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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박사' 국립암센터 초대원장…종교포럼 10년, 그가 얻은 황금률

백성호 기자 사진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담당차장
 
 
매월 셋째 주 목요일마다 서울대학병원 암연구소에서는 뜻밖의 풍경이 펼쳐진다. 직장인들이 아직 출근도 하기 전인 이른 시간대다. 새벽에 일어났을 청중은 암연구소 1층에 마련된 죽이나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다. 간혹 큰 기업의 회장도 보이고, 대학의 교수들, 각 종교의 성직자와 일반인들도 참석한다. 오전 7시에 시작되는 강연은 의학이나 암 연구에 대한 세미나가 아니다. 주제는 주로 ‘종교와 과학’이다. 2009년 12월에 시작된 종교발전포럼은 올해로 만10년을 맞는다. 오는 21일에는 100회째 강연(서울대 의대 김종일 교수의 ‘인간 유전체와 종교’)이 열린다.  
 
종교발전포럼을 설립한 이는 서울대병원 암연구소 박재갑 이사장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암 전문가’다. 그런데 왜 인체나 의학이 아닌 종교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걸까. 18일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박재갑 이사장을 만났다. 그에게 왜 ‘의학 포럼’이 아닌 ‘종교 포럼’을 하는지를 물었다. 박 이사장은 “아주 상식적인 물음에서 종교발전포럼이 출발했다”고 운을 뗐다.  
 
서울대학병원 삼성암연구동 1층에 마련된 암 박물관에서 박재갑 이사장이 암 세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서울대학병원 삼성암연구동 1층에 마련된 암 박물관에서 박재갑 이사장이 암 세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당신은 국내 최고의 암 권위자다. ‘상식적인 물음’이란 게 대체 뭔가.
 
“그동안 혼란스러웠다. 나는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그런데 어느 날 큰형이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그걸 본 아버지는 ‘이런 불온한 걸 보느냐’며 성경책을 빼앗아 아궁이에다 태워버렸다. 그런데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또 뭐가 있었나.
 
“어머니는 양반집 딸이었다. 족보로 따지면 정종의 후손이다. 집안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어머니는 충남 공주에서 미션 학교에 다니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기독교에 젖어 있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연세가 들고 힘이 빠지니까 어머니는 슬쩍 교회에 나가셨다. 세월이 흐른 뒤 나는 결혼을 했는데 아내는 천주교 신자다. 집사람은 나도 함께 성당에 다니길 바란다. 그런데 나는 아내가 성당에 다니는 게 싫었다.”
 
왜 싫었나.
 
“남편은 떠받들지 않고 천주교 신부는 떠받들고 있더라. 게다가 외간 남자(신부) 앞에서 입 벌리고 영성체를 받아먹는데, 나는 그게 싫더라. 우리 집안에는 유교와 개신교, 천주교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게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유교를 믿어야 할 것 같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개신교, 집사람을 생각하면 천주교였다.”
 
종교적 문구를 새겨놓은 도자기를 보여주고 있는 박재갑 이사장. 그는 그림과 서예, 도예에도 관심이 깊다. 백성호 기자

종교적 문구를 새겨놓은 도자기를 보여주고 있는 박재갑 이사장. 그는 그림과 서예, 도예에도 관심이 깊다. 백성호 기자

 
박재갑 이사장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친 뒤 전임강사(교수)가 됐다. 그리고 60대 전후의 대선배들이 취임하던 암연구소장을 48세의 젊은 나이에 맡았다. 그는 의대 공부와 환자 진료로 그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 와중에도 ‘종교적 혼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일단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연구소장을 맡고 있을 때 용기를 내서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어떻게 용기를 냈나.
 
“의대 선배인 서정돈 성균관대 총장이 유학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총장인데 그런 결정을 하기가 쉽겠나. 그때 용기를 얻었다.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다’.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늘 마음속에는 ‘의대 교수라는 사람이 인문학 서적 하나 못 보고, 이렇게 무식할 수가 있나’라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공부를 해보니 어땠나.
 
“가서 들어보니까 ‘우리나라가 유교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왜 학문을 매도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판을 공정하게 벌여보자 싶었다. 그래서 꾸린 게 ‘종교발전포럼’이다. 불교ㆍ천주교ㆍ개신교ㆍ원불교ㆍ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대학병원 암연구동에서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 종교발전포럼이 열린다. [사진 종교발전포럼]

서울대학병원 암연구동에서는 매월 셋째주 목요일 종교발전포럼이 열린다. [사진 종교발전포럼]

 
‘종교발전포럼’에는 숱한 명사들이 강연자로 섰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국내의 종교계와 학계의 저명인사들이 강연을 했다. 박 이사장은 국립중앙의료원장과 암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하는 바쁜 와중에도 10년 세월 동안 무려 100회에 달하는 강연을 꾸렸다. 주제와 강연 날짜를 정한 뒤 2~3년 전에 연락해 미리 섭외를 하는 식이었다. “아무리 바쁜 강사도 3년 뒤 일정까지 채워져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100회 강연 동안 숱한 종교인과 사상가를 만났다. 포럼을 통해 얻은 종교적 결론이 있나.
 
“있다. 10년의 모색 끝에 얻어낸 ‘황금률’이 있다. 유교의 논어에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대목이 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마태복음 7장12절)는 구절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를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라(自利利他)’고 했다. 종교의 핵심적 가르침은 이렇게 서로 통한다. 이게 내가 얻은 결론이다.”
 
종교발전포럼에 참석한 청중은 각 종교의 성직자부터 인문학계와 자연과학계 교수 등 층이 다양하다. [사진 종교발전포럼]

종교발전포럼에 참석한 청중은 각 종교의 성직자부터 인문학계와 자연과학계 교수 등 층이 다양하다. [사진 종교발전포럼]

 
박재갑 이사장은 ‘암 박사’다. 박상철 교수가 지어준 호가 ‘평암(平巖)’이다. '평범한 바위'를 가리키지만, ‘바위(암)를 평정했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국립암센터 설립을 제안했고 초대 원장을 맡았다. 국가 시책인 ‘암 정복 10개년 계획’도 그가 설계했다. 덕분에 지금은 2700만 명이 5대 암에 대해 무료검진을 받고 있다. 암관리법을 제정하고, 지역암센터를 설치해 우리나라를 ‘암 치료 및 관리 선진국’으로 만들었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삼성 이건희 회장의 후원을 받아 서울대병원 안에 삼성암연구동을 신축했다.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5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덕분에 암연구소의 시설은 지금도 세계적 수준이다.”
 
전문가로서 볼 때 암은 정복될 수 있나.
 
“‘정복’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100%’를 생각한다. 생명 현상에서 100%를 말한다면 오히려 사기성이 느껴진다. 100%는 신만 아는 거다. 대신 나는 ‘십중팔구’라는 말을 쓴다. 우리가 말하는 상식을 지킨다면 암은 이미 정복됐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상식인가.
 
“우선 금연을 해야 한다. 담배에는 발암물질이 있다. 발암물질이 별 게 아니다. 유전자에 이상을 일으켜 암세포가 생기게 하는 거다. 그러니 암을 예방하려면 담배를 끊어야 한다. 다음은 간염 예방과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접종을 반드시 해야 한다. 이게 암 예방의 3분의 1이다.”
 
박재갑 이사장이 암연구소에서 배양 중인 암세포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박재갑 이사장이 암연구소에서 배양 중인 암세포를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나머지는 뭔가.
 
“조기암 검진으로 또 3분의 1을 예방할 수 있다. 암을 일찍 발견해 떡잎을 자르든지, 싹을 자르면 된다. 그게 국가 정책인 조기암 검진이다.”
 
마지막 3분의 1은 뭔가.
 
“한국은 흡연율이 높아서 앞의 두 방법으로 70%가 예방된다. 나머지 30%는 고통이 따르지만 수술하고 약 처방하고 치료해서 낫게 한다. 물론 고령으로 육신이 무너질 때 그 많은 원인 중 하나로 암이 있을 수 있다. 그것까지 없애는 게 ‘암 정복’이라고 말한다면 문제가 있다. 암을 예방하려면 ‘너무’라는 글자를 피하는 게 좋다. 너무 짜지 않게, 너무 달지 않게, 너무 기름지지 않게, 너무 고기만 먹지 않게, 너무 야채만 먹지 않게. 식사는 중용이다. 극을 피한다면 건강에 좋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고 하루 30분 이상 빠른 걸음으로 걷는 거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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