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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국민의 신뢰를 스스로 걷어차는 정부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고(故) 김대중(DJ) 대통령 리더십의 빛나는 장면은 외환위기 극복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국가 중 한국만큼 드라마틱하게 위기를 기회로 만든 나라는 없다. 나라가 외환위기로 치닫던 당시 야당 지도자이자 대통령 후보였던 DJ 역시 외환위기 책임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당선 뒤 DJ는 달랐다. 그가 정리해고제 등 ‘IMF 플러스 개혁’에 나서기는커녕 IMF와의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밀어붙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국 경제는 국제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했을 것이다.  
 

위기극복은 상황인식이 출발점
경제지표 왜곡과 자화자찬으론
정책에 대한 국민신뢰 못 얻어

DJ의 위기 극복 사명감이 잘 드러난 순간은 1998년 1월 초 대통령 당선자 시절 국민과의 대화였다. 그는 “금고가 비었다”며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외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기업·노동자 모두의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
 
정리해고가 상징적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오랫동안 근로자를 위해왔지만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정리해고를) 지금 하지 않아 노동시장에 유연성이 없게 되면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일 길이 없게 된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국익을 위해 ‘내 편’의 자기희생을 설득하는 리더십은 개혁의 원동력이 됐고, 외환위기 돌파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0년 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이명박(MB)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한국은 금융위기에서 가장 빨리 일어선 나라 중 하나가 됐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MB는 ‘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다. 그러면서 정부에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가 “위기 때 중요한 것은 현금이다. 모든 채널을 통해 현금을 확보하라”였다. 그것이 필사적인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과 중국·일본과의 통화스와프 확대로 이어졌다. 둘째, 기업의 공격 경영. 그는 “위기 때 순위가 바뀐다. 수비만 해선 안 된다”며 적극적인 투자와 도전을 주문했고, 이에 대한 기업들의 호응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서소문 포럼 11/26

서소문 포럼 11/26

위기는 언제나 올 수 있다. 리더의 정확한 상황 인식과 진정성 담긴 소통, 그리고 국민의 신뢰. 이들의 결합은 어떤 위기든 이겨내게 하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두 전직 대통령 사례가 보여준다.
 
유감스럽게도 문재인 정부에서 유달리 미흡한 부분이 위기의식과 상황 진단이다. 금융위기 이래 최악의 성장 부진에도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를 고집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3분기 가계소득 통계에 대한 대통령의 평가도 그랬다. 이번 통계에선 소득 최하위 20% 계층인 1분위 소득이 4.3% 증가했고, 1분위와 5분위(최상위 20%) 간 소득 격차 완화가 나타났다.
 
하지만 통계는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전체 가구의 사업소득은 4.9% 감소했다. 2003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폭이다. 무너진 자영업자들은 하위 계층으로 밀려났다. 1분위와 2분위 사업소득은 각각 11.3%, 15.7% 늘었는데, 하위 계층에서 신규 자영업자가 늘었거나 자영업 벌이가 좋아진 것이 아니다. 통계청은 “내수가 어렵다 보니 고소득층 자영업자가 아래 분위로 이동했다”고 설명한다. 통계엔 중산층에 잔류하려고 안간힘을 쓰다 밀려난 자영업자들의 비명이 담겨있다. 최저임금 급등과 주52시간제로 대표되는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의 부작용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가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을 쓰러지게 하는 것이 ‘소주성’의 목표는 아닐 것이다. 많은 자영업자들은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다.
 
정부의 견강부회는 이뿐이 아니다. 경제의 허리 격인 30~40대 고용 부진에 대해 정부는 인구 구조 변화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페이스북에 “40대 인구는 201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까지 5년 연속 취업자 수가 감소해오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이는 왜곡에 가깝다. 10월에만 해도 40대는 인구가 12만1000명 줄었지만 취업자는 14만6000명 감소했다. 인구가 준 것보다 일자리가 더 줄어들었다. 지난해 6월 이후 두 차례를 빼곤 줄곧 이랬다.
 
언제부터인가 유리한 지표만 골라 자화자찬하는 것이 현 정부의 특색이 됐다. 기분은 좋아질지 모른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불황을 겪고 있는 국민들은 이제 정부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거두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가 성공한 경우는 없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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