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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신영균 "입술만 대는 줄 알았는데…윤인자 키스 지금도 아찔"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신영균과 윤인자. 윤인자는 1950~60년대 충무로를 이끌어간 개성파 여배우다. [사진 영화 캡처]

신상옥 감독의 ‘빨간 마후라’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신영균과 윤인자. 윤인자는 1950~60년대 충무로를 이끌어간 개성파 여배우다. [사진 영화 캡처]

‘빨간 마후라’(1964)를 생각하면 지금도 계면쩍은 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를 찍은 지 반세기 넘게 지났어도 그때를 떠올리면 설핏 웃음이 난다. ‘빨간 마후라’에서 나는 공군 조종사 나관중 소령으로, 윤인자씨는 나 소령을 짝사랑한 술집 마담으로 등장한다. 내가 출격을 앞두고 술을 마시면서 마치 죽음을 예감한 듯 괴로워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윤씨가 내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33)
<4> 원조 섹시스타 윤인자

‘빨간 마후라’ 대본엔 없던 키스신
윤씨 밤샘 촬영에 “이왕 하는 거…”
신상옥 “최은희는 연탄이나 갈아라”

“기운을 차려요. 나관중은 싸움을 하러 이 세상에 나왔어요. 당신에겐 철저한 보호자가 필요해요. (술잔을) 듭시다, 내가 각오를 했으니까.”
 
“내 보호자가 되겠단 말이지? 오케이. 언젠가 (네가) 조종사를 사랑하는 년은 미친년이라 그랬지. 너는 멋진 여자다.”
 
문제는 그다음 키스신이었다. 1960년대는 영화 검열이 심해서 배우들의 스킨십이 자유롭지 않았다. 키스신이라고 해봐야 입술을 맞붙이는 정도에 그쳤다. 그마저도 감독이 ‘컷’하면 서로 머쓱해서 눈도 안 마주치고 딴짓을 하던 시절이다.
 
윤씨는 달랐다. 나는 그냥 흉내만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입 안으로 그의 혓바닥이 쑥 들어왔다. 내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는 바람에 결국 NG가 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윤인자씨가 갑자기 장난을 치는 바람에…”
 
신상옥 감독이 화를 낼 줄 알았더니 ‘컷’도 안 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부인 최은희씨를 부르더니 “최 여사, 당신은 집에 가서 연탄이나 갈지? 영화배우 하지 말고…”라며 무안을 줬다. 키스 연기에선 윤씨가 최씨보다 한 수 위라는 얘기였다.
  

윤씨, 한국영화사 첫 키스신·누드신 기록  

 
사실 윤씨와 내 키스신은 애초 대본에 없었다. 최은희씨와 최무룡씨의 키스신 촬영이 맘에 들게 안 나오니까 신 감독이 갑자기 집어넣은 장면이다. 처음에는 버티던 윤씨도 스태프들이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걸 보고 마음을 돌렸다.
 
윤씨는 “이왕 하는 거 화끈하게 한번 보여주자 생각했다”는데 난 영문도 모르고 당한 격이 됐다. 키스신에서 내가 NG를 낸 게 재밌었는지 윤씨는 종종 놀려댔다. “신영균씨가 원래 거칠었는데 입 한번 맞춰줬더니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며 나긋나긋해졌다”는 식으로 말이다.
 
‘빨간 마후라’에서 사랑을 맺어가는 최무룡과 최은희. 최무룡은 선배 조종사(남궁원)의 미망인인 최은희를 보살피다 사랑에 빠진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빨간 마후라’에서 사랑을 맺어가는 최무룡과 최은희. 최무룡은 선배 조종사(남궁원)의 미망인인 최은희를 보살피다 사랑에 빠진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윤씨는 성격이 활달했다. 한국 영화사 최초의 키스신과 누드신 기록도 남겼다.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에서 술집 마담이자 간첩인 윤씨가 국군 대위 이향에게 입술을 허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키스신이라고 해봐야 입술에 셀로판지를 붙인 채 한 5초 정도 맞댄 게 전부였지만 ‘드디어 한국영화에도 키스신 등장하다!’란 제목의 기사들이 대서특필됐다.
 
또 ‘전후파’(1957)에서는 미모의 호스티스인 윤씨가 목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깨선과 가슴골이 노출된 정도였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그 여자의 일생’(1957)에서는 좀더 과감한 상반신 노출을 시도했다. 이때부터 윤씨에게는 ‘원조 섹시스타’ ‘육체파 배우’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당시 러브신 땐 천둥번개 치며 땅 흔들려

 
윤인자와 최은희.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윤인자와 최은희.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그에 비하면 배우 초창기 시절의 나는 남녀 간 사랑표현이 어쩐지 어색했던 것 같다. ‘과부’(1960) ‘연산군’(1961) ‘열녀문’(1962) 등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주로 머슴이나 임금 같은 ‘상남자’였다. 레슬링으로 다진 당당한 체구 때문인지 사극이나 전쟁영화가 잘 맞았다.
 
반면 세밀한 감정 표현이 필요한 ‘러브신’ 장면에선 배워야 할 게 많았다. 연기하는 순간만이라도 상대 배우에게 사랑에 빠졌다면 좀 쉬웠을지 모르겠다. ‘외나무 다리’(1962)에서 주연한 김지미와 최무룡의 러브신이 실감 난다는 평가가 있는데 그때 두 사람은 열애 중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나는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여배우들이 물론 아름다웠지만 스크린 속의 애인과 와이프 정도로 생각했다. 치과의사를 관두고 영화계에 뛰어들면서 아내에게 “절대 한눈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내는 지금도 그 약속을 지켜줬다고 고마워하고 있다. 윤씨와의 키스신 일화를 나중에 들려주었더니 “내가 그것도 이해 못 하면서 배우 와이프를 하겠느냐”고 웃어넘겼다.
원로배우 신영균(91ㆍ왼쪽)씨가 1989년 KBS '쟈니윤 쇼'에 출연해 배우 윤인자씨와의 '빨간 마후라' 키스신 뒷얘기를 털어놓고 있다. 왼쪽부터 신영균, 최은희, 최무룡씨. [유튜브 캡처]

원로배우 신영균(91ㆍ왼쪽)씨가 1989년 KBS '쟈니윤 쇼'에 출연해 배우 윤인자씨와의 '빨간 마후라' 키스신 뒷얘기를 털어놓고 있다. 왼쪽부터 신영균, 최은희, 최무룡씨. [유튜브 캡처]

 
1989년 KBS 인기 토크쇼 ‘쟈니윤 쇼’에 출연해 ‘빨간 마후라’ 키스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 적이 있다. 스튜디오에 폭소가 터졌다. 같이 출연한 최은희씨는 옆에서 숨넘어갈 듯 깔깔댔고, 최무룡씨는 “솔직히 윤인자씨랑 연애했던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겠지만 그 당시엔 키스신 하나도 이렇게 화젯거리였다. 남녀 정사(情事) 장면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밭을 가는 소의 울음소리로 표현한다든지 천둥 번개가 치며 땅이 흔들리는 모습을 비추는 식이었다.
 
한국 영화 100년사를 돌아보면서 새삼 격세지감을 느낀다. 키스신, 누드신, 베드신이 터부시되는 게 아니라 엄연한 예술의 영역으로 존중받게 됐으니 말이다. 윤인자씨 같은 ‘센 언니’들이 하나씩 금기를 깨고 버팀목 역할을 해 준 덕이라는 걸 후배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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