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흑사병은 옛일,잊어줄래…항생제에 무릎 꿇은 페스트의 독백

고열과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는 폐 페스트를 확대한 모습. [AP=연합뉴스]

고열과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는 폐 페스트를 확대한 모습. [AP=연합뉴스]

요즘 한국에서 부쩍 저에 대한 관심이 많더군요. 이번 달 이웃 중국에서만 환자 3명이 새로 나와서 그런 것 같아요. 더군다나 두 명은 수도 베이징의 병원에 있으니 더 불안해하는 거 같네요. 소개가 늦었네요. 제 이름은 ’페스트‘입니다. 영어로도 이름이 있어요. ‘plague’. 라틴어에서 왔다는데, 라틴어를 배운 적 없지만 무서운 게 휙 쓸면서 목숨을 앗아간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한국말로는 역병과 가까워요.
 
저는 한국에서 '4군 감염병'으로 관리받고 있어요. 4군 감염병은 주로 해외에서 발생하거나 국내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감염병을 말해요. 사실 한국에선 한 번도 제가 나타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외국에선 거의 전 대륙에서 발생하곤 하죠. 오세아니아는 아직 멀어서 못 가봤는데 다른 곳은 다 여행해봤죠. 물론 저 때문에 죽는 사람도 꽤 있어요. 2010~2015년 3248명이 아팠고 그중 584명이 숨졌죠. 예전에 중세 때는 훨씬 많은 사람이 저를 두려워했어요. 당시 무서운 존재로 저를 묘사한 그림을 지금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저를 여전히 꺼리는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더 이상 휙 쓸면서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이 아니랍니다.
페스트 어디서 발생했나, 최근 페스트 유행 사례, 중국 페스트 환자 통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페스트 어디서 발생했나, 최근 페스트 유행 사례, 중국 페스트 환자 통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동 수단은 주로 쥐나 벼룩이에요. 야생동물에게 많이 옮겨가지만, 사람도 좋아해요. 제가 탄 벼룩이 사람을 물거나 누군가가 제가 얹혀있는 동물을 직접 만지면 새집으로 이사할 수 있어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옮겨 갈 수도 있죠. 폐에 감염된 사람은 저를 침방울에 태워 주변 사람에게 넘겨주기도 해요. 사람에게 갔다고 곧바로 제가 존재감을 드러내진 않아요. 1~7일 정도는 상황을 지켜보다 신호를 보내죠.
페스트 유형 3가지. [자료 질병관리본부]

페스트 유형 3가지. [자료 질병관리본부]

저는 사실 혼자가 아니에요. 림프절과 패혈증, 폐 이렇게 3형제죠. 림프절 페스트는 벼룩에 물렸을 때 물린 자리 주변이 막 붓고 커지는 거예요. 저는 대부분 이런 형태에요. 환자 80~95%가 해당한다고 들었어요. 열이 나거나 두통, 근육통이 같이 나타나곤 해요. 그런데 치료를 안 하고 저를 그냥 두면 화가 나요. 다른 형제들을 부르죠. 우리가 폐로 가면 기침이나 호흡 곤란이 나타나곤 해요. 심하면 중증 폐렴으로 이어져 사망할 수도 있어요. 가장 센 형은 패혈증이죠. 림프절, 폐에서 신호를 보냈는데도 아무 답이 없을 때 나타나요.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우리가 이동하면서 패혈증이 되는 거죠. 그러면 각종 장기의 혈액이 응고되면서 피떡이 되고, 피부도 썩기 시작하게 되죠. 겉으로 봤을 때 피부가 까맣게 변하는 거예요.
 
맞아요. 저를 부르는 별명 '흑사병'(黑死病)이 여기에서 왔어요. 사실 사람들은 저를 흑사병으로 더 잘 알고 있어요. 패혈증 형이 열심히 활동한 사람이 까맣게 변해서 죽는다는 뜻이에요. 영어로는 ‘블랙데스’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특히 예전에는 저를 괴롭히는 항생제가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이 결국 패혈증 형과 만나게 됐어요. 피부가 괴사하면서 까맣게 되니까 흑사병이라는 말이 익숙해졌죠.
페스트를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한 과거 유럽의 그림. [인터넷 캡처]

페스트를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한 과거 유럽의 그림. [인터넷 캡처]

하지만 더 이상 제 소중한 본명을 흑사병으로 바꾸지 말아 주세요. 요즘은 시중에 파는 항생제만 써도 저는 사라질 수 있어요. 예전처럼 가만히 있으면 치명률이 30~100%라고 하던데 항생제만 쓰면 50% 밑으로 떨어진다고 하네요. 그리고 유행 지역은 대부분 사망자 비율이 10% 정도래요. 까맣게 변하는 사람이 계속 줄어드니 섭섭하기도 해요. 제가 힘 좀 쓰던 시절이 가니까 사람들은 좀 더 안심하더라고요. 그리고 한국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저를 감염병 명단에 오른 이름 '페스트'로 꼭 불러달라고 하네요. 저를 몰아낼 항생제를 질본 창고에 100만명분이나 쌓아놨다고 겁을 주면서요. 귓속말로 백신은 없지만 항생제만 미리 써도 예방 효과가 있다고도 했어요. 한국에선 제가 전혀 흑사병이 아닌 거죠.
 
저는 그래도 가끔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 존재감을 드러내요. 특히 1990년대 후로는 아프리카로 자주 나가곤 해요. 2017년에는 아프리카 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로 가봤어요. 8월부터 11월까지 2417명의 몸속에 들어갔고, 209명이 숨졌어요. 폐 페스트가 77%로 가장 많았다고 하네요. 초반에 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아서 마음껏 돌아다녔더니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어요. 최근에는 콩고민주공화국으로도 갔어요. 지난 2월 이후에 이투리주에서만 31명의 몸에서 살았답니다.
중국 보건 당국이 페스트 감염 예방을 위해서 균 매개체인 쥐를 잡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보건 당국이 페스트 감염 예방을 위해서 균 매개체인 쥐를 잡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여러분이 제일 관심 많은 중국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번달에 새로 발생한 환자 3명은 모두 네이멍구 지역 주민이래요. 그런데 네이멍구는 원래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예전에도 종종 네이멍구에서 사람 몸에 이사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베이징 병원으로 환자 두 명이 이동했다고 중국 사람들이 여러 소문을 내더라고요. '아동 병원에서 저를 살펴봤다'거나 '호텔 접촉자를 곧바로 격리했다'는 식이죠. 하지만 전부 괴담이에요.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믿지 마세요. 베이징서 입원한 환자 두 명도 아직까진 다른 사람에게 저를 옮기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어요. 제가 16일 새로 들어간 세번째 환자도 다른 두 환자와는 전혀 관련이 없답니다.
페스트 매개체인 쥐벼룩. [중앙포토]

페스트 매개체인 쥐벼룩. [중앙포토]

관련기사

아 여러분은 안심하세요. 제가 싫어하는 한국 질병관리본부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모니터링한다고 하네요. 중국 질병관리본부에서도 저를 열심히 쫓아내려고 노력하고, 한국 쪽에도 상황을 알려준다고 하니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네이멍구에선 한국으로 오는 직항 비행기가 없어요. 넘어갈 수 없네요. 다만 항상 마음을 놓지는 마세요. 저는 언제든 한국으로 넘어올 준비가 돼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도 마다가스카르 다녀오신 분이 열이 나서 의심 환자로 격리된 적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는 이 분 몸속에 없었어요. 그래도 아프리카나 아시아 여행 가신 분이 동물 사체를 만지거나 벼룩에 물렸다면 언제든 제가 여기로 올 거예요. 


※감염병 페스트에 대한 정보를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