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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문제는 ‘우리 안의 민주주의’다

권석천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개인의 개성이나 사유나… 그런 걸 별로 고려해주는 조직은 아닌 거 같아요. (기자생활 전과 후에 바뀐 점은) 무리 없이 튀지 않고 그냥 거기 묻어가는 거?” “한번은 데스킹을 봤는데 내가 취재한 거랑 원래 썼던 거랑 너무 다르게 고친 거예요… 부장에게 전화했더니 ‘내가 판단해’ 하고 끊더라고요.”
 

퇴직 기자들의 씁쓸한 기억들
민주적이지 못한 조직문화로
민주주의를 위할 수 있는가

며칠 전이었다. 논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흡-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한국 신문의 뉴스 생산문화에 대한 비판적 연구’. 지난달 한국언론정보학보에 실린 이 논문의 작성자는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이오현 교수와 석사과정 이석호씨. 이들은 중앙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하다 10년 이내에 퇴직한 9명을 인터뷰했다. 연구에 참여한 퇴직 기자들이 자신들을 가장 힘들게 했고, 신문사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목한 것은 ‘위계적인 조직문화’였다.
 
“네가 뭘 아는데?” “아니긴 뭐가 아닌데?” “무조건 멘트 따와.” 끊임없이 자율성을 억압당하다 보면 조직문화에 길들어 “선배. 그게 아니라요”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참여자 5]는 씁쓸하게 웃었다. “너무 사람들이 말을 잘 들어요. 저도 말 잘 들었지만.” [참여자 7]은 “선배들이 (부당한 지시에) 오히려 더 따지지 않아서 막내들인 저하고 ○선배가 화병이 걸렸다”고 했다.
 
위계는 빠르게 내면화된다. 멀쩡했던 선배가 차장이 되면 관리자로 돌변하고, 후배들을 지켜주던 선배는 인사에서 동기들에게 밀리다 예스맨이 되고, 개성과 자기주장이 강했던 선배들은 ‘다’ 나간다. “본인의 생각이라고는 1만큼도 없고, 윗사람 눈치를 보기에만 급급한 완벽한 회사원”만 남게 된다.
 
이런 내부 문화는 기자들의 자존감을 넘어 저널리즘까지 망가뜨릴 수있다. 조직의 위계성 속에 ‘오더(지시) 기사’ ‘민원 기사’ ‘광고 기사’가 속출하고, 정해진 야마(주제)대로 기사가 주문 생산되고, 자신의 기사가 채택되거나 거부되는 경험을 거치며 “언론사의 스탠스(입장)”를 체화하게 된다. 조직 외부와 소통하기보다 내부의 정보와 평가에 갇혀 있고, 외부에서 비판하면 반성은커녕 “영향력”이 확인됐다고 말한다.
 
논문은 묻는다. 그간 위기를 타개하려는 한국 신문의 시도들이 물거품에 그친 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문제적 조직문화 때문 아니냐고. 논문 읽기가 이토록 힘이 들 줄 몰랐다. 연구자들과 마주 앉아 젊은 날의 좌절을 곱씹는 전직 기자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쳤다. 활자가 된 그들의 육성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직 안에서 어떤 선배였을까.
 
언론은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한다. 민주적이지 못한 언론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위할 수 있는가. 양심에 따라 살지 못하는 기자들이 어떻게 남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 내부에 갇힌 시각으로 시민들에게 무엇을 전할 것인가. “조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추구하는 저널리즘은 어떤 모습일까.
 
위계적 조직문화가 언론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정부, 정당, 법원, 검찰, 대학…. 조직 논리가 횡행하는 곳은 어디든 민주주의가 자라날 수 없고, 그 심장인 양심이 살아 약동할 수 없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말한다.  
 
‘우리 일상에 널린 이런저런 공적·사적 조직들의 내부를 헌법 원칙에 입각하여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고는 정치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에로의 지향은 요원할 뿐이다… 이제는 우리 안의 구체적인 민주주의도 함께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닐까.’(『판결과 정의』 중)
 
대통령 탄핵이란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도 한국 사회가 같은 곳을 맴도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우리 안의 민주주의, 우리 안의 정의, 우리 안의 공정…. 우리 내부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저항도 거셀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없이는 모든 게 거짓이고 가짜다. 밖으로만 향하던 개혁의 눈, 비판의 눈을 우리 안으로 돌릴 때 진정한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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