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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된 게으름뱅이 vs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기자
권도영 사진 권도영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47)

 
사후 49일 동안 7개(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해야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 [사진 신과함께]

사후 49일 동안 7개(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의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해야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 [사진 신과함께]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죄악에도 목록이 있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사상을 기반으로 해 일곱 가지 원죄의 목록이 있고, 우리에게는 영화 ‘신과 함께’에서 보듯이 저승에 가 심판 받아야 할 일곱 지옥 목록이 있다. 그 중 나태지옥은 커다란 연자방아 같은 게 굴러가는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쉼 없이 뛰어야 하는 인간군상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 장면에서 괜히 뜨끔한 관객도 많았을 것이다. 평생 게을렀던 죄로 저승에 가서 저렇게 하염없이 뛰어야 하다니, 그러다 사람들에게 밀려 물속에 빠져 버리는 장면은 센 체감 강도를 전했을 것 같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전통적인 저승관에는 딱히 ‘나태지옥’이라 할 만한 곳은 없다. 저승은 열 명의 왕이 각각 다스리는 열 개의 지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벌하는 죄목에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지 않았다거나, 친구의 신의를 저버렸다거나, 남의 재물이나 배우자를 탐했다거나, 음해·모함·주색도박· 시비송사 등이 거론된다. 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가족과 이웃에게 해를 끼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반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 원죄에는 오만·질투·분노·나태·탐욕·폭식·정욕이 있다. 이 일곱 가지 원죄는 영화 ‘세븐(Seven)’의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 연쇄살인범이 이 일곱 가지 원죄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목해 살인을 저지르는데, 형사들이 그 현장에 남겨진 단서를 좇아 살인범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벌써 이십여 년 전에 개봉한 작품이지만 지금 보아도 그 질리도록 그로테스크한 화면에 짓눌려 버린다. 
 
연쇄살인범이 이 일곱 가지 원죄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목해 살인을 저지르는데, 형사들이 그 현장에 남겨진 단서를 좇아 살인범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진 세븐]

연쇄살인범이 이 일곱 가지 원죄에 해당하는 이들을 지목해 살인을 저지르는데, 형사들이 그 현장에 남겨진 단서를 좇아 살인범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사진 세븐]

 
그중에서도 ‘나태’를 지목한 범죄 현장은 마약유통업자를 침대에 묶은 채 1년 동안 방치한 것인데, 정당한 방법으로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이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러한 서사에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끔찍한 벌을 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사유가 담겨 있다. 우리 옛이야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게으름뱅이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소가 된 게으름뱅이’가 아닐까 싶다.
 
한 게을러빠진 남자가 부인 구박에 못 이겨 집을 나갔다가 한 노인이 소 머리에 씌우는 망태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게 무엇이냐 물었더니 이것만 있으면 평생 편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하기에 그걸 꼭 갖고 싶다고 했다. 노인이 냉큼 남자에게 망태를 씌웠는데 남자는 바로 소가 되었고, 노인은 그 소를 시장에 끌고 가서 팔아버렸다. 다만 소를 산 사람에게 무밭 곁에는 묶어두지 말라고 당부했다. 소가 된 남자는 소죽도 잘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하루종일 매를 맞아가며 죽을 듯이 일만 했다. 그러다 말도 잘 안 듣는 소를 부리며 일하느라 지친 주인이 소를 아무데나 대충 매놓고는 집에 쉬러 들어간 사이에 무를 발견하곤 허겁지겁 빼먹었다. 그 순간 소가죽이 벗겨지고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고, 이 남자는 그길로 새롭게 맘을 고쳐 먹고 열심히 일하면서 부인과함께 잘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사람은 그나마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가 호되게 혼이 난 뒤로는 정신차리고 잘 살았지만, 좀 더 심한 게으름뱅이가 있다. 이 인물은 제 손으로 밥 차려먹을 줄도 몰라 일 나가던 엄마가 뺨에 밥풀을 붙여 주고 갔는데 기어이 굶어죽었다. 혀로 입 주변의 밥풀을 떼어먹다가 그마저도 다 떨어지자 더이상 먹지 못해 죽은 것이다. 이런 게으름뱅이를 일러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서 똥 누는 놈’이라고 흔히 표현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죄가 되는 것은 노동을 통한 생산이 최고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를 건너온 어느 때인가부터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면서 한번 사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사진 pixabay]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죄가 되는 것은 노동을 통한 생산이 최고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를 건너온 어느 때인가부터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면서 한번 사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사진 pixabay]

 
나태, 즉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이 죄가 되는 것은 노동을 통한 생산이 최고 가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든 공장에서 일을 하든, 제때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당장 생계에도 문제가 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므로 게으름 부리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인류를 지배해 왔다.
 
그러나 21세기를 건너온 어느 때인가부터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면서 한 번 사는 인생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느리게 살자고 하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고 하면서 천천히 걸어보자고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시와 취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렇게 살다간 큰일 날 것 같아 자신의 게으름 앞에 죄책감으로 무릎 꿇는 청춘들이 있다.
 
일곱 가지 원죄와 나태 지옥으로 표현된 ‘소가 된 게으름뱅이’의 서사는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노동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세상이니 나태의 패러다임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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