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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자’ 원하는 정부…‘L자’ 같다는 민간

기획재정부가 경제진단에서 ‘경기 부진’이란 단어를 빼면서 경기 바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재부는 매달 발표하는 ‘경제동향’에서 7개월 동안 ‘부진’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우리 경기상황을 표현했다. 하지만 15일 발표한 11월호에서는 ‘부진’이라는 표현 대신 ‘성장 제약’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부정적인 판단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일부 경제지표의 감소 폭이 줄거나 멈췄다는 것을 근거로 그 정도를 누그러뜨린 것이다.
 

기재부 경기진단 ‘부진’ 표현 없애
8개월 만에 ‘경기 바닥론’ 불지펴
전문가들 ‘일본형 장기침체’ 우려

홍민석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문구의 변화가 ‘경기가 바닥을 쳤다’거나 ‘수출·투자가 부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내년에는 글로벌 경기나 반도체 업황 등이 개선되면서 우리 경제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각은 기재부가 최근 발간한 ‘한국경제 바로 알기’에서도 드러난다. 책자는 “세계 경제 개선, 글로벌 반도체 업황 회복, 확장적 재정 등에 힘입어 내년은 올해보다 성장세가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해 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올해(2.0~2.1%)보다 내년(2.2~2.3%) 성장률이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경기 바닥론의 근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기 반등 신호가 나타나더라도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회복이라며 신중한 모습이다. 한국의 성장 동력인 수출이 12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금을 쏟아부은 정부 지출을 제외하면 경기를 끌어올릴 만한 요인을 찾기 힘들어서다.
 
이인실(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한국경제학회장은 “2년 정도의 경기변동 주기를 감안해 타이밍상 경기 바닥론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하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워낙 큰 데다, 국내 실물 경제가 개선된다는 뚜렷한 지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다소 나아지더라도 이는 부진이 길어지면서 나타나는 기저효과 측면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경기저점을 찍은 후 서서히 반등하는 ‘U자형’보다 침체가 계속 이어지는 ‘L자형’에 가까운 흐름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생산가능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잠재성장률이 구조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본처럼 ‘저성장·저물가’ 기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경준(전 통계청장)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정부가 재정확대를 통해 인위적으로 경기가 내려가는 것을 붙잡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유지될 것”이라며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경기 바닥을 언급하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역대 최장 기간 ‘경기 부진’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부담을 느끼고 표현을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그린북 발표 하루 전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 “경제리더십을 보여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실제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었다. 기재부는 그린북 인쇄본 내용 중 일부에 부진이란 표현이 포함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수정하느라 그린북을 평소보다 늦게 배포했다. 인쇄본에는 반도체 업황 ‘부진’이란 표현을 없애기 위해 ‘단가 인하’라고 수정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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