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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자유한국당은 어쩌다 ‘노땅 정당’이 됐나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잉글랜드의 축산업자 로버트 베이크웰이 어미와 새끼양을 교배시켜 슈퍼양을 얻었을 때, 그는 동종교배가 불러올 재앙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더 많은 양의 고기를 얻으려는 욕심에 목과 다리는 짧고, 가슴과 엉덩이는 엄청나게 큰 어미양을 발견하고는 새끼와 형제양들을 잇따라 교배시켰다. 우수한 형질을 가진 어미에게서 태어난 같은 혈통끼리 교배시키면 울트라슈퍼 양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예측은 빗나갔다. 처음엔 육질 좋은 새끼들이 잇따라 태어나 큰돈을 벌었지만 결국, 스크래피라는 가려움증이 발병해 양들이 죽고 말았다. 동종교배가 낳은 재앙이었다.
 

108명 의원중 46명이 ‘늘공’ 출신
엘리트 카르텔이 당 관료화 초래
생각·배경 다른 인사 영입이 관건

근친교배가 지속될 경우, 열성 유전자 발현 가능성이 높아져 기형·열성 개체가 태어난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됐다. ‘다름’을 수용하지 않고 ‘끼리끼리’를 고집하다간 공멸을 자초할 뿐이다. 사례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자유한국당의 위태로운 모습이 ‘동종 교배’의 교훈을 떠올리게 한다. 시대와 교감하지 못하고, 민심과 동떨어진 좌충우돌 해프닝이 끊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 하면 ‘노땅 정당’이라고 한다”고 한 청년의 직설이 언론 기사의 제목으로 뽑히는 이유다. 청년들은 황교안 대표가 직접 발표한 청년 정책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럴듯한 말로 적은 거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대중과의 괴리와 불신의 정도를 알 만하다.
 
자유한국당은 어쩌다 ‘노땅 정당’이 됐을까. 의원들의 구성을 보면 답이 보인다. 한국당 의원 108명 중 절반 가까운 46명이 전직 판·검사, 변호사, 재경·내무 관료, 경찰, 군 장성 출신이다. 정부를 통째로 옮겨다 놓았나 착각이 들 정도다. 유죄 판결로 배지가 날아간 전직 의원과 탈당 의원까지 합치면 절반을 넘는다. 행정고시(22명), 사법시험(18명)에 패스하고 장·차관, 청와대 수석, 경찰청장, 부장검사, 부장판사 등 최고 스펙을 갖춘 엘리트들이다.
 
‘늘공(늘 공무원)’ 엘리트가 절반쯤 차지하다 보니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 당이 관료조직처럼 병들어 가고 있다”는 지적이 같은 의원들로부터도 나올 정도다. 황 대표 주변을 보자. 황 대표 자신이 늘공의 최고봉(법무장관-국무총리-대통령권한대행)이다. 공천작업을 주도하는 박맹우 사무총장(행시), 추경호 사무부총장(행시)과 김도읍 비서실장(사시, 검사) 등 핵심 측근들도 비슷한 컬러의 늘공 출신들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판사 출신이다.
 
문제는 비슷비슷한 성장 경로와 출세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동질한 이념의 그룹을 이루다 보면 비판은 차단되고 집단사고의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김세연 의원도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고언을 하면 내부 총질이나 지도부 흔들기가 돼버린다”고 경직된 문화를 비판했다. 한번이라도 ‘을’의 입장에서 정부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갑 중의 갑’ 위력에 새삼 놀란다. 평생 이렇게 살아온 이들이 과연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노심초사를 알 수 있을까. 그러니 자화자찬 표창장 잔치를 벌이고, 공관병 갑질 논란을 빚은 인사를 영입하겠다고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일 게다.
 
놀랍게도 늘공 엘리트들은 ‘공천=당선’으로 통하는 영남에 몰려 있다. 한국당의 심장 격인 대구는 8명 의원 전원이 전직 판·검사, 경찰청장, 차관 출신이다. 그러니 공천권자의 의중을 거스르지 않는 문화, 잘못될 결정에도 ‘아니 되옵니다’라고 막아서는 용기가 실종된 공룡 야당이 된 거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에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려고 쿠바 침공을 감행했다가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어처구니없는 실패는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과 하버드 대학 동문인 국방·법무장관, 안보보좌관 때문이었다. 집단사고에 익숙해져 누구도 ‘N0’라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당이 ‘현역 50% 물갈이’ 총선 공천룰을 어제 발표했다. 당을 혁신하려는 의지를 담아 대폭 물갈이로 기류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30%, 50%의 숫자가 아니다. 당에 창의성과 활력을 불어넣고 유권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현장형’ 인사 영입에 공 들여야 한다. 청년, 장애인, 여성, 기업인, 이주노동자, 탈북자같이 배경이나 생각이 다른 다양한 인사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시너지는 ‘좋은 혈통끼리’가 아니라 이질적인 요소가 만나야 커진다. 그러려면 한국당을 좀 먹고 있는 ‘엘리트 카르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총선 결과는 뻔하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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