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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명중 누구도 화재신고 안해···그 새벽 참사, 대성호 미스터리

19일 오전 제주 차귀도 서쪽 해상에서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다. [사진 제주해경]

19일 오전 제주 차귀도 서쪽 해상에서 어선에서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11명이 실종됐다. [사진 제주해경]

불이 난 정확한 시각이 없다. 어디서 어떻게 왜 났는지도 모른다. 1명이 숨지고 11명이 실종됐지만 무엇하나 명확히 밝혀진 사항이 없다. 통영선적 29t급 연승어선인 대성호는 제주 차귀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었다. 연승어선은 수천개의 바늘에 미끼를 끼워 고기를 잡는데 주로 장어나 갈치처럼 그물로 잡을 경우 상처가 남을 수 있는 어종을 잡는다.

12명 승선원 중 아무도 화재신고 하지 않아
작업 후 잠자는 시간 갑자기 큰 불나면 무방비
사망자는 익사…구명조끼 입을 겨를도 없어
불 잘 확산되는 FRP, 순시간에 불길 휩싸인듯
선미 인양 너울성 파도로 중지…21일 재논의

 
이 배가 화염에 휩싸인 것이 처음 목격된 건 19일 오전 7시 5분쯤이다. 제주 차귀도 서쪽 76km 인근 해역에서 대성호가 불길에 휩싸인 것을 지나가던 창성호가 발견해 신고하면서다. 신고를 받은 제주해경은 7시20분 초동대응반 비상소집 후 오전 7시 34분 B513 헬기가 제주공항을 이륙해 오전 8시 10분쯤 이 배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에도 이 배는 활활 타고 있었다.

 
20일 제주대학교 해양실습선 아라호가 대성호 선미를 인양하기 위해 사고해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진 제주지방해양경찰청]

20일 제주대학교 해양실습선 아라호가 대성호 선미를 인양하기 위해 사고해역으로 접근하고 있다. [사진 제주지방해양경찰청]

가장 궁금한 점은 왜 신고가 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선장과 선원 등 12명이나 되는 인원이 배에 타고 있었지만, 누구도 화재신고나 구조요청을 하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이 배에서 불이 났어도 따로 신고할 수 없었던 이유를 연승어선 특유의 ‘쉬는 시간’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문기 통영근해 연승협회장은 “어구 등을 투망하고 2~3시간 선장과 선원이 잠시 잠을 자는 동안 불이 나 피해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큰 화재는 보통 기관실에서 나는 만큼 자는 사이 기관실에서 어떤 발화물질에 의해 순식간에 화재가 번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구조된 사망자 김모(58)씨가 작업복이 아닌 간편한 운동복 차림이었고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던 점도 이런 추정을 가능케 한다. 또 그의 얼굴과 상반신이 불에 댄 화상 자국이 많았던 점도 불이 크게나 화상을 입고 급박하게 바다로 뛰어내린 흔적으로 보고 있다. 20일 오후 진행된 김씨의 부검 결과도 화상에 의한 사망이 아닌 익사 소견으로 나왔다. 미끼 작업 후 피곤함이 몰려온 선장과 선원들이 잠시 눈을 붙여 잠을 청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화마가 닥치자 구조 버튼 등을 누를 겨를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성호의 자동선박식별장치(AIS) 신호는 이날 오전 4시 15분까지 잡혔다가 사라진 것으로 확인된 점도 이런 이유에 힘을 실어준다. 이에 해경도 오전 4시쯤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판단했으며, 당시 화재 신고와 구조 요청은 물론 구명조끼를 입고 대피할 틈도 없을 정도로 매우 급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배가 뒤집히는 등 물리적인 이상이 크게 오면 자동으로 구난신호를 보내는 브이패스(V-Pass)가 지난 13일 오전 6시 이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도 의문점이다.

 
해경은 물에 반쯤 잠긴 채 인양되기를 준비 중인 어선의 뒷부분이 이 배에서 난 화재의 원인을 밝힐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경에 따르면 선체 전체길이 26m 중 뒷부분 약 8m 정도만 남아 전체의 3분의 2가량이 훼손됐다. 특히 잠수부 등이 사전 조사를 한 결과 이 8m 부분 중 침실과 주방이 있는 부위가 눈에 띄게 그을린 점이 발견된 만큼 인양 후 추가 정밀 조사를 할 예정이다. 당초 대성호의 이 뒷부분은 20일 오후 제주대 실습선 3000t급 아라호를 이용해 인양 후 21일 오전 뭍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부터 너울성 파도가 심해져 작업이 일시 중단된 상태다. 제주도와 해경은 21일 날이 밝는대로 작업 재개를 다시 논의·결정 할 계획이다.
 
제주해경 5002함의 대원들이 19일 오후 해가진 상황에서 야간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주해양경찰청]

제주해경 5002함의 대원들이 19일 오후 해가진 상황에서 야간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 제주해양경찰청]

대성호와 같은 크기인 29t급 어선인 303진영호 선장 이광형(49)씨는 “보통 29t급 어선의 소재가 화재에 취약한 섬유강화플라스틱(FRP)인 만큼 화재에는 항상 긴장하고 있다”며 “어선통신만(SSB)로 무전을 해 화재신고를 하거나 자동선박식별장치(AIS) 비상 버튼을 누르면 인근 외항선에까지 자동으로 조난신호가 간다. 12명 중 아무도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갑자기 불이 커졌거나 정말 특별한 상황이 일어난 것으로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성호가 지난 8일 오전 10시 38분 경남 통영항에서 출항해 조업한 뒤 지난 18일 입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19일 오전 7시 5분 불이 난 채 발견된 점도 앞으로 규명이 돼야 할 부분이다.

 
해경은 야간에도 함선과 헬기 등의 수색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항공기 4대와 함선 32척이 구역을 나눠 촘촘한 수색에 나서게 된다. 항공기는 6회에 걸쳐 조명탄 170여 발을 쏘아 수색에 나서고 있다. 
 
제주·통영=최충일·진창일·김태호·위성욱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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