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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로버트 포스터, 극장, 그리고 세상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포스터가 지난달 별세했다. 78세.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중 조용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점점 더 극장이 되어 가는 세상
사라져가는 진중함이라는 미덕
만년 조연이었던 배우를 보내며

‘로버트 포스터가 누구야?’ 하고 물으실 분도 계실 것 같다. 이름난 스타는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델타 포스’ ‘스페이스 캅’ 같은 고만고만한 영화에 100편 넘게 출연했다. 그러다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1997년도 영화 ‘재키 브라운’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왔는데, 여기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면서 뒤늦게 주목을 받았었다.
 
타란티노 감독이 흘러간 삼류 영화의 조연급 배우를 캐스팅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재키 브라운’은 옛 대중영화에 대한 찬사와 재해석을 담은 작품이다. 사람들이 우습게 여겼던 장르물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는데 우스워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벼이 여겼던 배우는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주연인 팸 그리어 역시 흑인 관객 대상의 B급 영화에 주로 나왔던, 1990년대에는 이미 추억이 된 스타였다.  
 
아쉽게도 팸 그리어와 로버트 포스터에게는 ‘재키 브라운’이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미국 영화계는 ‘이 배우들이 이렇게 대단하고 매력적이었어?’ 하며 놀라긴 했는데, 그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것 같았다. 그리어의 경우에는, 화려하고 카리스마 있는 중년 흑인 여성 배우를 위한 배역이 없었다. 할리우드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포스터의 경우는 보다 미묘하다. 그는 이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주류는 아닌 영화들에서 조역으로 경력을 이어갔다. 어쩌면 얼굴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잘생겼다. 헌데 이 배우에게는 대단히 정적이고 온후한 분위기가 있다. 차분하다고 해야 할지, 소박하다고 해야 할지, 하여튼 극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 남자를 보고 있으면 안젤리나 졸리나 브래드 피트를 볼 때와는 정반대의 기분이 든다. 너무나 안전해 보인다. 따분해 보이기까지 한다.
 
‘재키 브라운’에서 포스터가 돋보였던 이유도 그래서였다. 어떤 역을 맡건, 보는 이를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사뮤엘 잭슨과 로버트 드니로가 이 영화에서 악당을 연기했다. 각각 스타일은 달라도 도무지 예측이 안 되고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이는 냉혈한 캐릭터들이었다. 평범한 대사를 해도 폭력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그런 악역 앞에서 그리어는 불꽃을 튀며 빛났다.
 
반면 포스터는 시작부터 끝까지 조용하다. 겁을 먹지는 않지만 폼을 잡지도 않는다. 조금 슬퍼 보이고, 많이 외로워 보이고, 약간 어리둥절해 보이고, 꽤 어색하다. 성실하고 친절하지만 살짝 굼뜬 것 같고 지쳐 보인다. 그런데 활활 타오르는 인물들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스토리 속에서 그런 차분함이 느릿느릿 존재감을 얻는다. 영화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그가 주인공으로 느껴진다. 그게 타란티노의 계획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포스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부음 기사에서도 “‘재키 브라운’의 그 배우”로 소개됐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개성이 특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에선 눈에 안 띄는 사람이 오히려 눈에 띄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 151분 동안 관객이 차분히 그를 지켜봐야 했다.
 
‘재키 브라운’ 이후 20여년간 영화 속 인물들은 더 요란해졌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게 된 시대에 감독과 배우들은 관객이 10초라도 딴생각을 할까 봐 불안해한다. 주인공 친구로 나오는 단역도 촌철살인의 대사를 쏟아낸다. 배우들이 입을 다무는 순간에는 다른 볼거리가 화면을 채운다. 변신 로봇이든 미학적으로 잘 계산된 쓸쓸한 모텔 풍경이든.
 
지난 20여 년은 세상이 극장이 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제 우리 모두에게 관객이 있다. 우리는 영화감독처럼 우리의 일상을 편집해서 보여준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먼저 사진을 찍는다. 예쁘게 구도를 잡아서. 소셜미디어에 촌철살인의 문구를 올린다. 포스팅 타이밍을 계산해서. 사회 이슈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한다. 그래야 의미 있는 서사에 자신을 편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우처럼 관객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포스터의 실제 모습은 ‘재키 브라운’에 나온 것과 비슷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포스터는 “난 56살이오. 남 탓할 수 없소.”라고 말한다.  
 
이 역시 20여 년 사이에 사라진 태도다. 그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은 로빈 윌리엄스가 받았다. 그래도 포스터는 “모든 걸 다 이뤘다”고 말했다고 한다. 편히 잠드시기를.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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