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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역사책 속으로…'독수리 요새' 마르바오

기자
권지애 사진 권지애

[더,오래] 권지애의 리스본 골목여행(3)

누굴 만나도 사랑이 넘쳐 흐르는 카사노바가 돼버린 걸까. 가는 곳마다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는 포르투갈 소도시 여행은 토마르에서 정점을 찍고야 말았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나바오 강을 따라 아늑하고 차분해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템플 기사단의 열정적인 함성의 메아리로 가득했던, 수려하고도 용맹스러운 면모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두 얼굴의 토마르. 포르투갈의 기사도 정신과 화려한 전성시대가 살아 있는 그리스도 수도원에서 넋이 나간 채 몇시간을 돌고도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순간들이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가는 곳 마다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는 포르투갈 토마르. 차분해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수려하고 용맹스러운 면모도 가지고 있다. [사진 권지애]

가는 곳 마다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는 포르투갈 토마르. 차분해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수려하고 용맹스러운 면모도 가지고 있다. [사진 권지애]

가이드 베르나드로는 2023년 7월에 포르투갈을 여행 중이라면 반드시 토마르를 방문해야 한다고 귀띔해준다. 마을을 행진하는 엄청난 규모의 트레이 축제가 7월 첫째주에 열리기 때문이다.

가이드 베르나드로는 2023년 7월에 포르투갈을 여행 중이라면 반드시 토마르를 방문해야 한다고 귀띔해준다. 마을을 행진하는 엄청난 규모의 트레이 축제가 7월 첫째주에 열리기 때문이다.

 
토마르와 그리스도 수도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흰색 바탕에 붉은 십자가를 그린 망토를 입은 템플 기사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119년 프랑스에서 9명의 기사로 출범한 템플 기사단은 예루살렘과 순례자 보호라는 명목으로 세운 수도회에서 시작됐다. 부를 축적한 그들을 시기한 프랑스 국왕이 기사단을 체포, 재산을 몰수하며 기사단은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포르투갈의 기사단은 전혀 다른 행보를 이어갔는데 포르투갈 디니스 왕의 지지를 받아 이름을 그리스도 기사단으로 바꾸며 세력을 더욱 든든하게 다졌다. 대항해 시대를 연 엔히케 항해왕자와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가 그리스도 기사단의 속해 있었으니 그야말로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정치와 권력 모두를 아우르며 기사단의 본거지로 사용된 그리스도 수도원은 1162년 건축됐다.

정치와 권력 모두를 아우르며 기사단의 본거지로 사용된 그리스도 수도원은 1162년 건축됐다.

 
마을 중심 광장에서 15분 정도 걸어 그리스도 수도원이 있는 언덕 꼭대기에 올라서니 마을 전체가 파노라마 풍경으로 펼쳐졌다. 정치와 권력 모두를 아우르며 기사단의 본거지로 사용된 그리스도 수도원은 1162년 건축됐다. 특히 초기에 지어진 성전은 이곳의 화룡점정이다. 예루살렘의 성묘교회를 본 따 지은 것으로 외형은 16각형으로 각을 잡았고 내부는 8각형으로 8개의 기둥 벽면 안팎으로 프레스코와 성화 그리고 금박으로 가득해 세상 모든 감탄사를 써도 모자랄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다.
 
여러 세기를 거치며 개축되면서 당연히 여러 가지 건축 양식이 가미됐다. 챕터 하우스의 거대한 창문에는 아칸서스 잎사귀와 아티초크, 미역, 상상의 동물을 포함한 생생한 문양들, 그리고 이 모두를 하나로 잇는 밧줄은 16세기 초 마누엘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고 또 봐도 경이로울 뿐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도원을 천천히 돌며 꼼꼼하게 설명해주던 가이드 베르나드로는 만약 2023년 7월에 포르투갈을 여행 중이라면 반드시 토마르를 방문해야 한다고 귀띔해준다. 쟁반 위에 어마무시한 높이의 꽃과 빵을 쌓아 올리고 마을을 행진하는 엄청난 규모의 트레이 축제가 4년에 한 번씩 7월 첫째 주에 열리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축제로 포르투갈의 중요한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토마르에 다시 와야 할 여러 가지 이유에 한 가지가 더 늘어난 셈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인 마르바오.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의 독립 전쟁이 벌어질 때까지 ‘전국에서 가장 정복 할 수 없는 요새’로 여겨졌다.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인 마르바오.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의 독립 전쟁이 벌어질 때까지 ‘전국에서 가장 정복 할 수 없는 요새’로 여겨졌다.

할아버지와 강아지가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모습마저 역사책 속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듯 하다.

할아버지와 강아지가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모습마저 역사책 속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듯 하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안개가 자욱한 날 마르바오 성에 올라 한참을 말을 잃고 바라봤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안개가 자욱한 날 마르바오 성에 올라 한참을 말을 잃고 바라봤다.

 
토마르에서 스페인 국경 방향으로 차로 한시간 반 거리에는 마르바오가 있다. 뉴욕 타임즈가 발간한 책 ‘죽기 전에 가야할 곳 1000’에 이름이 올라와 있고 노벨상 수상 작가 호세 사라 마고가 마르바오 성 위에 서면 세상이 얼마나 위대한 지 알 수 있다고 말한 걸 알지 못했더라도, 마르바오에 가면 누구라도 벅찬 감동이 쓰나미 처럼 밀려올 것임에 틀림없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안개가 자욱한 날 마르바오 성에 올라 우산마저 내려 놓은 채 한참을 말을 잃고 바라봤던 그 날의 나처럼 말이다.
 
화강암 절벽에 세워진, 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인 마르바오는 900미터 높이의 언덕에 숨겨져 있는 독수리의 둥지로 묘사되어 있다. 지리적으로 북쪽, 남쪽 및 서쪽으로 가파른 경사의 자연 전략적 방어 지점으로 1160년 기독교인들에 의해 정복 된 이래 1640년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이의 독립 전쟁이 벌어 질 때까지 ‘전국에서 가장 정복 할 수 없는 요새’로 여겨졌다.
 
가파른 성에 올라 가면 알렌테주 지역의 광대한 평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13세기에 만들어진 중세시대 성벽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건재한 모습으로 세월의 무게와 깊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성벽 안 마을로 들어가면 관광객 외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인지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좁은 골목길, 거친 돌바닥 그리고 고딕 양식의 아치와 꽃 장식 데크의 섬세한 연철 발코니가 있는 하얀색 집들 사이로 마을 할아버지와 강아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책을 즐기는 모습 마저 역사책 속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듯 하다.
 
아쉽게도 나를 두근거리게 했던 엽서 속 풍경(화강암에 반사된 햇살이 만들어 낸 특이한 석양의 색감)을 볼 순 없었지만 하루 종일 비가 내려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온 마르바오의 사진들을 떠나온 지금도 자꾸만 꺼내 보게 만드는 오묘한 힘이 있다.
 
콘텐트 크리에이터·여행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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