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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이 양반' 인생 삼모작…10년 공부해 감정평가사 합격

제30회 감정평가사에 최종합격한 김기수(54)씨는 "50대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희망을 잃지 말자"고 말했다. 사진은 김씨의 합격증 [김기수씨 제공]

제30회 감정평가사에 최종합격한 김기수(54)씨는 "50대도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다. 희망을 잃지 말자"고 말했다. 사진은 김씨의 합격증 [김기수씨 제공]

“인생 60살부터라는 말도 있지 않나, 50대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

 
올해 54살인 김기수(서울 신림동) 씨는 10년간 공부 끝에 지난 9월 제30회 감정평가가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그는 “경제적인 문제나 다른 이유로 삶의 무력감을 느끼는 50대가 참 많다”며 “우리 50대도 얼마든지 더 나은 길로 갈 수 있고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감정평가사는 토지, 부동산 등의 가치를 감정하는 전문가다. 매년 발표되는 공시지가를 비롯해 저작권·산업재산권·어업권·광업권, 자동차·건설기계·선박·항공기 등 관계 법령에 따라 등기하거나 등록하는 재산, 유가증권 등도 평가할 수 있다. 
감정평가사는 토지, 부동산 등의 가치를 감정하는 전문가다. 매년 발표되는 공시지가를 비롯해 저작권·산업재산권·어업권·광업권, 자동차·건설기계·선박·항공기 등 관계 법령에 따라 등기하거나 등록하는 재산, 유가증권 등도 평가할 수 있다. [중앙포토]

감정평가사는 토지, 부동산 등의 가치를 감정하는 전문가다. 매년 발표되는 공시지가를 비롯해 저작권·산업재산권·어업권·광업권, 자동차·건설기계·선박·항공기 등 관계 법령에 따라 등기하거나 등록하는 재산, 유가증권 등도 평가할 수 있다. [중앙포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감정평가사 시험에 최종합격해야 한다. 1차, 2차의 시험에 모두 합격해야 하는데 특별한 범위가 없는 2차 시험의 난도가 높아 ‘부동산 고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올해는 1512명 시험 신청해서 1204명이 응시했고 이 중 181명만이 합격했다. 50대 이상 합격자는 단 8명(50대 6명, 60대 이상은 2명)뿐이다. 
 

사업 두 번 망했지만 “인생 삼세판” 

김씨는 감정평가사 합격을 ‘인생 삼세판’이라고 했다. 수송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그는 전역한 뒤 덤프트럭을 운전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건축폐기물 처리 관련 회사를 차렸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다. 결국 김씨는 회사를 접고 2년간 공부한 뒤 증권사에 취직했다. 
 
직장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2002년 다니던 회사가 다른 회사와 합치면서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김씨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이후 건설업 관련 사업을 다시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망했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경상북도에서 소위 ‘노가다’ 일을 했다. 그는 “5년간 경상북도를 지나는 고속도로 만들 때마다 다 쫓아다닌 것 같다”고 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I외환위기 여파에 돈을 모아 결혼하겠다는 일상의 꿈마저 멀어졌다. 김씨는 “몸이 힘든 건 물론이고 매일 무시 당하다 보니 마음도 많이 다쳤다”고 했다. 이어 “건설 현장에서는 나이 상관없이 이름도 없이 그냥 ‘이 양반아’ ‘저 양반아’라고 불리며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계약자가 주택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다. [중앙포토]

부동산 계약자가 주택임대차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다. [중앙포토]

 
김씨는 어느 날 문득 “‘남은 인생은 이렇게 살 수 없다. 공부하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2009년 그는 그 길로 ‘노가다’ 일을 모두 접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생활도 녹녹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온종일 공부하고 싶었지만 일상을 유지하며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다. 끼니마다 배고픔은 꼬박꼬박 찾아왔고 이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했다. 

 

합격하자마자 어머니께 전화, 어머니 "장하다"

주말 이틀은 종일 대리(발렛)주차 일을 하고 평일에는 일이 있을 때만 출근했다. 그렇게 일하면 한 달에 100만원이 들어왔다. 그는 “고시원 월세 22만원, 독서실비 10만원, 단과 학원 수강비 내고 밥만 먹어도 1000원도 남기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꿈 하나 믿고 10년의 수험생활을 버텼다고 한다.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잘살고 있는 지인들 보면서 “나도 반드시 시험 합격하겠다”는 전의를 불태웠다. 
 
가족의 든든한 응원도 큰 힘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맨 처음 합격 소식을 알았을 때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88세 노모는 늘 “내가 돈이 없어 공부하는 널 도와주질 못한다”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그는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가 흐느끼며 ‘장하다 장하다’는 말만 반복하셨다”고 기억했다. 
 
이어 “직업에 귀천 없다는 소리도 있지만, 막상 사회생활하다 보면 차별을 당할 때가 많다”며 “미래 길다. 취업 준비에 좌절한 20대나 늦었다고 생각하는 50대 모두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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