에 가까운 돈을 받고 있지만, KBO리그 최고 연봉자의 몸값은 4년 150억원(계약금 포함)으로 치솟았다. 2012년에는 집행부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선수협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했다. [중앙포토]

2016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선수협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사과했다. [중앙포토]

이 정도라면 선수협이 프로야구 선수들을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귀족노조'로 불리는 일부 노조원 사이에도 직급·연봉차가 있다. 그러나 노조와 사측이 합의한 임단협에 따라 임금 인상과 복지 혜택이 고루 돌아간다.
 
선수협은 전혀 다르다. 최고 연봉자는 최저 연봉자의 139배의 돈을 받는다. FA는 직업(구단) 선택의 자유도 있다. '귀족노조'가 비난을 받기는 해도 그들은 사측과 '수익 분배'를 놓고 싸우는 것이다. 출범 후 38년 내내 적자를 내고 있는 프로야구는 생산성이 너무나 떨어진다.
 
프로야구가 항상 돈잔치를 해온 것 같지만,  실상은 대외 환경에 매우 취약했다. 1998년 IMF 외환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상당히 많은 구단이 휘청거렸다. 버블이 더 많이 형성된 지금은 경기침체와 맞물려 곳곳에서 위기신호가 들려오고 있다.
 
지난 9월 '귀족노조'의 대표 격인 현대자동차 노조는 파업을 하지 않고 임단협을 체결했다. 8년 만에 파업 없는 협상이 이뤄졌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걸 노조도 체감했기 때문이다.
 
다음달 2일 열리는 선수협 총회가 열린다. 여기서 KBO가 공개한 제도 개선안을 놓고 전체 선수들이 찬반 투표를 벌인다. 여기서는 선수들 일부가 아닌 전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수협 대의원회의 결정이 총회에서 뒤바뀐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까?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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