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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벽에 24시간 매달렸다···죽음 문턱서 찍은 인간의 한계

클라이머 위에 한 여자가 있다. 설악산 적벽 70m에서 길이 1m, 직경 0.9㎝의 확보줄에 자신의 몸을, 아니 명(命)을 걸고 있다. 산은 그녀의 생명이고 사진은 그녀의 운명이다. 렌즈는 먼발치에서 클라이머의 몸짓을 겨눈다. 조리개가 돌아가며 클라이머의 눈빛 넘어 혼까지 낚는다. 적벽의 붉은 기운은 웅장하게 상에 맺힌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여성 암벽 사진작가인 강레아씨가 설악산 적벽에서 촬영 후 하강하고 있다. 이 사진 중간 아래에 보이는 비선대 산장은 지금 철거되고 없다. [사진 강레아]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여성 암벽 사진작가인 강레아씨가 설악산 적벽에서 촬영 후 하강하고 있다. 이 사진 중간 아래에 보이는 비선대 산장은 지금 철거되고 없다. [사진 강레아]

 

강레아(51)씨는 우리나라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암벽 사진작가다. 2000년부터 카메라를 메고 가파름에 매달렸다. 자연에서 기꺼이 한계에 다가서고 부딪히는 사람들의 몸짓과 눈빛을, 처절과 환희를 기록했다.
 
강 작가의 렌즈에 각인된 클라이머들은 0과 1의 숫자로 바뀌어 흑과 백으로 새겨진다. 그의 모든 작품은 흑백이다. 사진은 한지 위에 수많은 점의 집합으로 다시 태어나 전시된다. 톱 클라이머 김자인·박희용·사솔·이명희…. 그들은 생과 사, 흑과 백의 경계선을 넘나든다. 그들은 오히려 순간 초점을 잃는다. 동공과 망막은 극심한 접사 모드로 급회전한다. 극한적 몰두의 찰나다. 그의 7년 전 전시회 ‘발현’은 인간 의지의 용솟음이었다.
강레아 작가가 찍은 스포츠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초점을 잃은 초집중 상태다. [사진 강레아]

강레아 작가가 찍은 스포츠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초점을 잃은 초집중 상태다. [사진 강레아]

이명희씨가 등반 중 최대의 힘을, 최고의 집중력을 토해내고 있다. 그 순간, 눈의 초첨은 오히려 풀어진다. [사진 강레아]

이명희씨가 등반 중 최대의 힘을, 최고의 집중력을 토해내고 있다. 그 순간, 눈의 초첨은 오히려 풀어진다. [사진 강레아]

 
강 작가는 지난 20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미술세계에서 6번째 개인전 ‘산(山)에 들다’를 마련했다. 이번엔 설악산과 북한산에 대한 헌사다. 산은 그에게 설렘과 일렁임을 건네 줬다. 죽음의 문턱도 선사하면서 삶을 다시 일깨워 줬다.
 
우리나라 최초, 유일의 여성 암벽 사진작가다.
“산에 다닌 지 30년이고 암벽 사진작가로 20년이다. 화가인 남편이 산에 다니던 내게 예술가로 사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다.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카메라 들고 산으로, 암벽으로 가게 됐다. 2004년부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산악 잡지 기자와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스튜디오는 접었다.”
 
카메라 메고 등반하려면 무게가 만만치 않다.
“안전장비에 카메라까지, 15㎏은 될 것 같다. 이 무게를 지고 등반한다는 게 쉽지 않다. 클라이머보다 먼저 위에 가 있어야 한다. 사진 기술을 배우는 데 5년, 암벽 등반 기술을 배우는 데 5년 걸렸다. 클라이머보다 곱빼기로 품이 든다.”
카메라를 떨어뜨린 적이 있나.
“아직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카메라가 아까운 게 아니라 밑의 클라이머가 맞으면 최소한 중상이다. 그래서 렌즈 갈아 끼우는 작업은 되도록 피한다.”
 
이번 전시회는 무엇을 담고 있나.
“산을 찍으며 그 사진에 담겼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 중 몇몇은 회색의 경계선을 넘어 먼저 떠나기도 했다. 산을 바라보면 함께했던 누군가와 이어진다. 북한산은 클라이머의 요람이고 설악산은 클라이머의 향수(鄕愁)다. 이 두 산은 누군가와 맞닿는 특별한 연결고리인 셈이다. 이번 전시회는 그런 연결을, 동시에 삶의 궤적을 보여주려 했다.”
강레아 작가가 찍은 설악산 울산바위. 강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여성 암벽 사진작가다. [사진 강레아]

강레아 작가가 찍은 설악산 울산바위. 강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유일한 여성 암벽 사진작가다. [사진 강레아]

강레아 작가가 찍은 북한산 인수봉. 북한산 하루재 근처에서 촬영했다. [사진 강레아]

강레아 작가가 찍은 북한산 인수봉. 북한산 하루재 근처에서 촬영했다. [사진 강레아]

 
산이 죽음의 문턱도 선사했다고 한다.
“2006년 1월 설악산 토왕성 폭포에서 빙벽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을 촬영했다. 5명이 차례로 선등(팀에서 가장 먼저, 추락에 대비한 확보물을 설치하며 오름을 뜻함)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새벽에 시작해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24시간 동안 빙벽에 매달려 있었다. 지독한 몰입이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하강하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누군가 설악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내가 눈물이 났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에너지가 모조리 증발했다. 육신에서 긴중한 뭔가 빠져나간 느낌. 난 남편 손에 이끌려 내려간 뒤, 차 안에서 고꾸라졌다. 일어나보니 사흘이 지나 있더라.”
 
그는 체감 영하 20도로 곤두박질친 2011년 청송 아이스 클라이밍 대회에서도 10시간 내내 인공벽에 매달렸다. 강 작가는 몰입하느라 화장실에 갈 생각도 못 했다. 그는 “죽음의 문턱을 몇 번 밟자, 산에 대한 경외감과 삶에 대한 겸손함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몰입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 아닌가.
“클라이머들과 동기화되는 것 같다. 그들은 최대의 힘을 낼 때, 혼이 나가는 것 같다. 초점이 순간 사라진다. 나도 그 찰나에 그런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흑백이다.
“겨울의 인수봉, 선인봉, 토왕성 폭포는 눈으로만 봐도 수묵화다. 동양화 같은 우리나라 산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흑백이다. 한지에 스며든 사진의 흑과 백을 전시하는 것이다.”
강레아 암벽 사진 작가가 찍은 설악산 토왕성 폭포. 강 작가는 산이 산에 있던 사람과 연결해 준다고 말했다. [사진 강레아]

강레아 암벽 사진 작가가 찍은 설악산 토왕성 폭포. 강 작가는 산이 산에 있던 사람과 연결해 준다고 말했다. [사진 강레아]

 
애착이 가는 클라이머는.
“문종국·장기헌씨다. 투명한 눈과 정갈한 매무새가 그대로 자연의 일부 같았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선 김자인씨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촬영했다. 어려서 그런지 의외로 표현을 잘 못 했지만, 20여 년의 선수 생활 동안 흔들림 없이 자신의 평균을 잃지 않는 게 너무 놀랍다. 수도승처럼 살았을 거다. 크고 작은 부상도 견디고…. 일렁임 없는 넓은 호수 같다.”
 
문종국(51)·장기헌(49)씨는 거벽 전문 등반가다. 등반을 접하지 않으면 ‘거벽 등반’이란 단어가 생소하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우리나라 산악계는 정상을 겨누는 ‘등정주의’ 대신 낮아도 어려운 루트에 매진하는 ‘등로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들은 등로주의 물꼬를 튼 산악인 중 일부로 평가받는다.
 
사진작가이자 클라이머다. 클라이머를 어떻게 보나.
“클라이머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하는 삶을 사는 것 같다. ‘낙타의 삶’에서 무릎 꿇고 있다가 ‘사자의 삶’으로 포효한다. 그러다가 ‘어린아이의 삶’으로 자유로운 초인이 된다. 논밭에 나가는 농부처럼 꾸준하고 수행자처럼 절제한다. 한쪽 손을 놓아야 전진할 수 있다. 욕심을 내려놔야 한다. 암벽에 매달린 클라이머에게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에 충실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들은 육체와 정신의 수련자들이다. 의지로 두려움을 이기고 자유를 꿈꾸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요새는 기술만 좇는 사람도 있어 안타깝다.”
설악산에서 촬영 중인 강레아 작가. [사진 강레아]

설악산에서 촬영 중인 강레아 작가. [사진 강레아]

강레아 작가가 전시장에서 설악산 토왕성 폭포 사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강레아]

강레아 작가가 전시장에서 설악산 토왕성 폭포 사진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강레아]

 
암벽 등반이 자연을 훼손한다는 시선도 있다.
“룰은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본인이 안 하는 행위라고 해서 매도하면 안 된다. 암벽 등반은 등산의 다른 형태다. 어떤 행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가 안 한다고 해서 비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이용과 보존 사이에서 고민은 해야 한다. 행위에 대한 책임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이번 전시회에 펼쳐진 설악산과 북한산을 비교하자면.
“북한산은 안기고 싶은 엄마, 설악산은 기대고 싶은 아빠다.”
 
강 작가는 20년간의 작가 생활 중 피사체가 아닌, 몸을 비비고 부대낀 산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구름이 일고 있네, 산을 애무하고 있는데 산은 속살을 안 보여 주네…. 그런 마음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여준 흑백의 설악산·북한산은 근대 사진의 개척자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말한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불가사의한 힘’을 뿜고 있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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