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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친구 부르고 노래 듣고…휴대폰이 다 해주는 세상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16)

88올림픽이 끝나고 서울에 올라와 바로 자영업을 시작했다. 공장 한쪽을 막아 가까이 아이들을 두고 밤낮으로 일하던 시절이었다. 어린아이들이지만 일터 가까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전화기로 밥 챙겨 먹기, 숙제하기, 씻기, 누나랑 먼저 잠자기 등 얼굴만 안 보일 뿐이지 거의 같이 있다는 느낌으로 수화기에 지시를 내려주면 “네, 엄마”라는 목소리에 힘이 났다.
 
서울 올라온 그해, 아들은 다섯 살이었다. 어느 날, 일터에서 지친 몸을 끌고 방에 들어오니 유선전화기가 덜렁거리며 분해가 되어 있었다. 선도 가위로 싹둑 잘라놓았다. 너무 놀라 도둑이 들어왔나 싶어 가슴이 벌렁거리며 아이들을 살피니 별일 없는 듯 한쪽에서 딴 짓거리를 하다가 달려와 폭 안겼다. 나사가 다 빠져 덜렁거리는 전화기를 들고 뭔 일이냐고 푸념하듯 물으니 내 품에 안긴 아들이 천진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그 안에 숨어서 숨바꼭질만 하고 안 나오니 누나랑 내가 찾았는데 없었어.”
 
그날 아이들을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일을 하다가도 몇 번이나 아이들에게 얼굴을 보여주러 집을 다녀오곤 했다.
 
전화기로 밥 챙겨먹기, 숙제하기, 씻기, 누나랑 먼저 잠자기 등등 얼굴만 안보일 뿐이지 거의 같이 있다는 느낌으로 수화기에 지시를 내려주면 '네~~엄마'라는 목소리에 힘이 났다. [사진 pixabay]

전화기로 밥 챙겨먹기, 숙제하기, 씻기, 누나랑 먼저 잠자기 등등 얼굴만 안보일 뿐이지 거의 같이 있다는 느낌으로 수화기에 지시를 내려주면 '네~~엄마'라는 목소리에 힘이 났다. [사진 pixabay]

 
세월이 흘러 이제는 휴대폰이 사람 얼굴을 직접 보는 것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고 싶고 그리운 감정은 예전 같지 않다. 세상의 끝과 끝에 살아도 아무 때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이젠 공해가 되어 문자로만 대화하는 묵언 대화가 일상화되었다.
 
언젠가 친구랑 긴 시간을 통화 하다가 끊으니 남편이 옆에서 TV를 보다 한마디 했다.
 
“오늘은 이야기가 중간에서 끝나노?”
 
나는 오래 통화한 것을 빈정대는 거라 생각하며 삐딱한 대화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남편이 하는 이야기는 달랐다.
 
“아니, 우리 마님이 편찮으신가 해서 말이야” 이러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남편을 타박하며 구시렁거렸다.
 
“아이고, 아줌마요. 들으라고 귀가 뚫렸는데 건넌방에 가서 통화하시지 시끄러운 방에서 굳이 통화하는 이유는 뭔교? 내 기분이 이러니 파악하고 임해라, 이거 아닌교? 저능아도 20번 넘게 읽고, 듣고 하면 그 문장의 핵심을 안다드라.”
 
그러면서 맨날 같은 스토리라 그까짓 거 외우진 못해도 초장, 중장, 종장의 마무리가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 대충은 알 수 있다나. 그날의 목소리 톤과 내용을 듣다 보면 그날 일진과 부인의 기분이 해가 떴는지 비가 왔는지 대충 안단다. 거기에 맞춰서 본인도 쉬는 시간인지 백기를 미리 들고 전투태세에 임할 시간인지 준비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불쌍한 중생이라며 농담을 했다.
 
 
그래도 부부 모임의 술자리에서 아내들의 전화 통화 이야기로 흉볼 때면 나의 변호사가 되어 아내 편을 들어주었다. 아내가 한나절씩 전화통을 붙잡고라도 다른 이와 수다를 떨면 건강한 것이니 감사하란다. 수다는 여성들의 활동이며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법의 하나란 것을 어느 책에 논문같이 나와 있다며 부인들을 추켜세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 같다. 찌뿌둥한 몸을 운동시키러 억지로 둑길을 나서는데 전화가 온다. 내 목소리만 듣고도 그날의 기분을 알아주는 지인이 있어 행복하다. 나올 땐 1㎞만 걷고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나선 길이 통화를 하며 걷다 보니 5㎞ 목적지가 금방이다. 돌아갈 길이 아득하지만 걱정 없다. 이참에 오래 알고 지낸 나훈아 오빠(ㅎ)의 목소리를 불러내 노래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내 집 마당에서 복실이가 큰 목소리로 컹컹 짖으며 반긴다. 한 번 본적이 없어도, 자주 보지 않아도, 늘 곁에 네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무인 세상, 참 희한하고 좋은 세상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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