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철호 칼럼] “정치인과 기저귀는 자주 갈아야 한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세연 한국당 의원의 총선 불출마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제도권 정치 은퇴 선언은 놀라운 일이다. 정치적 자산이 남다른 두 사람이 대담하게 기득권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 충격에도 정치판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한국당 친박 중진들은 “새 집(바른 정당) 짓는다고 나가 실패하고는 왜 고향 집에 불을 지르느냐”며 헐뜯는다. 순수성을 흠집 내 인적 물갈이를 피하려는 꼼수다. 민주당 86 의원들도 반발하는 분위기다.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되고 있다는 말에는 약간 모욕감 같은 걸 느끼고 있다”며 불만이다.
 

김세연·임종석 퇴진 파괴력 약해
10년간 퇴행으로 굳어진 정치판
갈수록 회색 지대 중도층 늘어나
과감한 이종교배로 민심 붙잡아야

두 사람의 퇴진이 여태 별다른 파괴력을 보이지 않는 것은 연말까지 선거법 개정 등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여야 지도부가 굳이 현역 의원들을 자극해 변수를 만들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이유도 깔려 있다. 하지만 정치가 생물이 아니라 딱딱하게 굳어 화석화 돼 버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보수나 진보 정치권 모두 ‘가치’보다는 ‘생존’에 집착하고 있다. 이런 퇴행은 박근혜·문재인 정권에서 훨씬 두드러진다. 정치가 온 국민의 짜증만 돋우고 혐오를 부르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정치는 나름 발전해 왔다. 새 피 수혈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고 중도층을 향한 정치적 구애도 잊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은 1996년 골수 재야운동가였던 김문수·이재오를 품었다. 김대중 정권도 보수 진영의 이종찬·김중권을 끌어들여 최고 요직인 안기부장과 비서실장을 맡겼다. 노무현 정부 역시 정통 외교관인 반기문·송민순을 중심으로 균형을 잡았다. 이명박 정권이 레임덕에 빠졌을 때도 TK(대구·경북)나 친이(李)계가 아닌 호남 출신의 김황식 총리·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이 마지막까지 버텨주었다. 유권자들은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를 누그러뜨리려는 이런 이종교배 시도에 흔쾌히 마음을 열었다.  건강한 잡종강세 현상이었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 한국 정치가 후퇴와 고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종교배는커녕 순혈주의에 골몰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기준은 의리와 배신이었다. 자기편만 진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예 국무회의에서 “배신의 정치를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정치적 탈선은 2015년 유승민 원내대표 찍어내기를 거쳐 2016년 총선의 진박 공천, 그리고 비극적인 탄핵까지 막장 드라마로 끝났다. 그 과정에서 자유·공화·자기희생 같은 보수의 소중한 가치는 증발하고 친박이냐 아니냐는 마녀사냥만 남았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다”는 자서전 내용을 아예 국정 지표로 혼동한 게 아닐까 싶다. 왜 음울한 봉건시대 잣대인 의리와 배신으로 세상을 갈랐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권도 매한가지다. 권력 핵심부에 전대협·참여연대·민변 출신 등 대학 선후배나 운동권 시절 끼리끼리 맺어진 배타적인 공동체만 똬리를 틀고 있다. 그 폐쇄적인 네트워크는 끊임없는 편 가르기로 적을 찾거나 만들어낸다. 한동안 적폐청산의 복수혈전을 벌이더니 강제징용 갈등이 불거지자 토착 왜구로 표적이 옮겨갔다. 의병·죽창을 입에 올리며 반일 정서와 국수적 포퓰리즘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대결 지상주의 속에서 평등·도덕성·인권 같은 진보적 가치는 찾기 힘들다. 진보의 그 일그러진 민낯이  조국 사태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같은 진보 진영끼리 합리적 비판조차 회색분자의 내부 총질이라고 몰아세웠다. “진실 어린 반대와 적대적인 공격을 혼동해선 안 된다”는 소통의 제1원칙은 무시됐다.
 
양 진영의 극단적 대결 속에서 회색지대의 중도층은 두터워지고 있다. 광화문 집회에서 문재인 정권의 독선에 반대하지만 ‘탄핵 무효’ 구호는 외면하는 인파가 적지 않았다. 서초동 집회에서도 검찰 개혁은 함께 외치지만 ‘조국 수호’에는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대학가에선 탄핵 촛불과 조국 비판 촛불을 함께 들었다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는 보수나 진보라기보다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 행동 자체를 비판했다”는 것이다. 이런 중도층에게 ‘상식 대 비상식’의 문제를 ‘보수 대 진보’ 프레임으로 밀어붙이면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마 흔들리는 중도층의 민심을 붙잡는 것이 여야의 쇄신과 혁신의 목표일 것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자신의 불출마와 함께 86 의원들에게도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며 동반퇴진을 주문했다. 진보 정당 내부의 2030 청년 위원들이 “대학 시절 3~4년 학생운동 해놓고 30~40년간 정치판에서 우려먹느냐”며 세대교체를 치받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당은 그런 소리조차 없는 황폐한 불모지 느낌이다. 김세연 의원이 “완전한 새로운 주체가 중도·보수 공간을 맡아서 이끌어줘야 한다”고 했지만 메아리는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여야 모두 물갈이를 외치면서 물고기 몇 마리 건져내고 손 씻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 불온한 조짐을 중도층이자 부동층들이 빤히 지켜보고 있다. 요즘 따라 “정치인과 기저귀를 자주 갈아줄수록 좋다”는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풍자가 그냥 빈말로 들리지 않는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