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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물에 가서 더 좋았다, 여유있게 즐긴 내장산 단풍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57)

드디어 말로만 듣던 내장산 단풍을 보았다. 어째서 '진해 벚꽃'과 '내장산 단풍'은 평생토록 귀에 익숙할까? 어른들의 대표적인 계절 관광지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기 때문일까? 이러다가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여수는 밤바다”를 입에 달고 살지도 모르겠다.
 
방송에서는 11월 초가 내장산 단풍이 절정일 거라 했는데 그때 다녀온 사람들은 아직 아니라고 했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봄옷 전시하는 패션샵처럼 방송에서 말하는 ‘절정’도 한참 앞서간다. 단풍, 벚꽃, 전어, 주꾸미… 방송 보고 축제현장에 찾아가면 절정의 기대감에 이른 상인들만 보다 온다.
 
어려서부터 ‘내장산 단풍’과 ‘진해 벚꽃’ 좋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청년 시절에는 벚꽃을 보면서 연애감정 같은 화려함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면, 중년 이후에는 단풍을 보며 차분하고 담담한 삶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된다. [사진 박헌정]

어려서부터 ‘내장산 단풍’과 ‘진해 벚꽃’ 좋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청년 시절에는 벚꽃을 보면서 연애감정 같은 화려함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면, 중년 이후에는 단풍을 보며 차분하고 담담한 삶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된다. [사진 박헌정]

 
게으른 사람이 승자다. 오늘은 11월 12일, 내일부터 비 오고 추워진다니 더 미룰 수 없다. 역시 단풍이 더 짙어졌고 많은 사람이 이미 다녀갔는지 인파가 붐비지 않아 적당히 즐기고 오기 좋았다. 단풍이 완전히 들지 않았는데 한쪽에선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자니 ‘자연이나 인간에게 절정이 뭘까?’ 하는 철학적인 생각도 든다.
 
내가 사는 전주에서도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면 단풍 볼 곳은 많다. 그런데 역시 명불허전일까, 이쪽 단풍나무가 훨씬 고운 것 같았다. 단풍 이야기가 나오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곳이 설악산과 내장산이다. 동시에 두 곳에 가볼 수 없고 또 매년 단풍 상태가 다르니 어디가 더 예쁜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돌길 많고 오르기 힘든 설악산에 비해 내장산은 낮은 곳에 아담하게 들어앉아 일단 접근이 쉽다.
 
그래서인지 역시 중장년과 노년층, 단체관광,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았다. 울긋불긋한 단풍, 거기에 잘 어울리는 등산복, 대목 장사를 어느 정도 끝낸 상인들의 여유로운 표정… 전체적으로 평화롭고 편안한 느낌이다. 다이어리에 미리 적어두어야겠다. "내장산 단풍은 11월 중순!"
 
형형색색 물든 단풍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내장산 단풍여행은 중장년층의 취향에 더 잘 어울린다. 계절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수성은 나이 들수록 더 깊어진다.

형형색색 물든 단풍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내장산 단풍여행은 중장년층의 취향에 더 잘 어울린다. 계절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수성은 나이 들수록 더 깊어진다.

 
전에 사무실에서 누가 내장산 단풍을 보고 왔다고 하니 사람들 반응은 “그 고생스러운 곳에 왜 갔어?”였다. 진해 벚꽃여행을 이야기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게 유명한 곳은 직장인들로서는 섣불리 시도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주말에 겨우 시간 내서 찾아갔다가 붐비는 인파로 엄청나게 고생한 경험 때문에 ‘가봐야 후회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박혀있다. “주말나들이-인파-정체-고생-후회”가 한 묶음의 말이다.
 
실제로 한 해산물 축제에 갔을 때 사람이 너무 밀려 몇 분 동안 꼼짝 못 하고 서 있었고, 양쪽 좌판은 보이지도 않았다. 정말 ‘저것이 1인당 한 마리씩은 돌아갈까?’ 싶을 만큼 사람이 많았다.
 
단풍 앞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모델이 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스마트폰 하나로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오후다.

단풍 앞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모델이 되고픈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스마트폰 하나로도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오후다.

단풍 든 호젓한 숲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기면 힐링이 될법하다. 다만 유명한 곳은 주말이나 단풍 절정기에는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아쉽다. 집 근처의 야트막한 산이라도 찾아가볼 만하다.

단풍 든 호젓한 숲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즐기면 힐링이 될법하다. 다만 유명한 곳은 주말이나 단풍 절정기에는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 아쉽다. 집 근처의 야트막한 산이라도 찾아가볼 만하다.

 
그런데 이제 퇴직 후 자유의 몸이다. 주말 혼잡을 피해 그동안 너무 유명해서 가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곳을 찾아가 보자! 새해 첫날 정동진 해돋이, 봄에는 진해 벚꽃, 여름에는 해운대 해수욕장… 또 뭐가 있더라?
 
과연 얼마나 대단한 곳일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 가 볼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붐비는 시간에 ‘고생 체험’ 대열에 합류하려는 것은 아니다. 주중, 새벽, 비 오는 날, 끝물… 언제라도 좋다.
 
내장산 단풍구경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단풍철 막바지, 주중의 쌀쌀한 날씨, 전주 출발 등 일반적인 여건은 아니었기에 별로 고생하지 않았는데, 인터넷에서 다녀온 사람들 반응을 보니 단풍에 대한 실망감은 거의 없었지만 호객행위, 바가지, 고성방가 같은 것에 대한 불만은 간간이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사람마다 기대하는 수준이 다른지, 내 눈에는 충분한 편의시설, 크게 무리 없는 음식값, 열심히 현장을 정리하는 주민과 관계자 등 좋은 것만 보였다.
 
유명관광지나 한철 이벤트의 문제는 대부분 ‘과도한 인원’이다. 주차장, 매표소, 화장실… 곳곳에서 기다리다 보면 몸은 힘들고,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아이는 지쳐 칭얼댄다. 이런 방문객의 고통을 외면하고 편의시설 확충이나 질서유지에는 무관심한 채 돈만 벌려는 행사장도 있고, ‘나만’ 생각하는 얌체족도 간간이 보인다. 이렇게 많은 인내가 필요하니 사무실 동료들은 월요일마다 주말 여행지를 놓고 “거기 뭐하러 갔어?” 할만하다.
 
어쩌겠는가.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하고 짜증 내봐야 나만 손해,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양보할 수밖에 없다. 노점상이 싫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축제 분위기를 느끼고 필요한 물건을 살 기회가 될 테고, 숲속 앰프 소리도 누군가에겐 즐거운 버스킹일 수 있듯이. 축제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 말이다.
 

단풍 막바지의 주중이라 산 입구 주차장과 상가 등이 덜 붐볐지만 바쁜 시간 쪼개 주말에 온 방문객들은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편의시설이 무한정 확장될 수도 없을 테니 힘들더라도 조금씩 참고 양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어떤 때는 뭔가 어설픈 것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주최 측 입장이나 한계보다는 ‘이런 것은 이렇게 해야지’하는 생각이 앞선다. ‘손님’의 안목이 더 높은 건데, 대도시에서 높아진 눈높이를 인구 몇만의 지자체 행사에 적용해봐야 본인만 답답하다. 모처럼 좋은 마음으로 멀리까지 왔으니 넉넉한 마음으로 즐기면 어떨까.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 있다면 내장산은 아직 가볼 만 한 곳이었다. 나처럼 한산한 때를 골라서 가면 더 좋을 것이다. 주말 외에는 시간을 내기 힘들다면? 조금 더 기다리면 된다. 내장산 단풍이나 진해 벚꽃은 없어지지 않으니까.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시간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은 예상보다 빨리 다가올 것이니까.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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