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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수상작

<장원>

느루
-김현장
 
노을빛 짙은 갈대숲 지나는 바람 무리
그대 종종걸음 서둘지 마세요
갯벌 속 계절의 향기가 숨어들고 있어요
꽃구름 슈크림처럼 넌출 거리며 오고 있네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강바닥 느린 유속으로 가없이 흐르기로 해요
거꾸로 매달린 종유석이 자라나고
갓 베인 시간들은 논바닥에 쓰러져
늦가을 햇살 바람을 온몸으로 즐기네요
 
◆김현장
김현장

김현장

1964년 전남 강진 출생. 전남대학교 수의학과 졸업, 강진 백제동물병원장, 경기대학교 한류문화대학원 시조창작 전공 석사 재학 중. 강진 백련 문학회원

 
 
 
 
 

<차상>

꽁치의 활극
-최종천
 
칼을 거꾸로 잡고서
견디는 바다가 있다
 
검거나 푸른 무대
소금색은 빛난다
 
짠 것은 힘이 강하다
아! 살거나, 죽거나
 

<차하>

결과지結果枝
-권선애 
 
가지에 달린 꽃눈이 이듬해를 바라본다
겨울을 이겨내고 꽃피려다 쇠락한 몸
준비된 줄기가 없어 새봄이 아득하다
 
손에 잡힌 겨드랑 눈 악성으로 번질 때
늘어난 가지 사이로 파고드는 칼바람
한쪽을 잘라버려도 꽃 피울 수 있을까
 
반값에 사놓았던 철 지난 꽃무늬 옷
옷걸이에 매달려 웃는 계절 기다린다
아직은 개화를 위해 견뎌야 할 헛가지
 
 

이달의 심사평

가을의 끝자락에서 오래된 이름들을 만나 반가웠다. 풍성한 결실을 위해 새로운 얼굴들의 응모를 기대했던 여운이 자못 아쉽다. 다가올 겨울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예비된 계절이다.
 
장원으로 아픈 기억의 우리말을 느림의 미학으로 재현한 김현장의 ‘느루’를 올린다. “그대 종종걸음 서둘지 마세요”로 시작되는 청유형의 말부림으로 애달픈 생민의 삶을 노래로 승화시켰다. 평이하고 눈에 익숙한 문장도 다시 읽으면 감미롭다. “갓 베인 시간들은 논바닥에 쓰러져”와 같은 표현들의 언어적 감각과 전개로 조탁 능력이 돋보인다. 흩어진 정적인 심상을 일관성 있게 엮었으면.
 
차상으로는 최종천의 ‘꽁치의 활극’을 선한다. “카를 거꾸로 잡”은 초장의 도발적 문장이 비장한 세태를 은유하고 있다. 이것이 종장의 “아! 살거나, 죽거나” 맞장구쳐 절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차하로는 권선애의 ‘결과지(結果枝)’를 택한다. 역시 눈이 보배다. 일상에서 바라본 “꽃눈”이 자아성찰로 승화해 꽃을 피웠다. 긴 호흡은 숙성된 반전이 필요충분조건이다. 언어에도 빛깔과 질감이 있다. 빼놓을 수 없이 리듬과 춤사위를 갖춘 것이 시조다. 하나를 놓치면 자칫 미완이다.
 
심사위원=최영효·김삼환(대표집필 최영효)
 

<초대시조> 

빈 젖병
-신필영
 
전깃줄에 올망졸망 모여 앉은 참새 떼처럼
병꽃나무 가지 위에 분홍 병들 걸려있다
속까지 비쳐 보일 듯
기울이면 향내 날 듯
 
"천사의 집" 분통 방에도 햇살은 건너와서
어미 혼자 낳아놓은 참새만한 어린것들
세상 일 눈도 못 뜬 채
물고 있다 젖병, 젖병
 
* 천사의 집: 미혼모들의 출산과 입양을 주선해주는 집.
 
◆신필영
신필영

신필영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조집 『지귀의 낮잠』 『누님동행』『둥근 집』 등. 이호우시조문학상, 오늘의시조문학상, 노산시조문학상 등 수상.

 
 
 
 
 
전깃줄에 올망졸망 모여 앉아서 뭐라 뭐라 조잘대는 참새 떼들은 정말 귀엽다. 병꽃나무 가지 위에 걸려 있는 분홍 병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소꿉장난 하고 있는 분홍색 병꽃들도 정말 귀엽다. 아무 상관도 없던 참새 떼와 병꽃들이 ‘귀엽다’라는 속성이 매개가 되어 돌연 의미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순간이다. 그 병꽃들은 속까지도 죄다 비쳐 보일 듯이 환하기만 하다. 기울이면 바로 그 병 속에서 은은한 향기가 쏟아질 것 같다. 환한 향기를 풍기면서도 그것이 향긴 줄도 모르는 병꽃, 정말 천사 같은 병꽃이다.
 
‘천사의 집’이라니, 정말 천사들이 살고 있을까? 그래 맞다, ‘천사의 집’에는 천사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미혼모들이 아비 없이 낳은 천사들이다. 태어나는 것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불행으로 인식되는 천사들이다. 부모님의 품에 따뜻하게 안기지 못하고, 누군가의 낯선 품에 어색하게 안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천사들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 천사들은 전깃줄에 올망졸망 모여 앉은 참새 떼처럼 작고 귀엽다. 앞으로 전개될 험한 세상 따위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천사들이, 향긴 줄도 모르면서 향기를 쏟아내는 병꽃 같은 젖병들을 물고 있다. 아무리 햇살이 가득 차 있어도 결핍이 너무 많은 ‘빈 젖병’이다. 참 애틋하고도 안타깝다.
 
“가끔, 소는 목을 돌려/ 제 꼬리에 입 맞춘다// 꼬리 또한 마침맞게/ 입을 슬쩍 쓸어준다// 너 있어/ 내가 산다며/ 서로에게 경배하듯” 신필영 시인의 『소』다. 소가 제 꼬리에 입을 맞출 때, 꼬리도 마침맞게 입을 슬쩍 쓸어주듯, 우리 사회가 이 천사들에게 지극한 경배를 해야 할 것 같다. 덕분에 천사들도 잘 자라서 화답의 경배를 할 수 있도록.
 
이종문 시조시인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우편(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또는 e메일(won.minji@joongang.co.kr)로 접수할 수 있습니다. 02-751-5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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